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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 - 정치 없는 치유, 치유 없는 정치를 넘어서
김찬호 지음 / 김영사 / 2025년 12월
평점 :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라는 민주화 이후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민주주의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보았다. 한편으로는 너무도 쉽게 흔들리는 취약함을, 다른 한편으로는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 의해 다시 일어서는 강인함을 확인했다. 김찬호 교수의 《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는 바로 그 혼란의 한복판에서, 광장과 연구실을 오가며 써 내려간 민주주의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치의 본질은 대립과 혐오가 아니라 치유라는 것이다. 정치와 치유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다스릴 치(治)’ 자에서 출발한 이 통찰은 민주주의를 제도나 절차가 아니라, 고통받는 마음을 공적으로 돌보는 능력으로 재정의한다. 민주주의는 고통을 제거하는 장치가 아니라, 고통을 혼자 견디게 두지 않는 사회적 기술이다.

저자는 ‘불행할 권리’라는 역설적인 개념을 통해, 행복만을 강요하는 사회의 위험을 짚는다. 고통을 외면할 때 정치는 빗나가고, 고통을 마주할 때 민주주의는 성장한다. 실제로 12.3 이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분노와 두려움이라는 고통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함께 나누며, 저자가 표현한 것처럼 ‘데몬 헌터스’가 되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이 책에서 광장은 분노의 배출구가 아니라 시민이 탄생하는 공간이다. 여의도광장에서 반세기 전 국군의 날 합창단으로 동원되어 〈나의 조국〉을 불렀던 소년이, 같은 자리에서 K팝으로 탄핵을 외치게 된 장면은 한국 민주주의의 압축된 역사이자, 개인의 몸에 새겨진 정치의 기억이다. 같은 공간이라도 누가, 어떤 마음으로 모이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얼굴은 달라진다.

교사로서 특히 마음에 남는 대목은 ‘교육’ 장이다. 저자는 사적 행복이 공적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정치는 정치인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을 결정하는 공동의 작업이다. 그래서 이제 아이들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성적이나 스펙이 아니라 이것이다. “너의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어떤 세상이 필요할까?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김찬호는 마지막에 말한다. “거짓된 희망보다 정직한 절망으로.” 파국처럼 보이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되, 냉소로 물러서지 않는 태도. 민주주의는 인간에 대한 신뢰로 맞잡은 손들이 키워가는 과정임을 이 책은 차분히, 그러나 단단하게 설득한다. 불안과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이 책은 민주주의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성숙한 안내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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