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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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30.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사라져 버린 치즈에 대한 미련을 빨리 버릴수록 새 치즈를 빨리 찾을 수 있다.

나에게 치즈라 무엇일까

되세겨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헴 처럼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없는 사람인가?

아니면 허 처럼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인가?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헴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 허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나도 새로운 치즈를 찾는데 게으른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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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향신문 기사분과 만나서 인터뷰를 했다.

개인이 한 것은 아니고 단체가 했는데...

지역신문기자들만 만나다가.

중앙지의 기사분을 보면서...

와... 실력있다.

당당하다..

등의 생각들을 했다.

나도 내 일에 대해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까...

주부로.. 아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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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 루소
장 자크 루소 지음, 정영하 옮김 / 연암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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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4. 20. 수 ~

 

아직도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 때의 메모를 남긴다.

 

 “에밀”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도덕 선생님께 들었다. 그 후 성장하면서 내 손에 몇 권의 책이 거쳐 갔지만 “에밀”이라는 책이 항상 머리 속에 있으면서도 읽어보는 능동적인 자세를 취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과제물에 제시되어 있는 책 중에서 루소의 에밀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꼭 읽어보자.’고 결심하였다. 

  300년 전에 씌어진 “에밀”은 루소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인물이다. 에밀이 소년기에 해당하는 12세에서 15세는 중학생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지금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점찍고  다시 학원으로 가는 다람쥐쳇바퀴를 돌고 있다.

  이들은 자연이 부여한 선을 문명의 악으로부터 지키고 자연의 진실, 아름다움, 유익함을 인식시켜 미래의 이상적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선한 시민의 자질을 기르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더 좋은 고등학교, 더 좋은 대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공부한다. 무엇이 되기보다는 우선 대학에 가고 보자는 아나무인 식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 ‘에밀’처럼 천천히 배우더라고 원리와 진실을 알기 보다는 더 부자로 살기 위해 권력과 지위를 갖기 무작정 공부를 하고 있다. 이런 교육은 어른인 우리가 시키고 있다.

  하지만 루소는 제자를 가치르기 위해서 교사 스스로도 함께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도 일을 하여 제자에게 모범을 보이고 그를 최고의 장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 스스로가 도제가 되어야 하며 하루 종일 설명하는 것보다 한 시간의 노동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우리들은 소년기의 어린이들에게 행동으로 체득하게 하기보다는 책 속에 있는 지식을 전달하기에 바쁘다. 고기 잡은 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교육이라는 틀을 만들어 놓고는 고기를 잡아 주고 있는 것이다.

  루소의 이론들이 모두 마음에 와 닿지는 안는다. 하지만, 요즘 다시 대두되고 있는 인간중심의 교육이 아닌 자연과 환경을 중시하는 교육 이론에 대해 자연인을 표방함으로써 반문명적이고 반사회적인 인간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며 아동의 교육을 아동중심의 교육으로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이 것이 발전하여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다원화. 다양성 이론으로 선택 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최고가 아니라 다양성에 의한 각 분야에서의 각각의 최고가 될 것 있는 것이다. 즉 피라미드 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원 중심의 사고가 중시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어른들이 착각하는 것은 어린이를 아직 미성숙 된 어른으로 보는 것이다. 어린이가 5세이면 5세로써 성숙한 인간이고, 12세이면 12세로써 성숙된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도 어린이였지만 어린이였던 기억을 깡그리 잊고 있는 것이다.

  루소는 어린이의 권리 발견을 통해 어린이가 성장 발달하는 존재이며,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것은 그러한 성장과 발달의 결과임을 제시하기 위해 ‘에밀’이라는 가상의 제자를 두고 교육 방법에 예를 제시하고 있다. 아동의 고유한 특성을 발견하고 아동의 고유한 권리를 말하며 어린이를 더 이상 어른을 기준으로 하여 이해하지 않고 어른과 차이 나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어린이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눈높이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을 폈다고 보인다. 루소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 방정환 선생님이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에게 어린이로서 고유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교육의 이론은 물론 철학의 기준, 사회문명의 발달로 도덕적이 기준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이 아무리 위대한 존재라고 하지만 자연을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자연을 접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진리를 터득하고 원리를 깨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교육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책 속에서 지식을 찾게 하기보다 자연 속에서 지혜를 발견하는 어린이들의 교육이 필요한 시기임을 절실히 느낀다.

