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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역사 - 현대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만든 근대 ㅣ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2
전우용 지음 / 푸른역사 / 2019년 1월
평점 :

연탄, 도장, 짜장면, 포경수술, 현모양처론, 접대문화. 교과서 속 거창한 주제에 익숙한 이들에게 이러한 일상의 파편들이 역사책의 당당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다소 낯설게 다가온다. 그러나 역사학자 전우용은 역사의 무대를 왕과 영웅의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보통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삶터로 과감히 옮겨온다. 《내 안의 역사》는 서구화와 식민지 근대화, 그리고 압축 성장의 격동기를 지나며 현대 한국인의 몸과 마음, 무의식을 형성해 온 근대의 미시사를 52꼭지의 풍성한 이야기로 촘촘하게 펼쳐낸다.

이 책의 가장 커다란 미덕은 우리가 오랜 세월 당연하게 여겨온 풍경들의 숨은 기원과 정교한 변화 궤적을 직시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유리거울의 보급은 타인과 자신을 바라보는 외모 지상주의의 서막을 열었고, 거실 한복판에 들어선 TV는 가족을 단란한 대화자가 아닌 수동적인 ‘관객’으로 재편했다. 조선 시대 남성들의 바깥일이었던 장보기는 근대를 거치며 여자들의 집안일로 바뀌었고, 우리가 전통적 미덕이라 믿어왔던 현모양처론 역시 중세 유교의 유산이 아니라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이식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였다. 접대문화의 뿌리 또한 명월관 기생 문화에 닿아 있다. 익숙해서 질문조차 던지지 않았던 삶의 구석구석마다 저마다의 서늘하고 다채로운 역사가 깃들어 있었고, 결국 내 몸의 습관과 어휘, 가치관 전체가 그 역사의 산물임을 깨닫게 된다.
사회과 교사로서 이 책은 단순한 교양서를 넘어 교실 수업과 아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이어주는 더없이 탁월한 교육적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특히 해방 직후 경성대(현 서울대) 입학시험에 한국어 과목을 넣는 문제를 두고 교수들이 집단 반발했던 ‘국어 소동’은 식민지 잔재가 해방 공간에까지 얼마나 깊고 집요하게 남아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묵은 빚’을 둘러싼 채무 관계의 변천사, 가방이나 구두처럼 차마 번역하지 못하고 삶에 흡수된 단어들에 남은 식민 경험의 흔적도 깊은 사유를 부른다. 모두 교실에서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오늘의 삶과 연결 지어 이야기 나누고 싶은 생생한 주제들이다.


역사는 단단하게 제본된 교과서 속 빛바랜 연표나 암기용 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 내가 누리는 일상의 편의와 습관적인 표현,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도 역사는 유유히 숨 쉬고 있다. 이 책을 통과하고 나니 늘 마주하던 일상이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읽히기 시작한다. 연탄 한 장, 짜장면 한 그릇, 우리가 내뱉는 말 한마디에도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쌓여온 통증과 희망의 시간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코 지난 과거를 단편적으로 외우는 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가 어떤 역사적 궤적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비판적으로 묻고 성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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