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옆의 책 제4과 "영원한 대화"(13-19p)라는 제목에 나오는 글이다.

 우리 내면에 있는 노인과 아이가 나누는 아름다운 대화.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사람들의 내면세계에는 영원한 아이와 노인이 공존한다. 아이와 노인은 ‘나’와 같은 날에 태어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존재의 일부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랫 동안 그들의 존재를 무시했다. 이제 그들의 솔직담백한 대화를 들으면서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통찰력과 풍요로운 지혜를 만나보도록 하자.


아이: 할아버지는 몇 살이에요?

노인: 음, 몇 살로 보이니?

아이: 여든 살로 보여요.

노인: 그것보다 다섯 살 더 많단다.


아이: 할아버지는 더 크면 뭐가 되고 싶어요?

노인: 나는 별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아이: 제가 뭐가 되고 싶은지 지금 물어봐주세요.

노인: 그래, 물어보마.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지?

아이: 신이 되고 싶어요.

노인: 신?

아이: 네. 할아버지가 별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게 할 수 있잖아요. 물어볼 게 있어요. 친구가 뭐예요?

노인: 네 엄마보다 너를 더 잘 아는 사람이지.

아이: 할아버지는 친구가 있어요?

노인: 너 하나뿐이란다, 얘야. 다른 사람은 없어.

아이: 친구가 한 명뿐이면 너무 적은 거 아니에요?

노인: 친구가 없으면 살 수 없겠지. 근데 너처럼 진실된 친구라면 충분해.

아이: 근데 왜 할아버지는 즐겁지 않죠? 제 우정으로는 부족한가요? 할아버지는 슬퍼 보여요. 밤에 혼자 있으면 무서워서 그래요?

노인: 말이 없다고 슬픈 건 아니란다. 행복하지 않은 게 슬픈 것도 아니고. 그리고 밤의 어두움 때문에 무섭지는 않아. 왜냐하면 혼자라고 느끼지 않기 위해 추억이랑 책들과 함께 하기 때문이지. 만약 네가 무지개에 닿았는데 그것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면 행복할 수 있겠니?

아이: 아니요. 할어버지의 추억... 추억은 어때요? 할아버지는 무지개에 닿은 적이 있어요?

노인: 어제 네가 했던 것들에 대해 지금 생각하는 것이 추억이란다. 무지개에 대해서라면, 닿은 적이 있어. 하지만 누가 내 말을 믿겠니?

아이: 전 믿어요!

노인: 그래. 난 사람들이 내 말을 믿지 않아서 슬펐단다.

아이: 저도 슬퍼요. 왜냐하면 어제 나무 위 둥지에 새 두 마리가 있는 걸 보았는데 오늘은 한 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어떤 새가 죽었을까요?

노인: 분명히 수컷일 거야.

아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노인: 만약 아니라면, 둥지는 텅 비어 있을 거야. 어제 오후에 새들 사이에 전쟁이 있었거든.

아이: 전쟁이 뭐예요?

노인: 두 무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큰 규모의 싸움이란다.

아이: 누가 전쟁을 하죠?

노인: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어른들이 하지.

아이: 거북이는 자기들끼리 안 싸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동물들보다 오래 살고요. 그죠?

노인: 네 말이 맞아. 그리고 아무도 달리지 않고, 어떤 곳에 도달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기 때문이지. 그들은 살면서 그저 걸을 뿐이야. 우린 거북이들에게 그걸 배워야 해. 늘 서두르기 때문에 여러 차례 나쁜 일을 저지르지. 그리고 항상 달리기 때문에 우리를 넘어뜨리는 돌부리를 못 보는 일이 잦지.


아이: 할아버지는 항상 맞는 말만 해요! 할아버지도 아이였던 적이 있어요?

노인: 그럼, 당연하지.

아이: 저도 언젠가 할아버지처럼 될까요?

노인: 물론이지. 왜 아니겠어? 네가 나에게 했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어떤 아이가 너에게 할 만큼 산다면 말이지.


아이: 채권자가 뭐예요?

노인: 채무자보다 더 잘 기억하는 사람이란다.

아이: 지혜로운 건 뭐죠?

노인: 적절히 말할 수 있는 덕목, 그러니까 입을 다물 줄 아는 현명함이지.

아이: 도둑이 뭐예요?

노인: 허락을 받지 않고 다른 사람 집에 들어가는 나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야.

아이: ‘빈대’가 뭐예요?

