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 - 멸종, 공존 그리고 자연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임정은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전 오월드에서 표범과 마주친 한 순간이 한 청년의 진로를 뒤집었다. 그는 전공의 방향을 보전·생태로 과감히 틀었다. 없음을 연구해야 하는 역설 속에서도 그는 물러서지 않는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감동의 수사가 아니라 데이터를 모으고 제도를 바꾸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존의 실무를 끝까지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한 세기 전 호랑이의 땅이던 한반도에서 호랑이를 말한다는 건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선택과 합의의 문제라는 사실을, 저자는 현장의 언어로 증명한다.

 

중국 훈춘에서 값비싼 소를 보호구역에 방목하던 주민들은 호랑이가 소를 잡아먹자 분노했다. 저자는 비합리를 꾸짖는 대신 그들의 상식과 우리의 상식 사이의 간극을 푸는 일부터시작한다. 피해 보상·보험 설계, 방목 관행 점검, 펜스·경보 체계 같은 제도적 해결책이 따라붙을 때에야 공존은 구호가 아닌 실행이 된다. 인도네시아의 코뿔소, 벨리즈의 산호, 라오스의 흔적, DMZ와 러시아 변경의 표범까지프로젝트마다 문화·경제·정치가 얽힌 난제를 마주하지만, 옳음보다 합의가 먼저라는 보전의 문법은 끝내 흔들리지 않는다.

 

동물에게는 국경이 없다는 사실은 북··러 접경의 이동 경로에서 현실이 된다. 개체수·유전적 다양성 같은 숫자가 희망의 근거를 제공해도, 그 숫자를 지켜내는 일은 외교·치안·토지이용계획이 함께 움직일 때 가능하다. 282. 전 세계에 남은 아무르표범의 개체수다. 절망처럼 보이는 숫자 앞에서도 저자는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하는 능력이야말로 과학자의 낙관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의 희망은 느리지만 단단하다. 언론이 산불 뒤 동물 피해만 비출 때, 그는 토양·수질·미생물·곤충·식물까지 남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조사하고 복원을 설계한다. 현장을 누비며 얻은 경험이 곧 연구자의 역량으로 축적된다는 자각이, 손쉬운 절망 대신 책임지는 낙관을 가능하게 한다.

 

이 책은 호랑이 이야기로 시작해 사회 이야기로 끝난다. 보전은 생태·정치·경제·문화의 교차로에서 이해당사자의 언어를 통역하고, 데이터와 제도를 연결해 실행 가능한 해답을 조립하는 일이다. 랩걸을 잇는 한국 여성 과학자의 자전적 에세이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생물다양성 위기를 개인의 삶과 우리 공동체의 규범으로 끌어오는 시민 과학의 기록이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함께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책의 행간을 관통한다.

 

대전에 산다는 인연이 이 책을 더 가깝게 만든다. 오월드에서 시작된 시선이 현실의 호랑이가 돌아올 수 있는 숲을 우리 도시에서 어떻게 설계할까라는 고민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오래 상징의 호랑이를 사랑해 왔다. 이제는 현실의 호랑이가 돌아올 수 있는 숲합의와 책임으로 지탱되는 사회적 기반시설을 함께 설계할 차례다. 책을 덮고 나면, 답을 말하기 전에 움직이고 싶어진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호랑이는숲에살지않는다 #임정은 #다산초당 #보전생물학 #공존의과학 #생물다양성위기 #여성과학자 #책읽는샘 #함께성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