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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 극장 - 시대를 읽는 정치 철학 드라마
고명섭 지음 / 사계절 / 2025년 11월
평점 :

《카이로스 극장》은 지난 3년 반 한국 정치의 격랑을 다룬 시사서가 아니다. 이 책은 내란 세력의 집권–반란–몰락이라는 현실의 드라마를 역사·철학·문학의 언어로 해부한 정치 인문학의 기록이다. 저자 고명섭은 이 시간을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와 겹쳐 읽으며, 권력이 어떻게 무사유와 오만 속에서 폭군으로 변하고, 결국 자기 파멸을 향해 질주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리고 그 파국을 멈춰 세운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도 분명히 짚는다. 그것은 정치 엘리트가 아니라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었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카이로스’다.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빛으로 과거를 다시 읽고, 그 빛으로 현재를 결단하는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다. 저자는 함석헌의 ‘역사의 뜻’을 불러와 묻는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폐기할 것인가. 인간 존엄, 자유, 민주공화국이라는 가치를 붙들 것인가, 아니면 권력과 탐욕의 언어에 끌려갈 것인가. 지금 이 질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도덕법칙이 최저임금, 노동시간 규제 같은 구체적 제도로 곧장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것들은 시혜가 아니라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오랜 투쟁 끝에 쌓아 올린 사회적 방파제다. 이를 허무는 정치는 곧 인간을 다시 수단으로만 쓰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또한 저자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헤르메스 신화를 통해 법과 검찰 권력이 타락할 때 어떤 사회적 파국이 도래하는지를 날카롭게 경고한다. 법이 욕망의 도구가 되는 순간, 법은 있어도 법이 없는 무법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 책은 절망에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힘을 시민의 정치 문해력, 거짓과 진실을 분별하는 판단 능력, 그리고 타락한 언어에 저항하는 감수성에서 찾는다.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말은, 교실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나에게 특히 깊게 와 닿는다. 왜곡된 기억 위에 세운 공동체는 결국 망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엄 포고령이 내려지던 밤 국회 앞으로 달려갔던 시민들, 수개월 동안 광장을 지켜낸 사람들의 힘을 저자는 ‘에로스의 힘’이라 부른다. 나의 자유와 너의 자유가 함께 살아 숨 쉬는 민주공화국을 향한 갈망, “너 없이는 나도 없다”는 공동 존재의 자각이 역사를 다시 앞으로 밀어낸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정치 뉴스를 이해하는 독자이기 이전에,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어떤 언어로 설명해야 할지를 다시 고민하는 교사가 되었다. 《카이로스 극장》은 분노로 끝나는 고발서가 아니다. 권력, 법, 언어, 시민, 역사라는 민주주의의 모든 축을 동시에 성찰하게 만드는 질문의 책이다.


우리 공화국의 가치인 ‘인간 존엄성의 존중’을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이었고, 동시에 인간과 역사를 함께 돌아보는 배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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