노인: 일을 하지 않거나 약간의 투자로 큰 이득을 보려고 어리석은 짓을 하는 사람들이지.

아이: 술이 뭐죠?

노인: 불면증을 치료할 수 없는 약이야. 하지만 불면을 즐겁게 해주지.

아이: 사랑은 뭐예요?

노인: 크고 작은 우리의 이기심을 지울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란다. 그리스 사람들은 그걸 ‘카리타스’라고 불렀어. 그건 인류애, 가족애, 친구간의 사랑, 연인간의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지.

아이: 내일은 뭐죠?

노인: 오늘 못한 것을 위한 이상적인 날이야.

아이: 사무실은 뭐예요?

노인: 아내에게 받은 집안의 피로를 해소시키기 위한 장소지.

아이: 향수는 뭐예요?

노인: 다른 냄새를 감추기 위해 사용하는 냄새란다.


아이: 새들은 왜 노래 부르죠?

노인: 자신들의 자유로부터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지.

아이: 하지만 전 새장 속에 갇힌 새들이 노래 부르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노인: 물론이지, 그렇고 말고. 언젠가 넌, 무엇으로도 그리고 누구도 가둘 수 없는 내면의 자유를 이해하게 될 거야. 그리고 내면의 자유는 영혼의 침묵이란다. 

아이: 행복하다는 게 뭐예요? 그리고 뭐 때문에 침묵이 존재하죠?

노인: 늘 자기 자신에게 진솔한 것이 행복이지. 그리고 침묵은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한 더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


아이: 할아버지는 부자예요?

노인: 갖고 싶은 전부를 갖고 있지는 않단다.

아이: 얼마나 갖고 있는데요?

노인: 다른 사람들과 나눌 줄 아는 것 정도는 갖고 있지.

아이: 선은 뭐고 악은 뭐예요?

노인: 신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둔 양심의 소리를 들을 때만이 네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을 거야.

아이: 신은 어디 있어요?

노인: 네 눈으로 보고 있는 것들 속에 신이 있지. 네 마음이 느끼는 것 속에도 있고, 너의 지혜가 다다른 곳에도 있단다.

아이: 할아버지는 왜 구름 보는 걸 좋아해요?

노인: 모양이나 색깔이 변하는 조각 작품처럼 보이기 때문에 구름 보는 걸 좋아한단다. 구름의 조각가는 신이겠지.


아이: 우리는 왜 시간 약속을 잘 지켜야 하죠?

노인: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존중하기 위해서란다. 근데 너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있어? 이브가 준 사과를 아담이 먹었다는 이야기. 무슨 생각이 들었어?

아이: 굉장히 배가 고픈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할아버지, 제가 할아버지보다 항상 더 많이 웃는 것 같아요.

노인: 그렇지. 너는 이제 막 삶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잖니. 나는 죽음을 향해 걷기 시작했고.

아이: 하지만 죽는 아이들도 있잖아요.

노인: 그렇지.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삶에 정들어 온 상태에서 그것을 저버리는 것이 훨씬 더 고통스럽단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아이: 할아버지 말이 맞아요.

노인: 근데 그 눈물은 뭐니?

아이: 제 영혼에서 빠져나온 이슬이에요.

노인: 친구, 내 친구야! 얼마나, 얼마나 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네 곁에서 배울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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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09-0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 정말 저 책에 이런 글이 나와요? 스페인어를 안 배워도 사고 싶어지네요.

닉네임을뭐라하지 2011-09-01 16:00   좋아요 0 | URL
네 ㅎ 참 알흠다운 대화죠? :)