  지금부터 나는 내 아이의 교육을 가장 소극적으로 할 것이다. 어른으로서 최소한의 간섭을 하며 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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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어느 날...

 

서론

1. 서정주의 연혁 미당 서정주는 1915년 5월 18일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하여 그 해 11월 김동리, 함형수, 오장환 등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2000년 12월 24일 타계할 때 까지 1,000편에 가까운 시를 남긴 시인으로서 그의 시세계의 폭넓음과 깊이로 해서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손꼽힌다. 한때 친일성향의 ‘인문사’에서 발행한 잡지 “국민문학”의 편집 일을 보며 친일 시와 종군기 등을 썼고 1980년 전두환 군사정부를 찬양한 일이 있다. 그래서 우리 현대 시사에서 대표적인 원로 시인으로 대가(大家)를 이룬 시인으로 평가하기도 하고 일제와 독재 권력의 주변을 맴돈 훼절(毁節) 시인으로 낙인찍기도 한다. 2. 서정주의 생애 및 활동 서정주의 생애와 활동을 잠시 살펴보면 서정주는 일제 강점기인 1915년에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우리(속칭 질마재)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이 당시 대표적인 민족 자본가이자 민족 지도자였던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일가의 농토와 소작인을 관리하던 부친 덕분에 경제적인 곤란을 겪는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이 개명하여 근대 교육을 받았으나, 그의 어머니는 이런 근대와는 거리가 먼 ‘신라’와 같은 평범한 농사꾼이었다. 따라서 그는 근대적인 문물들이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기 시작하는 도시적인 삶과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시골(질마재)의 원초적인 삶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일제 강점, 민족 해방, 6.25 전쟁, 분단된 국가, 독재 정권의 횡포, 민중들의 피맺힌 반독재 투쟁과 같은 민족사의 파란만장한 여러 가지 우여곡절들을 온몸으로 체험하였다. 그리고 이런 체험을 시라는 언어예술을 통하여 꾸준히 형상화하고 있으며, 이런 시적 체험은 다양한 시각에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본론

1. 서정주의 시세계 세단계로 구분 서정주의 시적 편력을 시기별로 구분하여 보면, 세 단계로 나눌 수가 있다. 먼저 보들레르와 니체, 희랍 신화의 영향 아래 자신의 온몸을 보여준 초기시와 해방 이후 순수시의 논리를 표방하면서 우리 민족의 전통과 정신의 세계를 추구하였던 중기시, 소박하고 진솔한 삶이 어우러진 교향의 이미지와 방황하는 떠돌이의 삶을 표현한 후기시로 나눌 수 있다. 초기에는 해방 전 창작으로 “화사집”이 대표적이며, 중기는 대략 두 번째 시집 “귀촉도”에서부터 “서정주 문학전집”까지, 후기는 “질마재 신화” 이후의 시 창작이 이에 속한다. 물론 이런 시기 구분은 각 시기의 특성과 해당 시집의 주조가 일치하느냐는 여부를 주목한 대략적인 나눔일 뿐이다.

2. 초기시의 특징 초기 단계의 특징으로는 첫 시집 “화사집(花蛇集)”(1941)에서부터 두 번째 시집 “귀촉도(歸蜀道)”(1948) 이전까지의 시기로, 정열적이고 관능적인 생명의식이 그 특징을 이룬다. “화사집”에 실린 “자화상”, “문둥이”, “화사”, “입맞춤”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시이다.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되는 “자화상”은 자신의 생애에 관한 전기적 사실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성년이 된 시의 제작 시점까지의 체험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자신의 가족사를 축약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즉 마름이었던 아버지와 늙은 할머니, 늘 가난하였던 어머니, 외할머니, 바다에 나갔다가 죽은 외할아버지, 그리고 그 외할아버지를 닮은 손톱이 까만 어머니의 아들인 ‘나’가 등장인물로 설정되고 있으며, 이런 인물들의 삶을 통하여 나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있다. 이처럼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숨길 것이 하나도 없는 투명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다. “화사”에서의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과 ‘붉은’ 색조는 그의 보들레르적 관능과 원시적 생명력의 추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서정주의 초기시는 육체와 물질적 상징의 세계를 추구한 보들레르와 초극하는 인간상을 추구한 니체를 수용하여, 자신을 발가벗진 원초적인 상태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 때 그의 시적 형상화의 근원으로 작용하는 것이 체험이며, 이 체험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곧바로 그의 시이기도 하다.

