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일을 위한 역사 - 과거의 세계가 미래를 구할 수 있을까?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조민호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1월
평점 :

“3,000년 세월을 쓰지 못하는 자는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갈 뿐.”
괴테의 이 말은 로먼 크르즈나릭의 《내일을 위한 역사》가 던지는 메시지를 가장 간결하게 요약한다. 이 책은 역사를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 생존을 위한 실질적 도구로 바라본다. 기후위기, 불평등, 민주주의의 피로, AI 독점 같은 ‘21세기 복합 위기’ 앞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기술이 아니라 장기적 사고 능력, 즉 응용역사의 관점이다.
크르즈나릭은 지난 1,000년의 세계사에서 오늘의 문제를 비추는 살아 있는 교훈을 발굴한다. 대량 이주 시대의 관용은 중세 알안달루스의 ‘콘비벤시아’에서, 소비주의를 넘어서는 지속 가능한 경제는 에도 시대 일본의 순환경제에서, 디지털 공론장 설계의 해법은 런던 커피하우스의 숙의 문화에서 찾아낸다. 발렌시아의 ‘물의 법정’은 수백 년간 유지된 공유지 민주주의의 성공 사례이고, 쿠르드족의 로자바 자치정부는 대의 제도의 한계를 넘어 공동체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각 장의 사례들은 단순한 역사적 흥미가 아니라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실험한 현장들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변화의 메커니즘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급진파가 오버턴의 창을 움직여 변화의 기준선을 바꾸고, 접촉 이론이 보여주듯 집단 간 협력이 편견을 약화시키며, 케랄라와 핀란드의 평등 투쟁처럼 평화적 사회운동이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는 “전쟁이나 재난만이 변화를 만든다”는 통념에 대한 강력한 반박이다.
책의 핵심은 마지막 장의 ‘파괴적 변화의 연결고리(Disruption Nexus)’에 집약된다. 위기, 사회운동, 새로운 사상이라는 세 요소가 맞물릴 때 사회는 변곡점을 통과하고, 시민은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변혁의 주체가 된다. 사회운동이 위기를 드러내고, 위기가 사상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상이 다시 운동을 확장시키는 순환 구조—이것이 인류가 위기 앞에서 반복적으로 길을 만들어온 방식이다.


크르즈나릭이 제시하는 미래의 기둥은 세 가지다.
집단 연대(아사비야), 생명애(바이오필리아), 그리고 위기 대응 역량.
이 세 요소가 결합할 때 사회는 부러지지 않고 구부러지며, ‘거대한 단순화’의 시대를 통과할 회복력을 갖춘다.
역사는 예언자가 아니다. 그러나 역사는 상담자다.
우리를 대신해 미래를 말해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을 비춰준다. 《내일을 위한 역사》는 과거에서 미래를 재구성하려는 이들에게 건네는 가장 강력한 한 문장이다.
“희망은 앞에도 있지만, 뒤에도 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내일을위한역사 #로먼크르즈나릭 #더퀘스트 #응용역사 #문명전환 #지속가능성 #집단연대 #미래를향한역사 #책읽는샘 #함께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