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 (4) 태백산 천제단

장군봉 능선은 어머니 두 가슴처럼 푸근

 

태백산(1566.7m)은 한민족의 시원이 담겨 있는 유서 깊은 산이다.단군의 신비로운 탄생과 활약을 기록한 단군신화의 무대가 이곳이기 때문이다.태백산은 이러한 상징성과 더불어 눈꽃과 일출이 아름다워 신년 일출산행 코스로 인기가 좋다.기축년 새해를 태백산 천제단에서 맞는 것은 어떨까.그곳 시퍼렇게 열린 하늘을 향해 무당 할미처럼 극진한 절을 올려 보자.


 
▲ 부소봉 뒤로 펼쳐진 첩첩 산 만다라. 태백산에서만 볼 수 있는 장엄한 풍경이다.


●태초의 성스러운 분위기… 산행길 압도
딸깍!헤드랜턴을 켜자 화들짝 놀란 어둠이 황급히 피하면서 빛의 길이 생긴다.이미 하늘에서는 수많은 별이 저마다 크고 작은 랜턴을 켜놓고 운행하고 있었다.이른 오전 4시30분,태백산 천제단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당골광장을 떠났다.계곡으로 들어서자 차가운 공기가 뺨을 때리고,향기로운 냄새가 막힌 코를 뚫는다.


태백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웅장한 산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다.사람마다 느끼는 크기와 강약은 다르겠지만,기본적으로 단전을 감싸주는 맑고 따뜻한 기운이다.그 기운을 한번이라도 느껴본 사람들은 줄기차게 태백산을 찾고,또 태백산 예찬론자가 된다.전국에서 가장 많은 무속인이 태백산에 모여,신내림(接神)을 받으려고 애쓰는 이유도 이런 연유와 일맥상통한다.
반재 오르는 길에 호식총(虎食塚)을 만났다.지금은 남한에서 호랑이가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지만,태백 지역에서는 100년 전만 해도 호랑이에게 물려간 화전민의 수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절반은 올랐다는 뜻의 반재를 지나자 동편 하늘에서 심상치 않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시간은 충분했으나 마음이 달떠 걸음을 재촉한다.
물 좋기로 소문난 망경사 용정(龍井)에서 목을 축이고,단종비각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단종은 수양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변변한 묘 하나 없이 구천을 떠돌았다.이를 애잔하게 생각하던 태백산 인근의 백성들이 단종을 태백산 산신으로 모셨다고 한다.절을 올리고 길을 재촉하니 곧 천제단이다.시간은 6시50분.다행히도 거세기로 유명한 천제단 바람이 잠잠하다.  


●천제단에 서서 호연지기 품는다
시나브로 해가 뜨는 동남쪽으로 핏빛 띠가 깔렸고,검붉은 빛은 물에 풀리듯 하늘에 풀어져 장쾌한 산줄기들을 물들인다.꼭 신비스러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성스러운 분위기다.어쩌면 단군신화에 나오는 상제(上帝) 환인의 서자이자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풍백,우사,운사를 비롯한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밑에 내려올 때가 저러했을지도 모른다.환웅의 무리가 유성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하는 순간 눈이 부셨다.천제단으로 한민족 태초의 빛이 쏟아진다.
주변의 무속인들은 얼굴에 환한 빛을 받으며 해를 향해,또 천제단을 향해 두 손을 모아 바쁘게 절을 한다.
태백산 천제단만큼 사방팔방의 산들이 일대 장관으로 펼쳐진 곳이 또 있을까.어둠에서 깨어나는 산줄기들은 마치 천제단에 서 있는 관찰자를 향해 일제히 말을 몰아 달려오는 것처럼 역동적이다.
아!이 후련하고 시원한 느낌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선인들은 이를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불렀다.제단에 절을 올리고 드넓은 부소봉의 품에 안긴다.이어지는 갈림길에서 문수봉으로 들어선다.빛이 가득 쏟아지는 숲 터널을 통과하니 문수봉이다.
태백산은 부드러운 육산인데,문수봉 정상에만 검은 바위들이 무더기로 있어 더욱 신비롭다.멀리 천제단과 장군봉으로 이어진 부드러운 능선이 눈에 들어왔다.
천제단과 장군봉은 영락없는 어머니의 두 가슴이었고,두 봉우리에 쌓은 제단은 영락없는 젖꼭지였다.태백산은 두 가슴으로 배달민족을 길러냈던 것이다.문수봉에 오래오래 머물렀지만 떠날 시간이 되었다.태백산의 높고 거룩한 기운을 품고 다시 억센 세상으로 발길을 돌린다.
태백산은 길이 순해 겨울철에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등산 코스는 당골에서 천제단에 올랐다가 문수봉을 거쳐 제당골로 내려오는 코스가 좋다.당골~반재~천제단 4.4㎞ 2시간,천제단~문수봉~당골 6㎞는 3시간 걸린다.
산악전문작가


