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슐츠 씨 -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박상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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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차별이 무지에서 비롯되는가?”

이 질문 하나가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박상현 작가의 친애하는 슐츠 씨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던 익숙한 관습들을 뒤집으며, 차별이란 거창한 악의가 아니라 알아채지 못한 무지의 축적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읽는 동안 불편함과 깨달음이 동시에 밀려온다. 2025년에 읽은 책 중 가장 큰 울림을 준 이유다.

 

1부는 차별의 뿌리를 일상 속 사례로 보여준다. 여성복에 주머니가 거의 없다는 사소한 문제는 사실 여성을 특정 역할에 가두어온 사회적 기대를 반영한 구조적 차별이었다. 한국전쟁 기념비의 완톤 폰트 역시 조롱의 의도가 없었음에도, 아시아 문화를 단일하게 바라보는 무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악의 없는 차별이 더 넓고 깊게 퍼진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센트럴파크에서 탐조 중이던 흑인 남성이 분노한 흑인 남성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피하려 침착함을 유지해야 했던 이야기 역시, 무지가 어떻게 개인의 안전을 위협하는지 생생하게 드러낸다.

 

2부는 이런 익숙한 편견에 맞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만화가 찰스 슐츠와 해리엇 글릭먼의 편지 교환이다. 피너츠에 흑인 캐릭터를 넣어달라는 요청을 슐츠는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러나 해결책을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을 뿐, 가능성을 닫지 않았다. 글릭먼은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을 모아 다시 설득했고, 결국 프랭클린이라는 첫 흑인 캐릭터가 탄생한다. 이는 세상을 바꾸는 변화가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성숙한 대화와 지속적인 설득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교과서처럼 보여준다.

 

장애인 운동가 주디 휴먼의 이야기는 사고의 틀을 완전히 뒤집는다. “장애는 사회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할 때만 비극이 된다.” 이 한 문장은 장애인 이동권 문제로 뜨거운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늘날 미국에서 버스가 휠체어 이용자를 태우느라 몇 분 멈춰 있어도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휴먼과 같은 이들의 오랜 싸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별은 악의보다 무지에서 더 자주 시작된다.

일상의 사소한 것부터 구조적 편견까지, 이 책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차별의 얼굴을 드러낸다.

세상을 바꾸는 시작은 거대한 선언이 아니라, 익숙함을 의심하는 한 사람의 결단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미국 사례를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는 한국 독자가 놓칠 수 있는 문화·역사적 맥락을 촘촘히 설명하며, 그 거울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차별과 편견은 노력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변화는 언제나 일상의 작은 불편함을 직면한 개인의 결단에서 시작된다.

 

친애하는 슐츠 씨는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나침반 같은 책이다. 2025, 이보다 더 필요한 책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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