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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 소란한 삶에 여백을 만드는 쉼의 철학
이영길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7월
평점 :

우리는 언제부터 쉼을 사치로 여겼을까. 여가학자인 저자는 그 물음에 ‘쉼 결핍 증후군’으로 답한다. 여기서 핵심은 시간이 아니라 태도다. 쉬는 시간을 낭비로 보는 순간, 스트레스·번아웃·보어아웃·두려움·외로움이 연쇄적으로 찾아온다. 휴가 중에도 불안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장면은 지금 우리의 초상이다. ‘빨리빨리’ 문화와 성과 중심 평가, 인스타그램식 비교와 핵개인의 고립이 이 증후군을 구조적으로 강화한다.
책의 2장은 선언문이다. 쉼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혁신, 사회가 만든 거짓 서사(“일을 다 끝내면 편해진다”)에 맞서는 저항의 실천이다. 이후 3~8장은 여섯 처방을 제시한다. ① 멈춤의 쉼: “일을 전부 마칠 수 있다”는 착각을 끊고 과부하를 내려 현재에 접속한다. ② 일하지 않는 쉼: 정체성을 성과에서 떼어내 “일하지 않는 당신도 당신”임을 자각한다. ③ 욕망을 재조정하는 쉼: 무질서한 욕망이 파는 ‘싱크홀 증후군’을 경계하고 절제로 우선순위를 재배치한다. ④ 기쁨의 쉼: ‘기쁨의 간격’을 관찰해 소소·특별·깊은 기쁨의 빈도를 의도적으로 늘린다. ⑤ 느긋한 쉼: 세상의 속도를 거슬러 나만의 페이스를 복원한다—느긋함은 시간을 살리는 행위다. ⑥ 사랑의 쉼: 자기 돌봄은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이타성으로 확장되는 출발점이다.

저자의 비유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싱크홀’이다. 충족되지 않는 소유·명예·승진의 강박이 삶을 서서히 갉아먹다 어느 날 한꺼번에 붕괴시키는 현상.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나, 막는 방법은 의외로 소박하다. 일정표 맨 위에 ‘멈춤–호흡 3회’를 고정하고, 일과 무관한 나를 위한 30분을 확보하며, ‘오늘의 기쁨 한 줄’을 기록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부 한 통을 보낸다. 책 곳곳의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는 이 작은 선택을 습관으로 고정하는 장치다.

삶의 기준을 일 중심에서 쉼과 여유로 전환하는 데는 에너지가 든다. 매일 쓰는 에너지의 80%든 50%든—그만큼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결단이 남은 생의 질과 우리가 만드는 사회의 방향을 바꾼다. 이 책의 탁월함은 쉼을 ‘보너스’나 ‘휴가 테크닉’이 아니라 동등한 삶의 원칙으로 재정의한다는 데 있다. 완벽주의와 경쟁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치열하게 살아온 당신, 참 잘했다. 이제 내려놓아도 좋다”고 말하며, “홀가분하게 살겠다”는 고백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겠다”는 주체적 선언으로 끌어올린다.

아쉬움을 굳이 꼽자면, 조직문화·평가체계 속에서 버틸 장기 루틴의 구체성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는 약점이라기보다 초대에 가깝다. 결국 홀가분한 삶이란 세상의 속도에 맞춘 달리기를 멈추고, 나만의 리듬을 회복할 권리를 되찾는 일이다. 여가학이라는 낯선 언어로 시작했지만, 책을 덮고 나면 우리의 호흡과 속도, 관계를 바꾸는 실천의 언어가 손에 남는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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