 
 
▲가는 길과 맛집
승용차는 중앙고속도로에서 서제천 나들목으로 나와 연결된 국도를 이용해 영월을 거쳐 태백을 향한다.열차는 청량리역→태백역이 08:00 10:00 12:00 14:00 17:00 22:00,버스는 동서울터미널→태백터미널이 06:10~18:30까지 운행.태백터미널에서 당골까지는 07:30부터 수시로 버스가 운행한다.태백 시내의 맛집은 연탄불에 질 좋은 태백 한우를 굽는 태성실비집(033-553-5289)과 강원도식 한정식을 내오는 너와집(033-553-9922)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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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3) 설악산 한계사지
 

설악산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리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눈이 소복이 덮인 한계사 절터.설악산 한계령 아래 장수대에서 절터까지는 불과 200m가 안 된다.하지만 이 짧은 길은 시공을 초월해 눈부신 폐허의 공간으로 이어진다.설악산은 전문 산꾼에서부터 나이 지긋한 노인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즐겨 찾는 산이다.설악산은 크게 외설악과 내설악,남설악(점봉산 일대)과 가리봉 능선 등으로 나누어지고,이들은 제각기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외설악이 화려하다면 내설악은 고요하고,남설악이 웅장하다면 가리봉 능선은 장쾌하다.


 
▲ 덩그러니 남은 석탑과 그 너머 펼쳐진 가리봉 능선의 빼어난 자태.쉬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만드는 풍경이다.

●한계령 아래 숨은 절터
한계령은 내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고개이고,그 고갯마루는 설악산을 구성하는 세 줄기 산군들의 분수령이 된다.한계령 북쪽으로는 장쾌한 설악산 서북능선이 흘러가고,남쪽으로 부드러운 점봉산 능선이 시작되며,서쪽으로는 필례령을 지나 가리봉 능선이 물결친다.
“한계사지를 아십니까?”
설악산을 수백 번 가봤다는 설악산 도사들도 한계사지란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다.한계사지는 한계령 서쪽,설악산 서북릉과 가리봉 능선의 가랑이 사이에 은밀하게 숨어 있다.변변한 안내판 하나 없어 어쩌다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오직 입에서 입으로만 알려진 곳이다.인제에서 한계리를 지나면 쇠리,옥녀탕,장수대가 차례로 나타난다.장수대는 불쑥 솟은 기둥같이 깎아지른 암벽이 마치 장군과도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설악산국립공원 장수대분소 옆으로 들어가면 갈림길이다.여기서 왼쪽 길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흉가처럼 남아 있는 옛 설악산관리사무소 건물이 나오고,이곳을 지나면 갑자기 양지바른 평지가 나타나는데 여기가 바로 한계사지다.

 
 


●구산선문의 초발심이 담긴 풍경
절터를 찾았을 때 밤새 쏟아진 눈이 건물과 기단 흔적을 말끔히 덮어버렸다.오직 흰 모자를 쓴 탑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이곳이 절터임을 증거하고 있었다.절터는 폐허의 공간이다.하지만 소복하게 눈이 쌓인 폐허는 태초의 공간처럼 신성하게 빛났다.석탑 너머 지금 막 땅에서 솟아난 듯한 가리봉과 삼형제봉의 수려한 자태에 입이 쩍 벌어졌다.설악산 가리봉 능선이 이처럼 힘차고 아름다운 줄 이제야 비로소 알았다.그 풍경은 시신경을 통해 대뇌로 전달됐고,놀란 뇌에서 울리는 찌잉~ 소리가 사지로 퍼지며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그것은 전율이었다.


