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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는 뇌 - 뉴런부터 국가까지, 대화는 어떻게 인간을 연결하고 확장하는가
셰인 오마라 지음, 안진이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11월
평점 :

“대화는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뇌 시스템을 연결해주는 다리다.” 셰인 오마라의 이 명제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그 말이 실제로 뇌 속 시냅스의 연결을 바꾸고, 기억과 서사를 다시 쌓는다. 《대화하는 뇌》는 인간을 단순히 ‘지혜로운 인간’이 아니라 ‘대화하는 인간’으로 재정의하며, 대화를 뉴런에서 국가까지 이어지는 인간적 연결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설명한다.
책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을 드러내는 곳은 ‘듣기’의 과학이다. 한 화자가 말을 멈추고 다음 사람이 대답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0.2초. 우리는 질문의 처음 두세 단어만 듣고 이미 대답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듣기와 반응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가르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저자의 관찰은 교육 현장에서 더욱 의미 깊게 다가온다. 학생들의 집중과 상호작용이 낮아지는 시대에, 대화 수용성은 새롭게 훈련해야 할 ‘학습 능력’이다.

이 책의 또 다른 핵심은 기억이다. 기억은 과거를 고스란히 저장하는 카메라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와 미래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시스템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기억이 대화를 통해 타인의 영향으로 미묘하게 재작성된다는 점이다. 같은 사건도 누구와 이야기했느냐에 따라 다르게 떠오르고, 그 차이가 모여 ‘공통 현실’을 만든다. 학교라는 공동체 역시 매일의 대화 속에서 서로의 기억을 조율하며 하나의 문화를 형성한다.
브리스틀의 콜스턴 동상 철거 사례는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어떤 기억을 기념할 것인가의 문제는 곧 공동체의 가치 선택이며, 집단 정체성은 공유된 기억을 둘러싼 치열한 협상 과정임을 상징한다. 기억은 개인의 정체성뿐 아니라 집단의 방향성까지 결정한다.


오마라는 이러한 관점을 더 확장해 국가까지 바라본다. 더블린 공항의 미국 CBP 심사대처럼 국경은 물리적 선이 아니라 대화와 합의로 유지되는 허구적 경계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를 제시했다면, 오마라는 그 상상의 내부를 뇌과학적으로 해명한다.
결국 이 책은 묻는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저자의 대답은 분명하다. 대화는 우리의 기억을 재작성하고, 공동체를 조직하며, 국가를 상상하게 만드는 가장 인간적인 기술이다. 그리고 교실에서 학생 한 명 한 명과 나누는 대화 역시 그들의 뇌와 기억, 정체성을 조용히 바꾸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일상의 모든 대화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대화는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뇌 시스템을 연결해주는 다리다.”
“기억은 과거를 기록하는 장치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요구에 따라 재작성되는 시스템이다.”
“국가는 대화를 통해 만들어낸 상상의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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