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위한 명심보감 필사 노트
권희린 지음 / 생각학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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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네이티브로 자라난 청소년들에게 오늘날 교육은 더 많은 정보더 빠른 처리 속도를 주문한다. 알고리즘이 주입하는 단문과 짧은 영상 속에서 아이들의 사유는 파편화되고, 정서적 불안과 문해력 붕괴는 교실의 당면 과제가 되었다. 18년 차 사서교사의 실전 기록인 사춘기를 위한 명심보감 필사 노트는 이 초효율의 흐름 앞에서 동양 고전의 정수인 명심보감(明心寶鑑)을 꺼내 들며 가장 아날로그적인 브레이크를 건다. 90일 동안 매일 한 줄씩 성현의 문장을 꾹꾹 눌러쓰게 만드는 이 책은,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는 명제를 증명하려는 다정한 교육적 실험이다.

 

저자는 지각한 학생에게 벌칙으로 건넨 명심보감 한 구절이 아이의 마음에 닿아 지금 우리 사는 이야기 같다는 사유의 마중물로 치환되는 순간을 목격한다.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처럼 교우, 언어, 안분, 존심으로 이어지는 90일의 여정은 관계와 비교 속에서 표류하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스스로를 비추어볼 생각의 여백을 선물한다. 정보의 과부하 속에서 조급해진 뇌를 진정시키고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필사라는 물리적 형식은, 아이들에게 학교 공간에서 오롯이 나 혼자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의 주권을 회복시켜 준다.

 

물론 맹점은 있다. 명심보감은 본질적으로 전근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규범이기에, 무비판적인 수용은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정답 강요나 지루한 노동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글자를 손으로 옮겨 적는 형식 자체가 사유를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이 그 위험을 가뿐히 넘어설 수 있는 이유는 저자의 정교한 질문 중심설계에 있다. 저자는 옛 문장으로 아이들을 훈계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어떤 친구를 만나야 할까”, “지금의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처럼 문장을 디딤돌 삼아 아이들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설계하도록 유도한다. 고전과의 무조건적인 순응이 아니라, 문장을 매개로 자기 내면과 치열하게 대화하게 만드는 방어 장치를 촘촘히 심어둔 것이다.

 

이러한 입체적 접근은 AI 디지털 교과서(AIDT)의 도입으로 교실의 신체성이 거세당하는 시점에 더욱 준엄한 시사점을 던진다. AI0.1초 만에 인성교육의 모범답안을 찍어내는 시대에 인간이 연필을 쥐고 고전과 씨름하는 행위는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니다. 그것은 데이터로 환산되지 않는 인간 주체성을 사수하려는 보루. AI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점점 정교해질수록, 인간 역시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속도의 시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자기 삶 속에서 오래 붙드는 힘이다. 90일 동안 빈칸을 채워나가며 아이들은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내면의 닻을 내리게 될 것이다. 교실 뒤편에서 묵묵히 연필을 깎으며 사유의 영토를 지켜내고자 하는 모든 교육자에게 이 고요하고 단단한 인문학 수업을 권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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