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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쪽

 모파상. 나는 아직도 그의 작품을 읽으면 변함없는 즐거움을 느낀다. 왜 다른 작가들보다 모파상을 더 오래 읽게 될까? 무엇보다도 그의 소설은 내용이 풍부하고 범위가 넓다. 거기다가 너절한 논평이 없다. 또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특성이 있다. 자연스럽게 그 자신만의 색깔을 강화하는 힘, 점점 넓어지는 그림의 구도, 하나의 사건이 가느다란 색선(色線)에 의해 다음 사건으로 부드럽게 연결되는 장면 전환, 사건의 여파를 넓혀 나가는 방식 등이 수채화처럼 은은하여 언제 국면이 전환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다. 모든 글쓰기는 이 장면에서 저 장면으로 건너뛰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특별히 공을 들여야 하는데, 그의 소설에서는 그런 리듬의 변화가 전혀 없고 지그재그로 확 젖혀지는 느낌이 아예 없다. 아주 짧은 글에서도 각 부분들이 잘 호응하여 글쓰기의 속도에 막힘이 없고 자연스럽게 펼쳐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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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8쪽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너무나 위대하고 거대하고 신화적이어서 비평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호메로스가 인간이든 신이든 대상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눈초리가 아주 인상적이다. 그는 인간과 신, 둘 다 초월했다. 모든 행동과 에피소드는 간결하고 분명한 방식으로 양식화되어 있다. 고도로 양식화되어 있어서 항아리 그림의 양식화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뛰어난 인간성의 면모와 훌륭한 비유의 손길을 엿볼 수 있다. 단순한 대상들과 그것들의 기본적 형태와 특질을 사랑하기. 호메로스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아이러니의 측면이다. 영웅들(영웅들이 있기 때문에 신들이 비로소 중요한 존재가 된다)을 소개할 때 그들의 단점도 함께 제시한다. 영웅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완벽함을 배반한다. 자신의 가면이 계속 벗겨지는 무언극의 연기자들과 유사하다. 사실 영웅적 신화의 창조자 호메로스는 그런 사실들을 계속 비웃고 있는 듯하다. 또 다른 포인트는 호메로스의 유머다. 3천 년이나 지속되어 온 유머 감각이지만 정말 생생하다. 가령 게임 장면이 그러하다. 아킬레우스는 안틸로코스의 아첨에 넘어가고 아가멤논은 승부를 겨루지도 않고 상을 받는다. 아킬레우스는 객관적으로 관찰되고 있으나 흑백의 구도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자기만 생각하는 심술꾼으로 등장한다. 그르 구제해 주는 유일한 장면은 마지막 프리아모스가 나오는 짧은 연설 장면이다.

 디오메데스는 또 다른 자신감에 넘치는 친구다. 오디세우스는 아주 흥미진진한 인물이다.

 대체로 보아 트로이아 사람들은 불쌍하게 느껴진다. 네스토르와 오디세우스를 제외한 그리스 사람들은 둔탁하고 시무룩하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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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7쪽