전율은 자연에서 느끼는 숭고미의 다른 표현이다.이곳을 은근하게 일러준 책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의 저자 김봉렬(한국예술종합학교)교수의 건축적 지식을 정리해서 듣는 것은 한계사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건물은 지어지는 반대 순서로 허물어져 내린다.나무로 이루어진 한국 건축의 폐허들은 기단과 초석 말고는 모두 사라져 버린다.그것들은 터를 닦았던 건축 당시의 근본적인 생각들만을 전한다.껍데기는 사라지고 오직 가장 근원적인 것들만 남는다.”
그가 한계사지 폐허에서 본 것은 ‘모든 구속을 거부하면서 참다운 진리에 도달하려고 했던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자유로운 조형 정신’이었다.구산선문은 신라 말에 당나라에서 선을 공부하고 돌아온 승려들이 지방에 열었던 아홉 개의 선문(禪門)을 말한다.김 교수는 한계사지가 구산선문 중 강릉 사굴산문의 일원으로 창건된 것으로 보고 있다.한계사지에서 김 교수처럼 구산선문의 초발심을 읽어낼 능력은 없지만,절터 앞으로 끌어들인 가리봉 산군의 빼어남에 전율할 줄 아는 내 몸을 고맙게 생각한다.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자리에서 저 풍경을 읽어내고,이 자리에 절을 세우겠다고 다짐했을 스님의 희열과 초발심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스님처럼 두 발이 눈에 묻힌 줄도 모르고 ‘하나의 사건’ 같은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장수대에서 한계사지까지는 200m 남짓한 거리다.좀 더 걷고 싶은 사람은 대승폭포로 향한다.88m 높이의 대승폭포는 금강산의 구룡폭포,개성의 박연폭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폭포 중 하나로 꼽힌다.  


●가는 길과 맛집
동서울터미널에서 장수대 경유 속초행 버스가 1일 7회(06:30, 08:30,09:20,10:00,11:30,14:00,18:05) 운행한다.자가용은 양평~홍천~인제를 거치는 길이 가장 빠르다.한계리 근처의 용대리는 황태의 고장이다.백담사 입구에 있는 할머니황태구이(033-462-3990) 식당이 인기있는 맛집이다.
산악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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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2> 속리산 견훤산성

발로 느껴라, 1100년전 견훤의 기백을…

 

속리산만큼 오묘한 이름을 가진 산이 또 있을까.법주사를 중창하기 위해 보은 땅에 도착한 진표율사를 따라 밭을 갈던 소들과 농민들이 속세를 버리고 불도에 입문한 산이라 하여 속리산이 되었다는 것.여기에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하는구나,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는구나.(道不遠人 人遠道, 山非離俗 俗離山)’ 라는 고운 최치원의 시 한 수가 더해지며 속리산의 이름은 더욱 깊어진다.


 
▲ 1500년 넘는 세월을 견뎌낸 견훤산성 성벽 너머로 청화산이 보인다.


●상주 사람들이 섭섭한 까닭
흔히 ‘보은 속리산’이라고 하는데,상주 사람들은 그게 늘 섭섭했다.속리산은 충북 보은뿐만 아니라 경북 상주에도 걸쳐 있고,또 상주 쪽에서 바라보는 속리산의 풍경이 기막히기 때문이다.상주시 화북면은 속리산,청화산,도장산,시루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가히 산국(山國)이라 부를 만하다.이 곳에는 두 개의 보물이 숨어 있다.하나는 풍수지리에서 십승지지(十勝之地)로 알려진 우복동(牛腹洞)이고,다른 하나는 견훤산성이다.
재미있게도 두 개의 보물이 모두 속리산과 관련을 맺고 있다.우복동이 속리산의 강한 화기(火氣)를 피해 꼭꼭 숨어 있다면 견훤산성은 속리산이 잘 보이는 장소에 터를 잡고 있다.견훤산성은 무려 1500년이 넘은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기에 좋은 길이다.속리산의 웅장한 암릉미를 감상하며 견훤(867~936년)에 얽힌 전설과 옛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충북 괴산에서 49번 지방도를 타고 백두대간의 고갯마루인 늘재를 넘으면 상주 화북 땅이다.이곳 장암리에서 속리산으로 가는 널찍한 도로를 따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작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등산객들은 대개 스쳐가기 마련이지만,이곳 장바위산(541m)에 견훤산성이 있다.
‘견훤산성 700m’라 쓰여진 작은 표지판을 따르면 곧 산길이 시작된다.시작부터 제법 경사가 가파르다.풍경은 소나무가 우거진 전형적인 야산의 모습이다.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무렵이면 나뭇가지 사이로 성벽이 눈에 들어오고,이어 동벽에 올라서게 된다.산성은 출입구에 해당하는 동벽이 원형 그대로 복원됐고,나머지는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정상을 중심으로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기에 여기서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게 된다.  