2011-09-01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1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통 2013-04-03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감사합니다
예습해가야되는데 도움이 많이됬습니다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별점을 매길 수 있어서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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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페인팅
박금산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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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네 부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이다. 1,2부를 봤던 어제까지만 해도 완독 후 '리뷰' 란에 뭔가 끼적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40자평에다가 "그냥 좋다"라고만 간단히 적으려고 했다. 헌데 오늘 3부를 보고 4부까지 본 뒤 마음이 바뀌었다. 4부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글의 말미에서 이 문장은 철회될 것이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이 작가, 담대하게도 자기 고백적인 소설을 썼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도 팔릴까 말까 하는 판국에 대부분 소설 독자들이라면 관심도 갖지 않을 인기 없는/비주류 소설가의 삶에 대한 소설을 쓴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엔 사소설이나 고백 소설이라면 응당 있을 법한 침잠된 분위기가 없다. 그건 소설가 본인이라고 하는 게 맞을 주인공인 '나'와 썰을 푸는 화자 사이의 거리가 꾸준히 유지되기 때문이고, 그 거리 사이에 유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학적인 유머도 아닌 것 같고 자조적인 유머도 아닌 것 같으며 말장난식 유머도 아닌, 그러면서 이 모든 게 포함되어 있는 그런 유머. (화자의 이런 어조가 작가의 원래 스타일인지 아니면 이 소설에만 그렇게 쓰였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 소설이 (문학사적으로) 가치가 있다면, 비주류 소설가의 생활사를 쓰는 동시에 그 맞은편에 '문학예술위원회'라는 (한국문학)(제도)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비주류 소설가의 생활사와 제도 사이에는 '자본'이라는 교집합이 철저하게 관여하고 있다. 생각만 해도 웃음보다는 한숨이 먼저 나오고야 마는 자본. 더군다나 자본과 문학이라니. 이미 자본에 결탁해버리고는 나 몰라라 그럼에도 문학입네 부르짖는 집단이 있는 한편, 그러나 자본이 어떻게 문학과 교접하고 있는지 낱낱이 보고해주는 이런 소설도 있는 것이다.


편지 형식으로 쓴 3부만 빼고 나머지 1,2,4부에는 작가가 작심이라도 한 듯한 각주가 잔뜩 달려 있다. 이 각주들이 이 소설에서는 독특한 역할을 한다. 고백 형식의 소설 속에서 각주의 존재란 고백 속의 고백, 말하자면 심층적인 고백과도 같은 외양을 띠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것까지는 아니겠지만 형태적으로 그렇게 보인다.) 나의 진실된 고백을 들어주오. '실소'.


어쨌거나 이 소설,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난 유머가 있는 소설 앞에선 누구보다 먼저 한쪽 무릎을 꿇고 책을 읽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다른 파트에서보다 유난히 '세부'를 강조한, 그래서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있었던 일을 소설화했다기보다는 순수하게 지어내서 쓴 게 아닐까 싶은 3부를 지나 4부에 들어와서 마음이 바뀌었다. ('세부'는 장편소설의 필수 구성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세부'하면 필리핀 '세부'가 더 잘 떠올라서 영어로 '디테일'이라고 바꿔서 생각해봤다. 단박에 [나는 꼼수다]가 생각났다. 디테일에 강한 방송, 아이튠즈 팟캐스트 청취율 세계 1위에 빛나는 [나는 꼼수다]!)


4부는 한마디로 실패한 작품이었다. 이건 뭐, 앞서 장점으로 언급한 것들도 거의 드러나지 않고, 그렇다고 인도에서 있었던 일들이 디테일하게 보여지는 것도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단순한 에피소드 나열식의 구성. 이렇게 듬성듬성 쓸 바엔 차라리 인도에서 있었던 일을 따로 장편화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짧았다. 나는 작가가 1,2,3부와 다르게 4부에선 왜 (굳이) 이렇게 썼을까, 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생각의 빈틈을 채워준 건 '해설'이었다. 미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광고문구들이 곳곳에 존재하는 해설이 아니라, 정말 해설이었다. 해설에 의하면 4부의 지루함이나 산만함 속에 "20일 이상의 해외연수라는 규정이 다른 세계를 확인하고 탐구하기에 얼마나 부족한 시간인지, 그래서 제도적 지원이라는 명분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384쪽)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도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소설의 구조적인 문제 그 자체로 보여주었다는 것.


해설을 읽자 내 꼬인 마음은 단숨에 해소됐고, 이렇게 리뷰 코너에 성깃성깃 페인팅을 하고 있다. 해설에도 두 차례 나오는 구절이지만 "무언가 하나를 끝까지 밀고 나간 삶에 그 전부가 닿아 있다는 사실"(181쪽)을 알게 된 작가가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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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1-08-28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쓰할 소설 작품을 이렇게 리뷰로 알려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닉네임을뭐라하지 2011-08-29 04:02   좋아요 0 | URL
패쓰라니... 아닌데요;; 이 소설은 괜찮은데요 ^^;

poptrash 2011-09-1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뭔가... 홍상수 같은 느낌인데?

닉네임을뭐라하지 2011-09-11 16:49   좋아요 0 | URL
음, 그런가? 근데 남녀상열지사는 안 나옴 ㅎ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사실. 바로 2003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전해인 2002년에 문학동네소설상 본심에서 떨어졌다는 것. 어떤 평을 들으며 떨어졌을지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오늘, 오랜만에 모 헌책방에 들렀다가 2002년 문학동네 겨울호를 구하게 되어 찾아봤다.  


