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어떤 대통령도 이벤트에 이렇게 공력을 쏟은 적은 없다. 원전을 수주했으면 했지, 현지에 날아가서, 그것도 뉴스가 없는 연말 일요일 한국의 저녁 황금시간대에 맞춰 기자회견을 연출한 대통령은 없었다. 대부분의 신문방송도 ‘세일즈 외교’의 개가라고 무비판적으로 부풀림으로써 청와대의 깜짝쇼를 도왔다. 원전 수주는 최종 발표 10여일 전에 확정된 터였다.

청와대는 지난 7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비상경제대책회의에 ‘봉고차 모녀’ 김옥례씨를 참석시켰다. 김씨는 초등학생 딸이 지난해 2월 대통령에게 생활고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고, 이 대통령이 전화상담을 해준 주인공이다. 김씨는 대통령이 원전 수주차 아랍에미리트를 다녀오느라 “입술 부르튼 거 보고 우리는 용기를 얻고 삽니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이벤트뿐만이 아니다. 다기다양한 정치마케팅 전략이 동원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새해연설에서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언했다. 이틀 뒤 주당 18시간 미만 취업자 등을 합친 ‘사실상 실업자’가 330만명에 이른다는 통계청 자료가 발표됐다. 어떤 나쁜 문제도 당국자가 미리 인정해버리면, 대중이 받아들이는 심각성이 완화된다. 이를 ‘예방접종 효과’라고 한다. 새해연설 때는 앞줄의 수석비서관급 배석자들 사이에 수석급이 아닌 여성 참모 두 사람을 끼워 앉혔다. 이명박 청와대에 여성 수석이 없고 여성 장관도 적은 까닭에, 이 대통령이 여성들한테 인기가 없다는 점을 불식하려는 치밀한 계산으로 읽혔다.

이 대통령은 정치마케팅으로 대단한 재미를 보고 있다. 그의 국정지지율은 최근 50% 안팎까지 올라갔다. 그가 크게 잘한 일은 없다. 4대강 사업, 미디어법, 행정구역 개편 등 주요 정책에 대한 여론은 여전히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을 앞선다. 그런데도 청와대 참모들이 간절히 소망해온 수준까지 국정지지율이 치솟은 것은 마케팅의 효과일 수밖에 없다.

원리는 간단하다. 기업은 새 제품을 내놓는 것과 동시에 광고·홍보 등 마케팅 수단을 쏟아붓는다. 이에 따라 제품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선호도까지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착시현상이 생긴다. 광고와 홍보는 본디 그런 것이다. 제품에 내재한 고유 속성은 그대로인 채 포장을 바꿔주는 것이다. 그런 마케팅 전략이 대중한테 먹힌다는 점을 기업인 출신인 이 대통령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마케팅으로 여론을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의 발로일까? 이 대통령은 세종시 문제에도 정치마케팅 전략을 적용하고 있다. 세종시는 본래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정책 구상이지, 충청권 문제가 아니었다. 새 행정도시를 중심으로 전국 각 지역이 사통팔달하는 네트워크를 만들되, 충남은 국토의 중심부에 있다는 이유로 행정도시의 입지가 됐을 뿐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세종시를 ‘낙후한 충청권 개발 문제’로 둔갑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행정부처보다 기업과 대학이 들어가는 게 충청권을 위해 더 좋다는 주장만 늘어놓는다. 국가 균형발전 대책 논의는 의도적으로 실종시켰다. ‘쟁점 도치’ 또는 ‘프레임 변경’ 전략을 이 대통령은 구사하고 있다. 이어 우호적인 신문방송과 각종 마케팅 도구들을 총동원해 충청권 여론을 먼저 뒤집고 반대세력을 포위·압박해 들어가겠다는 게 그의 전략이다.

원전 수주 깜짝쇼도 좋고, ‘봉고차 모녀’를 불러 친서민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홍보도 진정성을 토대로 포장을 개선하는 선에 그쳐야 한다. 정치마케팅으로 여론을 움직여 백을 흑으로 뒤집을 수 있다고 믿는 듯한,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접근은 분명히 너무 나간 것이다.

박창식 논설위원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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