●자연석 위에 쌓은 망대는 속리산 전망대
견훤이 쌓았다고 해서 견훤산성이라 부르지만,실제로는 삼국시대인 5~6세기 축성됐다.이 곳뿐만 아니라 상주지역 옛 성들이 견훤과 관계지어지는 것은 ‘삼국사기’의 견훤과 그의 아버지 아자개가 가은 출신이란 기록 때문이다.가은은 지금 문경에 속하지만 당시엔 상주 가은현이었다.
성벽은 직사각형의 작은 화강암을 잘 다듬어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마치 고른 치아처럼 보기 좋다.중간중간 자연석 위에 돌을 쌓은 곳이 나온다.최대한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흔적이다.산의 정상으로 생각되는 지점에는 말굽형의 망대(望臺)가 돌출되어 있다.수풀을 헤치고 망대에 서니 일필휘지로 펼쳐진 속리산의 주릉이 장관이다.보은과 상주 일대의 많은 산을 올라봤지만,속리산이 이렇게 웅장하고 위엄있게 보이는 곳은 없었다.나도 모르게 손아귀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그 옛날 이 곳을 차지하고 새로운 왕국을 꿈꾸었던 견훤과 그 군사들은 속리산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고장에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견훤은 이 곳에 성을 쌓고 세력이 강성해져 근거지를 전주로 옮겼다고 한다.속리산의 힘과 기상이 그들에게 전해졌던 것은 아닐까.
망대를 지나면 길은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화북면의 마을들과 청화산,도장산 등이 훤히 보인다.마을 앞을 지나는 49번 지방도는 당시 신라가 북쪽으로 오르내리는 통로였다.이 산성을 손에 넣은 견훤은 북쪽 지방에서 경주로 향하는 공납물을 모두 거두어 들였다고 한다.가파른 길을 내려 오니 다시 동벽 앞이다.
견훤산성 걷기는 장암리 견훤산성 이정표에서 동벽까지 30분,650m의 성벽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30분이 걸린다.좀 더 길게 걷고 싶은 사람은 속리산 문장대로 향한다.화북면 시어동에서 문장대까지는 3.3㎞,2시간가량 걸린다.이 길은 법주사에서 오르는 길보다 짧고 완만해 많은 산꾼들이 이용한다.


 
 
●가는 길과 맛집
대중교통은 불편해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작년에 개통한 청원~상주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화서나들목으로 나오면 화북면이 가깝다.견훤산성은 장암교에서 속리산으로 난 길을 따라 2㎞ 정도 오르면 이정표가 보인다.
화북면은 송어회로 유명하다.등산로 입구의 문장대가든(054-533-8935)과 오송가든(054-533-8972)은 산꾼들이 많이 찾는 집이다.우복동 광장마을의 청화산방(054-533-8958)은 직접 담근 메주로 내오는 된장국이 일품이고,모든 반찬은 유기농 채소를 사용한다.
산악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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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1) 치악산 구룡사 계곡
 

이번 호부터 매주 ‘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이 연재됩니다.진우석(39)씨는 ‘사람과 산’,‘마운틴’ 등 월간지 기자를 거쳐 현재 산악전문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 산악인입니다.잘 알려지지 않은 내나라 안의 트레킹 명소들을 발굴해 소개할 예정입니다.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구룡사에서 세렴폭포로 이어지는 계곡은 완만하고 볼거리가 많아 가족과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다.사진 오른쪽 위는 치악산의 보물인 구룡사계곡의 금강소나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여주에서 원주로 들어서려면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할 절차가 있다.홀연히 나타난 치악산과 눈을 맞추는 일이다.최고 높이 1288m,폭 26㎞로 펼쳐진 치악산은 이곳이 강원도 땅임을 알리는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호랑이 사라진 산에 금강송이 주인 노릇
치악산은 원주의 진산이긴 하나 그 너른 품은 횡성과 영월까지 걸쳐 있기에 영서지방을 대표하는 큰 산으로 봐야 한다.예로부터 치악산에서 유명했던 것이 호랑이다.산기슭 마을에는 수십 년전까지만 해도 소를 호랑이에게 산 채 제물로 바치는 민속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인직은 1908년 발표한 신소설 ‘치악산’에서 “백주에 호랑이가 득시글거려 포수가 제 고기로 호랑이 밥을 삼는 일이 종종 있다.”면서 “금강산은 문명한 산이요,치악은 야만의 산이더라.”라고 했다.그만큼 산이 깊고 험해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는 말이다.덕분에 치악산은 다른 산에 비해 원시적인 자연이 살아 있다.