 프랑수아 비용. 그처럼 문학의 숲에서 독보적인 존재도 없을 것이다! 어두운 분위기, 드라마틱하고 순진하고 그러면서도 세련된 사람. 병적이고, 아이러니에 가득 차 있고, 명랑하고, 자기 연민에 시달리면서, 언제나 근육질이고, 신경질적이고, 비틀린 사람. 늘 긴장하고 있다. 이완은 없으며 그 긴장을 깨뜨려 주는 긴 간주곡도 없다. 문학적 위상을 놓고 볼 때, 아주 날씬하면서도 키가 큰 사람이다. 없애 버려도 좋은 비계란 전혀 없고, 언제나 단단하면서도 더 이상 축소하기 어려운 고갱이만 갖고 있다. "엉뚱한" 낭만적 기질, 부드러움, 감상적인 태도 따위는 전혀 없다(그는 워즈워스와는 아주 대조되는 인물이다. 워즈워스는 대체로 부드러움과 감상적인 태도를 가지고 효과를 내는 시인이다. 영원불멸의 측면에서 보자면 워즈워스는 프랑수아 비용의 절반도 쫓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워즈워스의 문학적 수단인 낭만주의는 원래 작업하기가 까다로운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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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62쪽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깊은 감명을 받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읽어 온 소설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올더스 헉슬리너 에벌린 워보다 훨씬 훌륭하다. 이 두 작가 못지않은 풍자 정신이 있으면서도 문제의 핵심 ㅡ 환경, 유전, 문명 등 ㅡ 에 직접 대든다. 데이지와 조던 등 등장인물들이 실현하는 인생의 덧없음과 비극이 아주 절실하게 다가온다. 개츠비는 유일하게 그 시대를 표상하는 인물로서 세상에 뛰어들어 정복하려 했으나 물론 실패한다. 스토리는 은밀하면서도 엄정하고, 간결하면서도 절제되어 있다. 라신의 비극 못지않게 "아주" 비극적이다. 개츠비는 그 시대의 특징에 편승하여 그 시대를 매혹하려고 애쓴다. 소설 속에서 아주 은밀한 주관적 구도가 사용되고 있다. 그 구도는 부분적으로 스콧 피츠제럴드 자신이고, 또 부분적으로 그의 천재가 객관화한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여 모든 것이 그의 절반쯤 눈먼 비전에 의해 다소간 왜곡된다. 그는 그 시대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시대를 받아들인다. 이것이 그에게 피상적인 동정심을 부여하지만, 그래도 아무튼 그의 사람들과 그들의 딜레마에 대한 동정심을 갖게 만든다. 기본적으로 개츠비는 그들을 반대하고 그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헉슬리의 <앤틱 헤이>나 워의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연민이 있다. 아주 유연하면서도 자연스럽고 강렬한 그타일로 그 연민을 보여 준다. 뷰캐넌의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 등의 묘사도 적절하다. 감정이 충만한 장면들도 아주 세련되게 다루어져 있다. 로렌스의 소설보다 훨씬 더 단단하다. 일방적 사랑과 비극적 결말이라는 사랑의 이야기를 전형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는 그리 간단하지 않으면서 그리 복잡하지도 않은 거대한 운명이 깃들어 있다. 소설의 구조도 건축학적으로 아주 단단하게 축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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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쪽

 헤로도토스. 6개월 만에 독파하다. 아주, 아주 재미있었다. 그의 가장 뛰어난 점은 인간미가 넘쳐흐른다는 것이다. 그가 잘 속아 넘어가고, 부정확하고, 품위가 없다는 사실은 오히려 하나의 매력이다. 게다가 그런 결점이 과도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끝없는 호기심, 사소한 사건에 대한 애정, 인간의 약점에 대한 한없는 애정은 정말 인상적이다. 그의 저작에는 현대화해 주기를 바라는 주제들이 넘쳐난다. 광대한 아이디어의 과수원(果樹園)이다. 인간성의 필수적 <본질들>이 거듭 다루어진다. 또한 기이하고 야만적인 과거들을 다룸으로써 찌릿한 이국 정서를 풍긴다.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다 밑줄을 쳤다. 흥미로운 부분, 미학적으로 쾌감을 주는 부분, 뭔가 드러내 보여 주는 부분 등. 종종 소위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역사적 사건들 ㅡ 사건과 관련된 건조한 기록 ㅡ 은 역사가에게나 중요할 뿐, 따분하면서도 가치 없어 보인다. 오히려 X라는 인물이 Y라는 날에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먹었느냐가 더 중요해 보인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이집트를 다룬 권(券)이다. 첫 네 권이 나중 다섯 권보다 더 뛰어나다. 내가 완벽한 판본을 준비해야 한다면 아홉 권 모두 선택하겠다. 번역은 의심할 나위 없이 <클래식>이다. 헤로도토스의 독창적인 측면은 학문적 객관성과, 학문과는 무관한 기이한 사건들을 적절히 혼합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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