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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스토너》는 이상하게 조용한 소설이다.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우연히 영문학을 만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죽는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사실 그게 전부다. 화려한 성공도, 극적인 사건도 없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면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게 된다.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 남기 때문이다.
스토너는 자신의 인생을 거창하게 돌아보지 않는다. 과거를 곱씹으며 후회하거나 미래를 계산하며 살아가지도 않는다. 그저 눈앞에 놓인 일을 묵묵히 감당하며 살아간다.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의 삶은 성공과 거리가 멀다. 학문적 명성을 얻은 것도 아니고, 가정 역시 평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토너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흔들리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

이 소설이 1965년 출간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가 수십 년이 지나 유럽 독자들에 의해 재발견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성공과 성취의 서사가 지배하던 시대에 스토너의 삶은 지나치게 소박하고 패배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끊임없이 경쟁하고 평가받는 ‘피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의 삶은 오히려 더 깊이 다가온다. 성공하지 못한 삶도 존엄할 수 있는가. 이 소설은 그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던진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자꾸 아버지를 떠올렸다. 사회적인 기준으로 보면 특별히 성공한 삶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며 묵묵히 살아오신 분. 화려하지는 않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삶의 태도 말이다. 스토너의 삶이 ‘실패’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 했기 때문이다. 그 태도 하나가, 조용히 빛난다.
존 윌리엄스의 문장은 절제되어 있고 담담하다. 감정을 과장하지도, 인생의 의미를 크게 설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담담함 속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이 흐른다. 스토너가 작은 성취를 얻는 순간에도 독자가 묘한 처연함을 느끼는 이유는, 작가가 그를 끝까지 이해하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선은 자연스럽게 독자에게도 전해진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어 생각한다. 하지만 《스토너》를 읽고 나면 다른 기준이 떠오른다.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높이 올라갔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삶을 끝까지 지켜냈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화려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끝까지 살아가는 것. 이 조용한 진실을 말해주는 소설이 바로 《스토너》다. 책을 덮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조금씩 스토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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