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질서 - 긴축이 만든 불평등의 역사
클라라 E. 마테이 지음, 임경은 옮김, 홍기훈 감수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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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위기일 때마다 우리는 익숙한 말을 듣는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정부 지출을 줄이고 복지를 축소하며 임금을 억제해야 경제가 다시 살아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정작 긴축으로 이익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 클라라 E. 마테이는 《자본 질서》에서 이 단순한 질문을 100년 전 역사 속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긴축이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소수의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이탈리아를 추적한다. 전쟁은 역설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노동계급은 파업과 공장 평의회, 협동조합을 통해 생산과 경제 운영에 참여하려 했고 경제 민주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기존의 자본 질서가 흔들리자 지배층은 반격에 나섰다. 그 핵심 수단이 바로 긴축이었다.

 


영국에서는 재무부와 경제 전문가들이 재정 삭감, 민영화, 고금리 정책을 통해 노동자의 힘을 약화시켰다. 이탈리아에서는 자본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자유주의 엘리트들이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과 결탁하며 더욱 강압적인 방식으로 같은 목적을 수행했다. 체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의 긴축이 결국 자본 축적을 보호하고 노동계급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는 저자의 분석은 서늘하다.

 

이 책의 핵심 통찰은 긴축이 경제 이론을 넘어선 계급 프로젝트라는 데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경제정책이 도덕의 언어를 빌린다는 점이다. 가난한 사람은 절약하지 않고, 노동자는 무절제하며, 국민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국가가 살아난다는 논리는 경제적 불평등을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바꿔버린다. 그렇게 구조의 문제는 개인의 책임이 되고, 정책의 실패는 시민의 낭비로 설명된다.

 

그래서 《자본 질서》는 과거의 경제사 책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 경제위기 때마다 왜 복지와 공공서비스부터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지, 왜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 안정이 경제 회복의 장애물처럼 취급되는지를 묻게 한다.

 

결국 이 책을 읽고 난 뒤 긴축을 바라보는 질문은 달라진다. “긴축이 필요한가?”보다 먼저 물어야 한다. “누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그 결과 누가 이익을 얻는가?” 경제정책을 숫자와 전문가의 언어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그 뒤에 숨은 권력과 계급의 문제까지 바라보게 만드는 탁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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