 
 


치악산은 산꾼들에게 악산으로 유명하다.오죽했으면 ‘치가 떨리고 악에 받쳐 치악산’이란 말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치악산 북쪽의 비로봉 오르는 길목에는 수려하고 부드러운 길이 숨어 있다.구룡사 입구에서부터 세렴폭포까지 3㎞ 구간이다.이곳은 호랑이 가죽 무늬가 선명한 금강소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길이 순해 가족과 연인들의 가벼운 걷기 코스로 그만이다.
●황장목,나라가 찜한 소나무들
구룡사 매표소를 지나면서 산길이 시작된다.길 초입부터 서늘한 공기에 실려 온 향기가 예사롭지 않다.둘러보니 산비탈에 붉은 소나무들이 빼곡하다.길 왼쪽으로 ‘황장금표’(黃腸禁標)를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말 그대로 황장목을 베지 말라는 경고를 새긴 돌이다.나라에서 찜한 귀한 나무들이기 때문이다.
황장목은 조선시대 궁궐을 짓는 데 사용했던 속이 붉고 단단한 금강소나무를 말한다.껍질이 붉다고 해서 적송,아름다운 자태 덕에 미인송이라고도 일컫는다.
구룡교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미끈하게 빠진 노송들이 나타나고,구룡사 일주문인 원통문에서 절정을 이룬다.마음에 드는 나무를 골라 안아보고 우러러 큰 키를 가늠해 본다.
원통문에서부터는 느릿느릿 걸어야 제맛이다.청아한 계곡 물소리가 귀를 뚫고 나무를 스치고 가는 바람이 몸을 관통해 사라진다.
부도탑을 지나면 어느덧 구룡사다.본래 절터는 깊은 연못이었는데,의상대사가 아홉 마리 용을 내쫓고 절을 세웠다고 한다.절을 지나면 구룡사계곡 최고의 명소인 구룡소다.의상대사에게 쫓긴 아홉 마리 용 중 하나가 마지막까지 머물렀다는 곳이다.폭포는 작지만 그 앞의 크고 깊은 소가 신비롭다.


구룡소를 지나면 다시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르고,넓은 터에 자리 잡은 대곡야영장이 나온다.이곳에 텐트를 치고 별을 헤아리는 황홀한 하룻밤을 상상해 본다.길은 구렁이 담 넘듯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지고 ‘좀 쉬었다 갈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이면 세렴폭포에 이른다.4단으로 이루어진 폭포가 아담하다.  


●악명 높은 사다리병창을 거치는 비로봉 코스
정상을 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면 비로봉에 도전해 보자.세렴폭포에서 정상까지 이어진 능선길이 험하기로 유명한 사다리병창 코스다.응달이 많아 길이 얼어붙기에 반드시 아이젠을 준비해야 한다.정상에는 신선탑,용왕탑,칠성탑 등 3개의 미륵불탑이 서 있다.1966년 원주에서 과자를 만들어 팔던 용창중씨가 “3도가 보이는 산 정상에 3도의 돌을 이용해 3년 안에 돌탑 3개를 쌓아라!” 는 신의 계시를 받고 혼자서 쌓았다고 한다.탑 너머로 남대봉까지 이어지는 치악산 주릉의 역동적인 흐름이 장관이다.구룡사 입구~구룡사~세렴폭포 3㎞코스는 1시간20분,세렴폭포~비로봉 2.7㎞코스는 2시간20분가량 걸린다.  


