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들 - 하종강이 만난 진짜 노동자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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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끝낼 즈음 그(송영수)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하 선백나 나나 모두 비슷한 종류의 인간이라고 보는데, 하 선배는 그 일을 20년 넘도록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이유가 뭐요?"
나는 조금 생각해 보고 진지하게 답했다.
"세계관이 아직 바뀌지 않았거든."
그는 픽 웃으며 "그런 것 때문이었다면 나는 벌써 포기했을 거예요."라고 말하더니, 잠시 시간을 두고 답했다.
"나는... 이를테면 하 선배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어요. 그거 아세요? 나 때문에 고문당했던 사람들, 나 때문에 징역 산 사람들... 그 사람들과의 인연이 나를 이 일에서 떠나지 못하게 한다는 것,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그런 사람들의 얼굴이 자꾸 나를 붙드는 기라. 그동안 내가 만났던 노동자들의 얼굴이 나를 이 일에서 떠나지 못하게 자꾸 붙드는 기라."
그 말을 하면서 그는 끝내 눈물지었다.-66쪽

<인간의 시간>을 보노라면 노동자 육경원 씨가 투쟁 과정에서 악화된 암으로 숨진 뒤, 동료들이 그를 떠나보내는 영결식-노제-장례 장면이 차례로 나오는데, 화면이 이상할 정도로 심하게 떨리는 대목이 있다. 촬영을 나갈 때마다 "결코 울지 않겠다."라고 다짐하고, 실제로 거의 울지 않는 태준식 감독이지만 그날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오는 울음을 참느라고 온몸을 떨었기 때문이다. 그는 특별히 그때 카메라를 잡은 손이 떨렸던 이유를 "세상을 오래 살아온 어른들의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분노의 표출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품을 보는 이 역시 그 장면에서 울음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72쪽

"저(공무원노조 3기 사무처장 김정수 씨)는 '무엇이 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선택했어요. 그 생각이 제 삶을 이끌어 갑니다."-82쪽

"청소년 문제는 결국 '청소년이 당하는 문제'예요."
홍 신부(인천 교구 가톨릭청소년회 전담 홍현웅 신부)의 말이 가슴을 때렸다.-93쪽

'더도 덜도 말고, 남상헌님만큼만 살면 좋겠다. 나도 저 나이쯤 되었을 때, 저런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비 내리는 거리에서 그런 생각에 잠겨 한참을 걸었다.-138쪽

"전태일문학상 운영위원회 위원장인 문익환 목사님은 지금까지 전태일문학상 행사가 다섯 번이나 열리는 동안 한 번도 직접 상을 주지 못하셨습니다. 그때마다 감옥에 갇히셨거나 수배된 상태였습니다. 얼마 전 문익환 목사님이 석방되셔서, 이제야 문익환 목사님이 전태일문학상을 직접 주실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문익환 목사님이 단 며칠만 더 살아 계셨어도... 오늘 이 자리에 오셔서 상을 직접 주실 수 있었을텐데.."(1994년, 이소선 여사)-151쪽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60명쯤이 모여서 이틀 밤을 얘기로 샜어요. 그런데 해고 경험이 열 번도 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기숙사에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서통' 해고자라고 알려지면 바로 해고되고, 기숙사에서 이불 보따리 들고 나와서 그 밤에 갈 데가 없었다는 거예요. 대부분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인데 그 짐을 들고 밤길을 헤맸다는 거예요. 나(배옥병)는 감옥에 있으면서 오히려 더 편했던 거예요..."
이야기를 하다가 듣다가... 우리는 또 울었다.-236쪽

"지금 자기가 속한 곳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계속 유지해 나가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그렇게 생활 속의 운동을 일상화시키는 것이 이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밑거름이라 생각해요."
배옥병 씨를 만나고 나오면서 '지금 내 생활 속에서 일상화된 운동은 무엇일까?' 곰곰 생각했다.-239쪽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회원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김진원 (부안농민회)회장이 "논은 어떻디여?" 하고 물으니 "아까 가 봤을 때 막 넘치고 있었으니까, 지금쯤 다 물에 찼을 거요."라고 답하면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농사일은 이래서 슬퍼..."라고 중얼거리며 피곤에 지친 듯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농민회 사무실을 떠나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그 회원의 얼굴이 눈에 선한데,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는 살가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로 가서,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세요. 잠시 생활의 여유를 느껴 보세요. 사랑은 비를 타고 온다고 했던가요."
듣고 있다가 입에서 저절로 욕이 나온다. 에라 이...-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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