우선 김윤식의 평

ㅡ 두 가지 점이 뚜렷했다. 소설적 존립 유형이 토종이라는 점이 그 하나. 다른 하나는, 풍속 유형이라는 점. 둘 다 소설이 지닌 발생사적 강점이라 할 것인데, 매우 딱하게도 이 두 가지 점이 그 나름의 본령을 발휘하기에는 각각 상당한 제약이 주어져 있어 보였다. 농경사회에서 비롯, 적어도 산업사회의 터전이 건재해야 한다는 조건이 그 하나인데, 이 터전이 무너져가는 오늘의 처지에서 보면 그 존립 기반의 빈약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대상, 가령 야구라든가 하는 직업적 특이성을 그릴 때 지독한 풍자라든가 유머, 요컨대 '지극한 가벼움'을 지향한다 해도 거기엔 산업사회를 지탱했던 철학이 깃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을 염두에 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다가왔다.


김화영의 평은 없다.


마지막으로 오정희의 평.

ㅡ 한국프로야구의 원년으로 기록되는 1982년 창단되어 1985년에 해체된, 프로야구팀 삼미슈퍼스타즈와 같이한 개인의 역사를 그리고 있는 이채로운 소설이다. '삼미슈퍼스타즈'라는 비운의 야구팀이 그 야구팀의 어린이 회원이었던 한 사람의 인격과 정서, 인생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가 이십 년의 시간에 걸쳐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 혹은 고백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 강하고 빠르고 쉴새없고 비정한 프로의 세계에 대비되는 유희성의 회복, 진정한 아마추어로서 아름다운 야구의 복원은 곧 본질적 인생의 복원이라는 - 전언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십 년의 세월을 소설적 전략이나 계산 없이 펼쳐 보이는 데서 생기는 장황함과 시시콜콜함이 지루하게 이어져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야구에 비유하여 펼쳐지는 사유는 자유롭고 재기가 번득이나 산만한 게 큰 흠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은 이 소설에 대한 한겨레 문학상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책 소개 코너에서 스크랩했다.)

현대 젊은 세대의 경쾌하면서도 치열한 삶의 자세를 스포츠 열기로 상징화한 감각성이 돋보였다. 실재했던 삼미 슈퍼스타즈 야구팀을 매개로 한 등장 인물들의 운명의 부침은 곧 현대인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실체이기도 하다. 특히 감각적인 문체와 스포츠를 통한 인생론이 탁월하다. - 임헌영(문학평론가)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처음에는 응모작 가운데서 눈에 잘 띄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단 잡게 되면 단숨에 읽어치우게 되는 재미와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심사위원들 사이에 '가벼움'이 잠깐 문제로 떠올랐지만 그 가벼움은 이 소설의 주제이기도 했다. '하잘것없는 인생'에 대한 서술이면서도 팬클럽 결성과 야구 시합의 결미 부분에 가서 전망은 경쾌하게 열리고 있다. 임시직 노동자, 청년 실업자, 신용 불량자가 수백만씩 되는 무한 경쟁 사회에서 이 소설은 개그 같은 말 솜씨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 황석영(소설가)

자본주의 세계권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은 결코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가볍고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소설을 드는 순간, 다양한 문화적 코드와 유니크한 어조를 기반으로 한 문장의 강렬한 힘에 의해 우리가 '박민규식 에스컬레이터'에 자연스럽게 태워지기 때문이다.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을 자유자재 섞어 향기로운 이야기로 빚어낼 수 있는 신인 작가를 만나는 일은 분명히 우리 소설 작단의 축복이자 희망이다. - 박범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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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25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연랑님 :)
작년에 떨어졌던 작품이 당선되는 경우가 종종 있나봐요. [수상한 식모들]도 그랬는데 말이에요. 산만하다, 철학이 깃들지 않았다, 1년 먼저 태어났으면 큰 일 날 뻔했네요.

닉네임을뭐라하지 2011-08-25 20:53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말없는수다쟁이님
출간될 만한 소설이라면 시간이 좀 지나서라도 꼭 출간되는 것 같아요 :)

poptrash 2011-08-25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민규 초창기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을 보면 과연 단편 소설을 제대로 쓸 수 있나 같은 우려 섞인 말들도 있었다던데... ㅋㅋ 참, 볼라뇨 전화를 이제야 봤는데 좋더라. 번역이 특히 좋던데.

