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반역인가 -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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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제목이다. 지식인의 언어유희인가 하고 웃어넘겼는데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넘길 절대 가벼운 얘기는 아니었다. 서양학을 전공한 교수님이 쓴 글이라길래 조금 편견을 가지고 무겁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는 오래되었고 누군가의 강의를 들어본 기억이 좀처럼 쉽게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이 세상에 나온 지는 벌써 십 년도 훨씬 넘었는데 작가가 제기한 문제들이 과연 얼마나 해결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그만큼 아무 변화도 없어 보인다) 기성세대의 철밥통으로 무장한 단단한 집단에 오랜 세월은 어떠한 변화를 주었을까. 현재 체감상 느끼는 내 반응은 떨떠름하다. 앞서 해결되어야 할 매우 급한 일들에 앞서 작가의 제안은 아직도 사소하고 부차적인 부록에 불과해 보였다. 일개 시민에 불과한 나조차 이런 인상이 강한데 거대한 사회는 조금이라도 반응했을까? 현재의 한국은 마치 외형으로는 휘황찬란한 문화를 구축해나가고 그 어느 나라도 부럽지 않을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고 있지만, 그 이면에 토대로 마련된 문화를 경시하는 것 같다. 미디어에서 떠들어대는 우리는 우리 자체로 대단해 보였고 창작 그 자체로 기원이 된 것처럼 그려졌다. 이 책은 번역이라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생각지도 못한 우리 사회를 역사를 차근차근 되짚는다. 글 안에는 작가의 사려 깊음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따뜻함이 느껴졌다. 논문 같은 딱딱한 글에서 기대한 반응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책표지는 좀 거슬린다. 인문학이 존재하는 건 많이 사람들에게 읽혔을 때 그 의미를 다 한다고 했지만, 표지가 사람들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웠다. (글이 아주 좋으니 개정판으로) 절대 표지만으로 그 안에 담긴 작가의 멋진 글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을 한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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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8
이토야마 아키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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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추천해서 읽었다. 자신만만하게도 본인이 번역한 소설이었지만 얼마나 뿌듯하게 언급하던지 무엇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세 편의 짧막한 단편소설이 묶인 한 권이다. 사실상 두편은 이어지는 내용이라 시점만 다를뿐 같은 소설이고 그에 비해 아주 짧은 단편이 부록마냥 붙어있다. 툭툭던지는 말투가 정말 가관이다. 주인공인 남자 말투가 워낙 그 모양인가 하곤 넘어갔는데 심드렁한 등장인물이 그 다음의 짧은 단편에서도 또 등장하길래 이 작가 자체가 신기했다. 때문에 당연히 작가는 남자일것이라고 혼자 착각했다. 그런 막연한 츤데레를 그렇게 구체적으로 그려내다니. 작가들의 미친 관찰력에 혀를 내둘렀다.

너무 얇아서 정말 단편소설이 다름없는 한 권이다. 그래서 방금 읽었는데도 뭔 내용인지 기억이 잘 안난다. 작가가 인상깊게 남겨준 그 허물없이 내뱉은 말투만 기억에 남았다. 좋은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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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의 시칠리아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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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칠리아’라는 지명을 들어 본 적은 있어도 그곳이 어느 나라에 속한 도시인지, 지구 상에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 몰랐다. 나름 “~리아”로 끝나는 운율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작가가 친절히 설명해준 시칠리아가 ‘이탈리아’의 장화코 부분의 작은 섬임을 자연스럽게 수긍했다. 작가에게는 오랫동안 생각해온 장소였지만 정말로 나에게는 생소하기 그지없는 어떤 곳이었다.

