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하여?…위하야? 꿈을 담은 ‘건배사’
[뉴스 쏙]
 
 
한겨레 신승근 기자
 






쟁점 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의 가파른 대치가 계속되던 지난 23일 밤.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 정세균 대표, 이미경 사무총장, 박병석 정책위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가 출동했다. 민주당을 취재하는 이른바 ‘말진’ 기자들과의 송년회 자리였다.

첫 잔을 가득 채운 정세균 대표가 “말보다”하고 선창하자, 다른 참석자들이 한목소리로 “실천”이라고 외쳤다. 정 대표가 “오늘 건배사는 ‘말보다 실천’으로 하겠다”며 “내가 ‘말보다’라고 하면 여러분이 ‘실천’이란 말로 후렴을 넣어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한나라당의 ‘엠비(MB) 법안’ 강행처리를 강력 저지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건배사였다.

여당 의원들은 “위하여”, 야당 의원들은 “위하야”를 건배사로 합창하는 것은 한때 정치권에선 익숙한 풍경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엔 건배사가 더 ‘진화’했다. 유명 정치인과 그 참모들이 술잔을 돌리며 던지는 건배사 한마디에 정치적 열망을 담는 게 일종의 정치문화로 자리잡았다.

대선후보 경선 패배 뒤 한나라당 비주류로 살아가는 박근혜 의원과 참모들의 최근 송년 모임 건배사는 ‘박근혜’를 살짝 변형한 “친근해(혜)”다. 건배사를 하는 사람이 먼저 “친” 하고 외치면 나머지 사람들이 “근해(혜)”라고 보조를 맞춘다. ‘얼음공주’ 이미지를 벗지 못해 천하와 인재를 얻는 데 실패했다는 나름의 자성 속에 “박 대표도 알고 보면 친근한 사람”이라는 여론을 조성하는 나름의 정치적 건배사인 셈이다.

오랜 무소속 생활 끝에 집권 한나라당의 최고위원으로 변신한 정몽준 의원은 최근 술자리에서 자주 “해뜰날”을 건배사로 선창한다. 트로트가수 송대관씨가 술자리에서 자신의 히트곡 제목을 건배사로 외친 뒤부터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한나라당에서는 “한나라당에서 세를 형성하고 대권 후보가 되려는 그의 처지와 희망을 이만큼 잘 반영한 건배사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치열했던 지난해 이명박 후보와 그 참모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어김없이 “이대로”를 외쳤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라는 정치적 열망을 담은 이런 건배사의 힘이었을까? 이들은 그해 12월19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꿈을 이뤘다.

김대중 정부 시절, 디제이피 연합을 통해 새정치국민회의와 권력을 나눈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당직자들의 건배사는 “위하자”였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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