▲가는 길과 맛집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구룡사행 직통버스가 오전 10시,오후 12시50분,5시10분에 있다.소요시간 2시간20분,1만 2100원이다.원주에서는 원주역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41번,41-2번 시내버스를 이용한다.자가용은 영동고속도로 새말나들목으로 나와 구룡사 이정표를 따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구룡사 입구의 구룡사밤나무집(033-732-8560)은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이다.엄나무백숙과 산채비빔밥을 잘한다.새말은 예로부터 막국수가 유명한 지역이다.새말나들목 근처의 빨간 기와집 우전막국수(033-342-6472)는 원주와 횡성 일대에서 명성이 자자하다.
산악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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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토종] (20·끝) 붕어

그립구나, 진한 흙빛 생명력 강한 너

 

“토종붕어 한 마리 열 잉어 안 부럽다.”
각종 낚시대회에서 크기를 측정해 순위를 정하는 것은 오로지 붕어뿐이란 말이다. 잉어는 아무리 큰 놈을 낚아도 열외다. 낚시꾼이라면 누구나 소망하는 바로 그 월척 토종붕어를 보기가 어려워졌다. 빛깔이 진한 흙빛에 눈이 큼직하게 잘생긴 우리 물고기. 과거 전국 어느 하천에서나 쉽게 잡을 수 있을 만큼 생명력이 강하고 친숙했던 토종붕어가 사라지고 있다.

 
▲ 경북 상주시 함창읍 신흥2리 주민들이 개천에서 족대로 토종붕어를 잡고 있다. 외래어종들이 전국의 하천과 저수지 등을 점령하면서 토종붕어는 보호가 필요한 어종이 되고 있다.

덩치가 크고 난폭한 외래어종이 유입되면서부터이다. 블루길, 배스가 토종 붕어를 잡아먹고 일본산 떡붕어가 판을 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 식용자원 조성 목적으로 들여온 600마리의 일본산 떡붕어가 1980년부터 증식과정을 거쳐 청평호와 소양호에 24만마리나 방류됐다.
번식력이 뛰어난 떡붕어는 토종 붕어를 작은 지류나 상류로 밀어냈다. 하천이나 저수지의 낚시터에서 잡는 붕어의 90%가 떡붕어이다. 토종붕어는 낚시가 금지된 상수원보호구역 등에서나 겨우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토종붕어가 물의 하층부에 서식하는 데 반해, 떡붕어는 중층에 서식한다. 각종 낚시제품이 떡붕어를 겨냥한 일본제품으로 바뀌면서 국내 낚시산업도 적잖은 손실을 입었다.
값싼 중국산 붕어도 골칫거리다. 1990년대에 토종붕어의 8분의1 정도의 가격으로 유료낚시터를 중심으로 들여왔다. 홍수가 나자 자연스럽게 방류되었고 이후 하천과 댐 등에서 토종 붕어와 교잡해 유전자 교란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멸종될지도 모르는 토종붕어의 보존에 대해 연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선진국은 외래종을 도입해서 남는 수익금의 일부를 토종자원 유지, 보존에 할애합니다.” 국립수산과학원 중부내수면연구소 이완옥 박사는 토종붕어의 유지, 보존에 대한 정부차원에서의 지원을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지역별로 토종붕어를 연구·관리하는 기관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 박사는 “외래어종에 의한 생태계 파괴보다 무분별한 남획이

 
 

더 심각하다.”며 멸종위기를 경고했다. 실제 건강식품으로 붕어 엑기스 등이 몸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하천 등지에서는 치어조차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이 박사는 “토종붕어가 넘쳐나서 일본의 떡붕어처럼 수출은 못할지언정 우리가 씨를 말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중부내수면연구소에서는 토종 붕어를 수집해 산란시켜 매년 10만~50만마리의 치어를 방류하고 있지만 개체수를 늘리는 데 는 역부족이다. 토종붕어에 한해서만은 손맛을 본 뒤 놓아주는 ‘캐치 앤드 릴리스(Catch and release)’가 낚시동호인들 사이에 뿌리내려야 할 때다.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난개발은 지구 온난화 등 자연의 대재앙으로 인간에게 되돌아 온다.
이른 새벽 물안개가 자욱한 저수지에서 토종붕어가 입질을 하는, 평온한 사진을 더 많이 찍고 싶다. 우리 토종붕어가 무도한 외래어종을 물리치고 잃었던 하천과 저수지를 되찾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사진 글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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