글을 잘 쓰는 작가 때문에 당장에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작가가 행동을 부추기는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코로나 시기에 이런 책을 읽는다는 건 정말 고역이다. 당시였으면 짜증이 나고 불쾌한 작가의 여행기억까지도 애틋하고 소중한 추억처럼 보였다. 기차는 아무 공지도 없이 연착되고, 기차는 몇 시간을 달려도 종착지에 도착할 기미도 없어 보였으며 숙박 예약은 왜 그렇게나 복불복이던지. 작가의 기록으로부터 몇 해 지나지도 않았는데 첨단 시스템으로 무장한 근래의 온라인 세계에서는 조금도 가당치도 않을 그 과정들이 오히려 잊어버린 후회처럼 애석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이렇듯 늘 편하고 안락함을 추구하며 달려왔지만 예상하지 못한 돌변과 불안한 내일에 대한 걱정을 끊임없이 갖고 살아간다.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불편한 조우를 마냥 대척하면서 고집 있게 나아갈 것인지 다가오는 흐름을 받아 흘러가는 대로 순응하며 유연하게 대처할 것인지. 작가는 이번 여행을 통해 호기심을 안고 행동으로 취하던 젊은 날의 스스로를 그리워하며 조금은 나태해져서 중년의 사내가 된 본인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했다. 안주하는 가운데 느끼는 안정감이 나를 갉는 시간이었음을 뒤늦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

여행은 그 장소, 시간을 떠나 조금은 나를 다르게 바라보는 기회를 준다. 그 때문에 일상에 익숙한 나를 새로 보려 사람들은 여행을 계획한다. 새로 보는 건 시칠리아가 아니어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오랜 마음속에 담아둔 장소가 있다면 그곳이 나의 시칠리아가 되지 않을까. 스산하게 찬 공기가 대지를 덮어가는 가을의 문턱에 이른 오늘, 나는 아무 일도 없는 평화에서 새로운 모험을 하고자 했던 작가의 기록으로 마음이 동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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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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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상황을 겪는다. 간만에 마음을 잡고 집안 정리를 시작했는데 막상 오래된 물건 속에서 발견한 낡은 잡동사니 때문에 손이 멈춰버린 경험을. 시야를 잡아끄는 그 물건은 마치 자연스럽게 나를 물건이 이끄는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밀어 넣고 애초에 현재의 나는 무얼 하려 이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과거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지금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쓸데 하나 없어 보이는 로봇만화 카드나, 낡은 열쇠꾸러미,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쇳조각들이 한데 엉켜있다. 꼭 그런 하찮은 것들은 제 돈 주고 살 일은 절대 없을 법한 고급 과자 틴케이스에 담겨 있고, 그 금속박스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단단하게 닫혀 영원하게 내 기억들을 낡지 않게 영원히 잘 보존해 줄 것만 같았다. 어른이 된 시점의 나는 그 자질구레한 기억들을 아주 가볍게 잊어버렸고 다시 그들과 만나기에 앞서 그 존재 자체를 모를 정도로 자신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짧은 시간에 물건은 늘 많은 것을 상기시켰다. 시간 사이의 빈 여백이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곳에는 단순하게 잡동사니를 수집하던 내가 있었고 현재의 나와 연결될 아주 사소한 단서만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 소설은 정말 낯선 한 권인데 마치 어떤 물건이 그러했듯이 아주 쉽게 내 마음을 과거 시점의 나로 직면하게 했다. 작가는 왜 독자들을 구태여 과거로 돌려보내고 멀뚱멀뚱 세워두려 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특정한 어떤 기분에 사로잡혔다. 슬프다고 해야 할지 어둡다고 할지 모를 뭔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그런 감각이 있었다. 기운은 자욱하게 깔려서 존재는 깔끔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고, 헤집고 나아가려 해도 좀체 그 기류가 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글들을 곱씹는 나에게 손짓하는 무색한 내 행동만 남을 뿐 나는 여전히 맴돌고 주입된 행동을 반복하는 마네킨네코 마냥 그 감정을 계속 강요받았다. 작가는 후기에서 소설을 위해 본인의 과거와 마주해야 했으며 눈을 부릅뜨고 그동안 외면해온 그 기억들과 맞서지 않으면 안 되는 힘든 경험이었음을 말했다. 과연 추잡하고 부끄럽고 유치하기까지 마다치 않을 그 어색한 만남을 아름답게 포장되고 왜곡된 지금 현재 상태로 남겨두지 못하고, 왜 작가는 지금에 와서 기억을 가져와 구태여 기록하려 했는지 나는 조금이나마 이 불편한 기분을 그 탓으로 해석하려 노력했다. 극히 개인적인 추억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보편적으로 이건 누군가의 기억이 될 수도 있었고, 곧 내가 잊어버리고 지나온 세월 탓에 켜켜이 밀봉해 놓았던 그런 기억들을 작가로 인해 억지로도 아니게 자연스러웠던 것처럼 넘쳐 흘러 쏟아지게 하는 경험을 하게 했다.
누구에게나 이런 타임캡슐 같은 시간이 공평하게 있었을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내가 누구였었고, 누구이며, 누구일 것일지. 삶은 정말 씁쓸하고 불공평하며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절망의 지뢰밭으로만 가득해 보였다. 그래도 그 가운데 살아가려고 하는 조금의 의지가 희망이 되고 갈피를 잡으려 애쓰는 게 이미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인지 나는 막역하게나마 추측했다. 철저하게 외면해온 내 기억에 대한 태도가 인제 와서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다.
마치 지금에 와서는 대단한 뭔가라도 되는 듯이 과거를 평가하려 들지만, 지금의 나는 그 아무것도 아닌 혹은 그 어린아이 그대로 아무것도 변한 것 없는 상태인 채로 조금도 성장하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을 뿐인데, 왜 그렇게 잣대를 들이밀어 또 서열화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나 자신을 대면하려 했을까. 그렇게 나는 애매하게 남은 현재와 과거가 어색하게 맞닿아 있는 감정을 껴안은 채로 어른인 척을 해왔을 뿐이었다.