닉네임을뭐라하지 2011-08-25 20:55   좋아요 0 | URL
걱정이 많은 게 평론가들의 특징인가... -_-a
볼라뇨 [전화]는 볼라뇨 입문서로 꽤 괜찮은 거 같은데, 암튼 1쇄 다 소화해서 맞춤법 틀린 거랑 역자가 좀 찝찝해하는 부분 다시 고쳐셔 2쇄 찍었으면 좋겠다.
열린책들 카페에 가면 [전화]와 관련된 번역자와 편집자의 알흠다운 대화도 있음둥 ㅎㅎ

2011-08-28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9 0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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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를 쓰려다 별점 앞에서 주춤, 한다. 한참 좋은 말을 한 것 같은데도 별점이 네 개밖에(?) 없는 소설집도 있고, 별로 좋은 말을 많이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별점이 네 개씩이나(?) 되는 소설집도 있고. 별이 열 개 정도 있으면 체크하기가 좀 더 쉬웠을까. 결국 이 소설집은 또 어쩌란 말인가.

 아무려나, 다음은 [더블]에 실린 각 단편들의 문학적(?) 성과(???)다.


+ 비치 보이스 ㅡ 2006 이효석문학상 후보, 2006 현대문학상 후보
+ 굿바이, 제플린 ㅡ 2007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 깊 ㅡ 2007 황순원문학상 후보
+ 아치 ㅡ 2007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8 올해의 문제소설
+ 누런 강 배 한 척 ㅡ 2007 이효석문학상 수상, 2007 현대문학상 후보
+ 龍龍龍龍 ㅡ 2008 황순원문학상 후보, 2008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2009 이상문학상 후보
+ 크로만, 운 ㅡ 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 낮잠 ㅡ 2008 이상문학상 후보, 2008 이효석문학상 후보
+ 근처 ㅡ 2009 황순원문학상 수상, 2009 현대문학상 후보
+ 루디 ㅡ 2010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11 올해의 문제소설


  모아놓고 보니 이거 무슨, 프로야구 올스타전을 보는 듯한 화려한 작품들의 총집합이 아닌가. 물론 올스타전에 뽑혔다고 그 선수가 무조건 좋은 선수라고는 할 수 없듯, 문학상 후보에 오르거나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그 작품을 무조건 좋은 소설이라고 믿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터. 하지만 위 소설들을 비롯 다른 여덟 편의 소설들을 주르륵 읽어본바, 대체로 좋았다.

 오, 이거 좋은데?
 와, 이거 쫌 짱이다.
 아,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는 이 맑고 쓸쓸한 정서.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아니 이게 웬 자기 꼴리는 대로, 그러니까 리비도적... 난 당신의 리비도엔 관심이 없는데, 싶어 보는 듯 마는 듯 본, 그래서 어제오늘 읽었지만 기억도 거의 안 나는 소설도 두 편 정도 있는 것 같고...

 하지만 몇 편의 좋은 소설, 또 몇 편의 그럭저럭 소설, 두어 편 정도의 읽으나마나 한 소설 가운데 눈이 멀어질 만큼 빛나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루디"였다. 오오, 루디. "루디"는 정말, 와, 좋다는 말도 안 나올 정도로 좋았다. 작년에 계간지에 실린 걸 읽었을 때도 머리를 뜨겁게 강타한 느낌을 받았는데 일 년 남짓 지나 다시 읽어도 그때만큼, 혹은 그때 이상으로 좋았다.

 [더블]은 그냥 넘길 테니 떡을 치든 떡을 해먹든 그도 아니면 동인문학상을 주든 니들 맘대로 해라.
  하지만 "루디"만큼은 절대로 못 넘긴다.

 뭐 이런 기분이랄까.

 어느 평론가가 어느 문예지에 이런 식의 말을 한 적이 있었지. 2010년은 "루디"의 해로 기억될 거라고. 아니, 1년 동안 쏟아지는 한국소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그 모든 소설을 다 보지도 않았을 게 분명할 텐데 어찌 이런 도발적인 발언을! (어차피 백 편을 읽어야 한 편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더군다나 장편도 아니고 단편에 불과한 "루디"가 과연 어떻게 2010년을 떠맡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평론가도 아니고, 물론 미문가도 아니며, 당연히 예언자도 아닌지라 뭔가 그럴싸한 말은 못하겠고 그냥 이런 리뷰인지 애정표현인지 모를 글이나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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