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등대섬 ㅣ 나남창작선 187
윤석철 지음 / 나남출판 / 2026년 3월
평점 :

목포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 큰 섬에서 다시 한 시간을 더 들어가야 닿는 등대섬. 세상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이 마지막처럼 흘러들어온 곳이다. 도망치듯 섬을 떠났던 청년 현우가 목사가 되어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설 속 현우의 이름은 내 아들과 같았고, 신학교를 다니며 그가 던진 질문들은 모태신앙인으로 평생 교리와 삶의 간극을 고민해 온 내 궤적과 깊이 닿아있었다. 그래서일까, 소설은 단순한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내 신앙의 오랜 화두로 다가왔다.
현우는 신학교에서 배운 거룩한 언어와, 그 언어만으로는 감히 위로할 수 없는 섬사람들의 삶 사이에 서 있다. 6·25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할머니의 침묵, 80년 광주의 상흔으로 한쪽 다리를 절며 살아가는 이웃 등 세상이 품어주지 못해 끝내 섬까지 밀려온 이들. 그들의 통곡 앞에서 기독교 의식을 치르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묻는 대목은, 제도화된 신앙이 삶의 비극 앞에서 멈춰 서는 소설의 가장 강렬한 순간이다.
그러나 《등대섬》은 종교를 등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앙이 삶의 밑바닥과 만날 때 비로소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고요히 묻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질문의 방향도 달라졌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보다, 사람들의 삶 앞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등대섬의 환대는 거창한 사랑이나 설교가 아닌, '존재를 허락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사연을 묻지 않고, 떠나온 이유를 캐묻지 않으며, 그저 그 자리에 머물도록 품어주는 것. 등대섬은 거창한 이상향이 아니라 상처 입은 이들이 비로소 숨을 쉬는 안식처다.
“길이란 관계다. 마을과 마을, 섬과 섬을 연결하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잇지. 그중에서도 중요한 건 사람을 잇는 길이란다.”평생 어부로 살아온 현우 아버지의 이 말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신과 인간을 잇는 믿음 역시,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지 못한다면 결코 온전한 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등대 불빛은 누군가를 강제로 이끄는 신호가 아니다. 각자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는 않았는지 가만히 가늠하게 하는 빛이다. 이 소설을 덮으며 내 신앙의 물음은 비로소 완성되었다. 교회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보다, 누구의 곁에 있어야 하는가. 《등대섬》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 사람 곁에 남아 체온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거룩한지를 조용히 비추어주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등대섬 #윤석철 #나남 #사랑과환대 #신앙과삶 #사람을잇는길 #책읽는샘 #함께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