3. 중기시의 특징 중기 단계는 두 번째 시집 “귀촉도”에서 시집 “서정주 시선”(1956)이전까지의 시기로, 초기의 관능적인 세계를 벗어나 동양적인 내면과 감성의 세계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다. 특히 한국의 전통적 정서를 노래하게 된 과정이 이 시기에 해당된다. 특히 신라 연구의 차원에서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신라정신’과 불교적인 인연설이나 윤회설을 서정적인 언어와 시적 이미지화로 표현함으로써, 그가 해방 이후에 일관되게 주장한 순수시의 세계가 무엇인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로는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 “꽃”, “민심”, “국화 옆에서”(경향신문 1947. 11. 9) 등이 있다. “국화옆에서”의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엣 /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서 선 /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격정과 관능, 절망과 분열의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안식처로서의 ‘꽃’과 ‘누님’의 발견은 곧 새로운 생명을 발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시에서 보이는 시적 언어와 비유적 이미지의 효과적인 표현은 순수시의 실체를 보여줌은 물론, 시사적으로나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영예로운 찬사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귀촉도”(춘추 1943. 10). “춘향유문(春香遺文)”(민성 1948. 5)등에서와 같이 한국적 정서를 탐색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화사집”류의 열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으며, “무등에서”(현대공론 1954. 11). “산중문답(山中問答)”(현대문학 1955. 1) 등에서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관념적 달관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생명의 발견과 달관, 동양적인 정관의 입장은 화해를 바탕으로 하며, 여기서의 화해는 사회현실과의 치열한 대결 끝에 얻어진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적인 갈등과 회의를 거쳐 얻어진 것으로 이후의 시적 변모에 큰 영향을 준다.

4. 후기시의 특징 후기 단계는 시집 “신라초(新羅抄)”(1961)와 “동천(冬天)”(1969)이 나온 시기로, 신라의 정신과 새로운 동양사상의 탐구가 중심이 되며, 신라와 불교에서 구원의 등불을 발견한 서정주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업보처럼 지고 있던 고향과 그의 고향 사람들에게서 그는 ‘신라적인 것’을 발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단계에 이르면, 초기시와 같은 원초적인 죄의식을 드러내기보다는 ‘신화’라는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있으며, 이런 인간들의 삶에 대하여 시인의 따뜻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지식인이 되어 시를 쓰는 자신에 비하여 훨씬 예술과 일치된 삶을 살고 있는 고향 사람들에게서 진솔함을 찾아내고 있다. 이제 그는 인생의 말년에 고향에 돌아와서 그 고향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고 싶은 것이며, 같은 맥락에서 후기시에 보이는 방랑과 방황은 이런 고향 찾기의 시세계라고 할 수 있다. 후기시에서는 앞 시기에 얻어진 화해의 마음은 심화되어 전래의 샤머니즘뿐만 아니라, 노장사상과 유교까지 받아들이고 있으며 특히 불교의 윤회사상과 인연설에 열중하고 있다. 시집 “신라초”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 얻은 ‘신라적 체험’에 바탕을 주고 있으며, 신라를 하나의 역사적 공간이 아니라 화해에 의해 인간과 자연, 신화가 융합된 초월적 세계로 보았다. 시집 “동천”에서는 “신라초”에서 얻은 동양적 정신을 좀더 심화시켜 고전적인 절제의 경지를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지칠 줄 모르고 구도자의 행로를 걸어온 시인의 자신감과 원숙의 경지를 입증해주는 한편, 사회와 역사와 멀어진 개인적 구도라는 점에서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세계로의 도피, 형이상학으로의 도피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여섯 번째 시집 “절마재 신화”(1975)에서는 어린시절 고향 마을사람들과 풍속을 산문양식에 담아내 동양적 정신을 확대하여 ‘고향’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이후로도 정력적으로 창작활동에 전념해 “떠돌이의 시”(1976). “산시”(1991), “늙은 떠돌이의 시”(1993) 등의 시집을 냈다. 1983년과 1991년 2번에 걸쳐 민음사에서 “미당 서정주 시선집”을 펴냈다.

