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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적인 도시
정현재 지음 / 시공사 / 2026년 5월
평점 :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 정현재의 저서 『가장 인간적인 도시』는 초효율적인 스마트 시티의 풍경 뒤에 숨은 서늘한 역설을 파헤친다. 저자는 AI가 도시 설계에 개입하는 현상을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닌, 수백 년간 공간을 바라보던 지배적 시선의 이동으로 규정한다. 인간에게 도시는 삶과 낭만이 얽힌 풍경이지만, AI에게 도시는 오직 픽셀과 확률로 이뤄진 ‘데이터 운영 시스템’일 뿐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공간을 채울수록 인간을 위한 여백을 어떻게 비워낼 것인가라는 저자의 화두는 대단히 매혹적이다.
책이 진단하는 AI 도시의 편리함 이면은 생각보다 기만적이다. 알고리즘 기반의 ‘최적화’는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행동 데이터를 복제하여 공간을 하나의 추천 시스템으로 박제한다. AI는 효율성과 평균이라는 명목 하에 소수 시민의 권리를 너무나 쉽게 지워버리며, 그 결과 우리는 타인의 차이를 이해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최적화된 사용자만을 위한 플랫폼 도시 속에 갇히게 된다. 화려한 인터페이스 뒤에 숨은 데이터의 흐름과 권력의 논리는 철저히 가려진다. 편리함의 대가로 투명성과 주체성을 저당 잡힌 채, 목적지도 없이 속도만 내는 배에 올라탄 ‘표류’의 상태. 이것이 저자가 기술의 최전선에서 목격한 디스토피아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저자의 유려한 인문학적 수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냉정하게 질문해야 한다. 효율을 관리하는 AI의 지도와, 머묾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지도를 조율하자는 제안은 아름답다. 하지만 평당 가격과 수익률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도시의 견고한 현실 앞에서, 이러한 ‘비움의 미학’과 ‘인간적 윤리’가 과연 구체적인 제도로 생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자본은 언제나 도시의 빈틈을 상업성으로 빽빽하게 채우려 든다. 기술의 소외가 가장 낮은 곳에 흐른다는 저자의 통찰이 힘을 얻으려면, 감상적인 성찰을 넘어 알고리즘의 독점과 권력화를 법적으로 강제할 구체적인 '도시 정치학'의 대안이 제시되었어야 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던지는 화두만큼은 현재 우리 교육 현장의 대혼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답률과 진도율이라는 ‘데이터와 효율의 시선’으로 교실을 재편하려는 AI 디지털 교과서의 유입 속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할 최후의 보루 역시 아이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와 관계의 잔향을 포착하는 ‘인간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AI의 눈이 정교해질수록 인간의 눈은 게을러지고, 질문하는 힘을 잃은 인간은 기술이 주입하는 이미지의 노예로 전락하기 쉽다. 결국 이 책은 도시의 외형 변화를 넘어, 인간다운 삶의 본질을 사수하기 위한 치열한 주체성 회복의 촉구다.


“AI가 세상을 보는 방법을 우리가 설계했다면,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법도 우리가 설계해야 하지 않을까.” 이 묵직한 질문은 기술에 조타수를 빼앗긴 현대인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기술이 주는 안락함에 중독되어 스스로 사유하기를 포기해가는 시대, 알고리즘의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 인간의 주권을 지키고 나아가 삶의 시선을 능동적으로 설계하고자 하는 모든 동료 시민들에게 이 뜨거운 건축학적 처방전을 권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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