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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는 없어 ㅣ 꿈꾸는돌 45
김지현 지음 / 돌베개 / 2026년 1월
평점 :

거제는 여행객에게 늘 “아름다운 섬”으로 기억된다. 바다와 바람, 유명 빵집, 여유로운 풍경이 여행자의 들뜸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김지현 작가의 《유자는 없어》는 이 풍경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비춘다. 누군가에게 낭만의 공간인 거제가, 그곳에서 살아가는 청소년에게는 ‘떠나기 어려운 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정면에서 보여준다.
주인공 유지안, 별명 ‘유자’는 거제의 작은 빵집 딸이자, 전교생 30명 남짓한 변두리 중학교의 전교 1등 출신이다. 하지만 진학한 고등학교는 신도시의 대규모 학교. 경쟁의 밀도도, 조건도 완전히 다르다. 성적 하락은 단순한 성적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규정해온 정체성이 무너지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공황 증상이 찾아오고, 사람 많은 강당이나 해저터널도 견딜 수 없다. 여행객에게는 ‘바다의 냄새’로 여유를 주는 풍경이, 지안에게는 답답함과 불안의 냄새로 가득 차 있다. 공간적 제약과 심리적 압박이 겹치는 시기가 바로 청소년기라는 사실이 작품 속에서 날카롭게 드러난다.


지안의 곁에는 비슷한 성장통을 겪는 친구들이 있다. 예고 입시 실패 후 방 안에 머무는 수영,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정착을 꿈꾸는 전학생 해민. 여기에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혜현 언니’는 거제에 한 달 살이를 하러 온 어른이지만, 그녀 역시 이곳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혜현의 정체를 둘러싼 ‘2013년 가을 교지’ 사건은 이야기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며,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성장, 어른의 흔들림과 청소년의 불안을 서로 연결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힘은 성장의 속도를 과장하지 않는 데 있다. 지안과 친구들이 토요일 밤마다 각자의 집에서 같은 영화를 보며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는 비대면 영화 모임, 좋아하는 작가에게 선플을 다는 작은 실천, 불안을 눌러앉히기 위해 창문을 열고 숨을 고르는 반복. 이 모든 일상의 조각들은 성장을 ‘극적인 변화’가 아니라 ‘버티고 견디는 과정’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지안이 “나는 여전히 유지안이었다”라고 말할 때, 그 문장은 체념이 아니라 성찰에 가깝다.


작가 김지현은 자신의 고향에서 “가치 있고 반짝이는 것을 찾아내는 눈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직접 겪은 고통이 이해의 자산이 되었다는 말은, 이 소설이 관찰자의 기록이 아닌 당사자의 언어로 쓰였다는 증명이다. 그래서 《유자는 없어》는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떠났지만 돌아와야 했던 혜현,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지안, 그리고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해민. 이 인물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한다. “성장은 특정 시기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한 계속되는 과정이다.”
《유자는 없어》는 말한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때로는 답답한 섬 같은 일상 속에서도,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그리고 그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히 ‘성장’이라고.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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