나는 작가가 가볍게 재치 있는 (지금의 시대가 원하는) 그저 그런 이야기만 잘 던지다가 시류에 맞게 갑자기 잠깐 유명해질(그 때문에 작가의 모든 책을 다 읽었지만) 작가라고 오해했다.(혜성처럼 등장했다는 출판사의 어마어마한 수식어가 붙은 작가 소개도 한 몫을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읽고 정말인지 작가가 무섭게 느껴졌다. 작가가 아직 보여주지 못한 앞으로의 깊이와 행보가 너무나도 멀어 보였고, 그건 독자로서 단순하게 너무 궁금하고 기대될 뿐이라는 감상밖에 못 남길 정도로 그저 막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캔모아’니, ‘비기 알 요금’이니 문득문득 던지는 낯설지 않은 워딩에서 나는 작가와 동시대를 조금이나마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단순하게 기뻤다. 이 작품은 개봉을 세 차례나 연기하면서까지 개봉한 세계적인 블록버스터나, 어떤 저명한 상을 받았다는 문학 작품들보다 월등히 뛰어나고 올해 읽은 그 어떤 소설보다 대단했다. 이렇듯 나에게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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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살고 죽고 - 치열하고도 즐거운 번역 라이프, 개정판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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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는 번역가라는 직업과 관련된 이야기였지만, 사실 나는 그보다 번역가 선생님 그 자체의 삶이 더 보였다. 차근차근 본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속삭임에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책장을 넘겼다. 원래 모든 번역가는 글도 이렇게 재미있게 잘 쓰는 걸까?

평소에 나는 이미 완성된 콘텐츠로 글을 접해서 쉽게 번역가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것 같다. (너무 번역이 자연스러운 탓도 있겠다) 때문에 막상 번역가라고 하면 오히려 약간의 선입견이 있다. 흔히 생각하는 오역이라든지 매끄럽지 못한 흐름의 책임이 모두 번역가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오해였는지 알게된다) 막상 자연스러울 때는 대중에게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다가, 불편해지면 그 존재감이 드러난다는 참 아이러니한 직업이 아닐 수가 없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내가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한 오해를 많이 가졌음을 느꼈다. 동시에 내가 쓰는 문장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관점에서 마치 나는 잘못된 번역을 하는 글로 문장을 완성하고 있었다. 이래서 좋은 글을 많이 접하고 양질의 콘테츠를 찾아다니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작가는 번역뿐만 아니라 원래도 글재주가 많은 분인 것 같다. 이렇게 재능이 많은 분이 남의 글을 번역을 하다 보면 오히려 본인의 글을 만들어 나가고 싶지는 않은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렇게 저서를 내고 계신것일수도) 접하지 못한 직업의 세계는 참 신기하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서로의 도움을 주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작가는 쉽고 누구나 읽기 편안한 글을 쓰는 게 목적이라고 하였는데, 이미 이 한 권으로도 충분히 어느 정도 본인의 목적을 잘 달성해 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작가가 번역한 책들을 독서리스트에 담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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