5. 서정주의 기타 활동영역 및 시인으로서의 위치 그밖에 “최체부의 군속지망”(조광 1943.9)을 비롯한 소설 2편과 평론집으로 “시창작교실”(1956), “시문학 개론”(1959), “한국의 현대시”(1969), “시문학 원론”(1983) 등을 펴냈지만 20권이 넘는 시집을 포함한 시전집의 분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창작의 주류는 시였으며, 시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955년 아세아자유문학상, 1966년 대한민국 예술상을 받았으며, 타계 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초기에는 인간 존재의 실상을 야수적 육성으로 노래한 시를 썼고 이어 동양적 신비의 세계를 민족적 정조와 율격으로 노래한 시를 발표했으며, 禪的 초월을 통한 영생주의의 시혼을 보이는 등 매우 다양한 경향의 시를 계속 발표하였다. 서정주는 한국 시의 새로운 경지를 연 시인이다. 여리고 감상적인 서정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본능적 야수성을 드러냄으로써 시단에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는 비약적 상상, 파괴적이고 낯선 이미지, 육정적 몸부림의 호흡, 정령주의라고 할 아니마(anima)의 신비로운 세계, 광기에 가까운 생명감의 표출 등 실로 놀라운 세계를 열었던 시인이다. 어떤 이는, 서정주의 위대함에는 그의 장수(長壽)가 한몫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는 다양한 시풍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점진적 변모의 과정을 통해 한국 시의 새 장(場)을 열어 갔으며, 그럴 때마다 진경(珍景)을 보였다는 점에서 장수(長壽)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서정주는 오랜 기간 동안 시작을 전개하였지만 그의 상상력의 한 가운데는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사유체계의 뿌리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지대한 과오를 범하기도 하였지만, 시의 영역에서는 한국 시사에서 보기 드물게 큰 성과를 이루어 냈다. 그의 시편 하나하나는 시적 긴장 속에 깊고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결론

1. 서정주의 시세계의 영역 미당 서정주의 시세계는 1936년의 등단부터 치더라도 6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져 오는 동안 결코 단일하지는 않다. ‘생명파’라는 이름을 얻은 초기 시의 탐미적 관능의 세계와 불교로 대표되는 동양정신을 추구한 후기 시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서정주의 시를 관류하는 공통점이자 그로 하여금 ‘시인 부락의 족장’이니 ‘하나의 정부’니 하는 별명을 듣게 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말을 다루는 그의 천부적인 감각이라 해야 할 터이다. 그의 고향 전라도의 사투리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미당 서정주의 시 언어는 민족어의 가능성을 한껏 키운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30년대를 주름잡던 김기림과 이상의 모더니즘이나 초현실주의를 극복 대상으로 삼는 한편 20년대의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시적 경향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이 같은 시세계에 영향을 준 것은 고향의 원초적 서정과 외국의 문학세계였다. 이와 함께 광범위한 문학적 체험은 다양한 편력을 낳게 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출발해 짜라투스투라로 이어지는 신성과 초인정신에 관심을 가짐은 물론 보를레르와 이백으로부터는 인간의 질곡과 자연의 시심을 두루 섭렵했다. 고로 미당 서정주는 시세계의 폭 넓음과 깊이로 해서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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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09-2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정주의 시세계를 3단계로 나뉘어 서술한 것입니다.
 
학문의 즐거움 (양장)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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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9. 9. 금~ 9. 10. 토

"나는 무슨 씨앗일까"에 실린 안수철의 수기 중에서 그가 강명 받은 책이라 하여 선택하여 읽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1. 유연성 갖기(한 발 떨어져 생각하기)

2. 내부에서 생긴 욕망이 중요하다.

3. 실천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보다 두배의 노력을 한다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하면 꼭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꼭 성공할 필요은 없다.

다만 포기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즐겁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즐겁게 해야지... 막상 할 때는 즐거운데... 그 것을 실천에 옮길 때 마다

나의 게으름이 방해를 해서 문제이다.

나를 위해서는 스스로 몸을 가볍게 놀려야 겠다는 생각이 끈임없이 든다.

그런데... 왜 실천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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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학계의 노벨상 수상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9-11 21:59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김영사 전반적인 리뷰 知之者不如好之者요, 好之者不如樂之者니라.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2005년 9월 13일에 읽고 나서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論語의 옹야편에 나오는 문구로 모르는 이가 없을 구절이다. 사실 배움의 끝은 없기 때문에 앎 자체에 집중을 하면 그것은 집착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물 흐르듯이 배움 그 자체를 즐기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