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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지배 사회 - 정치·경제·문화를 움직이는 이기적 유전자, 그에 반항하는 인간
최정균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4월
평점 :

KAIST 인간유전체학자 최정균 교수의 《유전자 지배 사회》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후 50년 만에 등장한, 가장 도발적이고 야심 찬 진화 기반 사회비평서다. 이 책에 대한 “마이클 샌델이 쓴 <이기적 유전자>”라는 평이 과장이 아니다. 이 책은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좌우하는지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본능이 현대 사회의 불평등·혐오·착취·정치적 양극화로 어떻게 번역되는지까지 정면으로 파고든다.

책의 구성은 가정, 사회, 경제, 정치, 의학, 종교의 6개 영역을 관통한다. 1장에서 저자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의 근원을 파헤치며, 부모-자식 갈등이나 배우자 선택, 뒤틀린 교육열이 결국 “유전자가 설계한 번식 전략의 산물”이라는 점을 밝힌다. 특히 캐나다 1,000건, 미국 유언장 데이터는 부유한 집은 아들에게 더 많은 유산을, 가난한 집은 딸에게 더 많이 남긴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생물학적 전략이 인간의 무의식적 선택을 어떻게 이끄는지 날카롭게 드러낸다.
2장에서 전개되는 혐오 분석은 더욱 강렬하다. 비만·장애·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공격성은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편도체·교감신경의 ‘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자동 반응이라는 사실을 중심으로 폭로된다. 《네이처 의학》에서 비만 낙인을 멈추어야 한다는 전문가 합의문을 인용하며, 사회적 낙인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경제 파트에서는 자하비의 핸디캡 이론을 활용해 과시적 소비와 지대 추구가 ‘번식 경쟁의 신호’가 변형된 형태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부동산 임대료와 IT 플랫폼 기업들의 지대 착취에 대한 분석은, 경제구조를 생태학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대담하고 신선한 시도다.
정치 장은 뇌과학과 연결된다. fMRI 연구는 보수 성향은 편도체가, 진보 성향은 전측대상피질이 더 활성화된다는 결과를 제시한다. (보수적인) 세로토닌·(진보적인) 도파민 분비 차이가 정치 성향을 예측하는 데 의미가 있다는 연구도 인용된다. 더 놀라운 건, 전 세계 15만 명 조사에서 보수층이 진보층보다 더 높은 출산율을 보인다는 데이터다. 정치적 태도조차 유전적·생물학적 요인이 스며 있다는 뜻이다.


책의 후반부는 결정론을 해체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유전자는 우리를 설명할 수 있지만, 규정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추운 기후에 적응한 변이가 역설적으로 암을 증가시키고, 젊을 때 번식에 유리한 변이가 노년엔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일처럼, 자연은 인간에게 무심하게 잔혹하다. 자연 숭배와 문명 공포를 경계하며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의 오류를 비판하는 대목도 이 관점을 뒷받침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예수의 ‘반자연적 사랑’을 소환한다. 혈연도 번식도 조건도 없는 사랑. 그것은 초인의 능력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로서만 성취될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한다. 이 결론은 유전결정론을 넘어서는 길이 결국 사회와 교육, 문화의 선택에 있다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진화 설명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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