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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 - 인류를 지배종으로 만든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주명진.이병권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평점 :

인간 50명 대 꼬리감는원숭이 50마리. 아무런 장비 없이 중앙아프리카 열대림에 떨어뜨리고 2년 후 생존자를 센다면 누가 이길까.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인간 팀이 질 공산이 크다고. 커다란 뇌와 풍부한 자만심이 있거나 말거나. 이 도발적인 사고 실험 하나가 616페이지 벽돌책 『호모 사피엔스』의 핵심 논지를 가장 생생하게 압축한다.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자 조지프 헨릭은 스티븐 핑커, 재러드 다이아몬드, 리처드 도킨스가 강조해온 기존 진화 서사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인간이 지구의 지배종이 된 이유는 개인의 뛰어난 지능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살 반 아이들과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인지 실험에서 침팬지는 도구 사용 능력 등으로 인간 아이를 가볍게 압도했다. 그러나 인간 아이에게는 침팬지가 갖지 못한 결정적 능력이 있었다. 바로 ‘사회적 학습’이다. 인간은 혼자 배우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에게 배우는 존재였다.
"문화-유전자 공진화를 고려하지 않고 인간의 진화를 이해하려는 것은 물고기의 진화를 연구하면서 물고기가 물속에서 산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이 책의 핵심 개념은 ‘문화-유전자 공진화(Culture-Gene Coevolution)’다. 불, 조리, 도구, 언어, 규범 같은 문화적 산물이 인간의 몸과 뇌를 바꾸었고, 그렇게 변화한 인간이 다시 문화를 발전시켰다. 왜 옥수수 삶는 물에 재를 넣는지 정확한 이유를 몰라도 그 지식이 세대를 거쳐 전수되었고, 임신 중 특정 생선을 먹지 않는 금기가 공동체를 보호했다. 개인은 이해하지 못해도 집단은 알고 있었다. 인간의 생존은 천재 한 사람의 발명보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행착오와 경험이 축적된 문화의 힘 위에 세워져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집단두뇌(Collective Brain)’ 개념이다. 인간은 개별적으로는 연약하고 무지하지만 서로 연결될 때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하나도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집단이 축적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인간의 진짜 힘은 개인의 머릿속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머릿속에 있었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나며 느끼는 것도 비슷하다. 지식을 많이 아는 학생보다 함께 배우고 연결될 줄 아는 학생이 더 크게 성장한다. 서로 질문하고 설명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는 배움이 만들어진다. 조지프 헨릭의 통찰이 인간 진화의 역사를 넘어 오늘날 교실의 풍경을 완전히 뒤흔드는 이유다.
만약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 것이 고립된 경쟁이 아니라 문화적 협력이었다면, 이제의 교육 역시 개인의 성취만을 채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집단지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인간이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책인 동시에, 우리가 어떤 사회와 교육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두꺼운 만큼 깊고, 도발적인 만큼 설득력 있는 명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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