직업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라는 목적이 무엇보다 강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의미로 많은 관점을 내포한다. 내 관심사, 내가 바라보는 관점과 성향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직업은 그렇게 또 다른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의 한 줄기가 된다. 2022년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한 번쯤 되뇌었을 법한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사회를 마주하고, 우리를 구성한 다수는 무엇으로 현재를 바라보는가. 이 책은 끊임없이 변모하는 시간에 앞서 판사라는 직업 위에 작가가 바라본 현미경에 비친 현재를 엿보게 돕는다. 사실 대중들에게 뉴스로나 접해봄 직한 사건·사고들은 매우 낯설고 어색하다. 그러한 궁금증과 호기심 때문인지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간간이 화두 되는 극적인 뉴스로 사람들은 화제를 모으거나 쉽게 공감을 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누군가에 의해 가공되고 완성된 서사일 뿐, 그 뒤에 존재하고 있는 당사자의 현실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스스로 나서서 파헤쳐볼 여유도 없기에 그렇게 모른 척 해두고 나와는 상관없다 치부한 그들의 이야기가 어떠했을지 대중은 사실상 궁금조차 하지 않았을 뿐이다.이에 반기를 들듯, 작가는 소소하게 그렇게 가려져 왔던 이야기를 슬그머니 꺼내어 보여준다. 그 안에 담긴 사람이 주체가 된 우리 혹은 누군가의 서사를. 따뜻한 마음으로 건네는 문장에서 작가의 애틋함과 한 인간을 바라보는 감정이 우러나와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렇듯 직업이 부여한 새로운 관점이 나와는 다른 지금을 새로 보게 한다. 물론 내가 직접 경험하고 익힌 것이 아닐지라도, 이렇게나마 작가가 엮어둔 글이 모여 만들어진 좋은 책 한 권으로 대신해 본다. 지금을 사는 것은 주변을 바라보고 나를 익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쉬이 그 관심을 줄이는 게 어렵지 않을 것임을 나는 계속해서 곱씹게 된다.
타인을 보고 가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포인트가 있다. 상대를 생각해 배려한답시고 후하게 베풀어준 선의가 타인에게는 당연한 권리처럼 취급되었을 때 나는 낙담하고 분노한다. 이렇듯 선의가 권리로 변모한 자연스러운 사고가 현대인들에게 스스럼없이 자리를 잡은 건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가장 최근의 경향처럼 보였다. 우리는 왜 이렇게 이기적인 사고를 개인주의라는 아름다운 해석으로 가공하여 자신을 가장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또한, 나는 왜 환경을 아끼자는 작가의 책을 읽으며 뜬금없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지구를 위해 전기차단기를 내리고 물을 아끼고 대중교통조차 이용하지 않으며, 심지어 화장지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작가의 1년여간의 무모한 시도는 이상하게 다른 관점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시사점을 던진다. 왜 작가가 이런 황당하게 짝이 없는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다시 서두를 읽으면 그 이유를 알게 되겠지만) 엉뚱한 이유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나는 딱히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은 없다. 다만, 풍성하고 윤택하게 살아온 당연한 삶의 환경에 크게 의심하지 않는 대중들이 오히려 낯설었을 뿐이었다. 음식은 남을 만큼 주문하고 부족하지 않게 남겨둬야 품위가 있어 보였고, 매년 신제품 발표회로 출시되는 기기들에 관한 관심은 놓치지 말아야 할 당연한 관심사처럼 보였다. 주기적인 소비와 반복되는 광고에 길들어져서 구매를 위한 인생이 마치 나의 목적처럼 대두함에 조금의 의구심도 갖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에 호응하듯 어차피 짧게 살다가 죽을 거 남 눈치를 안 보고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기업들은 외친다. 지금 당장 소비하고 원하는 것을 손에 쥐었을 때 행복할 것이라고 뻔뻔하게 소비자의 마음을 구슬리려 하지도 않고 당연하게 제창한다. 그 가운데 사람들에게 자리를 잡은 새벽 배송은 직접 손으로 물건을 살펴보며 장을 보는 일상의 행복을 은근슬쩍 빼앗고, 버튼 하나로 배달되는 매일의 식사에서 요리하는 과정의 기쁨을 잊게 했다. 먹고 사는 노동의 아름다움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담기는 콘텐츠로 미화될 뿐이고, 개인에게는 지루하게 겪어야 할 직접적인 태만의 대상처럼 취급되었다. 이미 우리는 ‘누구나 쉽고 편하게’라는 신조 아래 남의 권리를 빼앗고 노동을 취하며 폐해를 묵인하는 중 인간의 됨됨이조차 쉽고 편하게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딱히 지구를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아도 좋다. 지금 내 앞에 물건 하나, 음식 한 개조차 누군가의 손을 거치고 어떤 에너지를 소비하며 이 자리까지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는 겸허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잠시 왔다가 죽음으로 사그라지는 개인이 어떤 자세로 머물다 가야 하는지 고민해 볼 수 있다면 자연스레 빌려 쓰는 지구의 자원에 대한 배려심은 당연하게 자리를 잡지 않을까. 구태여 환경보호라는 타이틀을 앞세워서 어떤 구체적인 행위를 제창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매우 어려운 시대를 우리가 공유하고 있음을 이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각자의 삶에 대한 의무가 있듯 당연한 존재에 대한 책임이 모두에게 달려있음을 조금이나마 깨닫기를 바라며 오늘도 조금이나마 덜 쓰고 아끼며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구의 선의는 권리가 아님을 끊임없이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평양에서 2년간 살 기회를 가졌던 영국사람의 아주 작은 에세이. 평양에서의 삶이라는 매우 특이한 경험치고는 사진이 꽤나 평범했다. 그들의 체제 안에서라는 특수한 상황도 이해가 안되는것은 아니지만 어떤 제지도 받지않았다는 컷들 안에서의 감흥은 거의 없다. 북한이라는 국가가 주는 이미지가 워낙 폐쇄적인 것도 있고 작가 자신이 국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높은 것도 아니었으므로, 이 정도 선에서 정리하는 뜬금없는 마무리가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녀 조차도 폐쇄적인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이미 동일하게 물들어 있던걸까.
책은 참 곤란하다. 이사짐센터에서 견적 책정에 가장 먼저 눈길을 준다는것이 그 고객이 가진 책 분량이라던데, 무게는 일차로 치더라도 수량이 많으면 공간은 물론이거나 왠만하게 부지런하지 않으면 정리하는 방법도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책이 좋아서 한 두권 모이다 헌책방까지 하시게된 작가의 소소한 얘기가 담겨있다. 유유 출판사에 걸맞는 귀엽고 가벼운 에세이였다.
음침한 책표지에 걸맞게 다섯편의 꺼림직한 단편이 모여있다. 책표지가 글을 담아내기 충분히 적당하듯 소설은 어둠이라는 삶을 배경을 바탕으로 그 무드를 철저하게 풀어낸다. “살인”이라는 다소 낯선 두 음절이 어색하게 단어로써만 존재하지 않도록 작가는 구체화된 공간으로 독자를 밀어낸다. 얇은 단편들을 통해 오랜만에 씁쓸하게 가슴 따뜻한 누군가의 삶을 엿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