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 좋은 말, 나쁜 말, 이상한 말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엎는 언어 이야기
발레리 프리들랜드 지음, 염지선 옮김 / 김영사 / 2025년 1월
평점 :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언어에는 사용자의 정체성과 사회적 배경, 편견과 차별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발레리 프리들랜드의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는 이러한 언어의 사회적 역할과 변화의 흐름을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는 특정한 언어적 특징이 단순히 문법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 속에서 형성된 기준에 의해 판단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like', 'dude' 같은 구어적 표현부터 논바이너리 대명사로 단수형 ‘they’까지, 흔히 '나쁜' 언어로 다루는 표현의 사회 언어적 의미를 추구한다. 저자는 "원래부터 '좋은' 언어, '나쁜'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말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것들은 사실 "사회적 선호일 뿐이고 그 용법을 성문화한 소수의 사람들이 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과 표현이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하는지 살펴본다. 흔히 어눌하고 비문법적으로 여겨지는 공백 채움말(filler word)인 ‘음’, ‘어’, 그리고 영어의 ‘like’는 그 대표적인 예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표현을 쓸 경우 지적 수준이 낮아 보이거나 말을 제대로 못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이들이 오히려 대화의 흐름을 조절하고 의미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적 습관조차도 언어학적으로 인정받을 가치가 있으며, 이를 단순히 무시하거나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언어 변화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분석이다. 프리들랜드는 언어 변화가 권력의 중심에 있는 기득권층이 아닌,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들, 즉 여성과 젊은 세대에 의해 주도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보컬 프라이(vocal fry) 현상은 여성 화자가 사용하면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남성이 사용하면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언어적 차별이 드러난다. 킴 카다시안이 보컬 프라이를 사용하면 ‘거슬린다’는 반응을 얻지만, 노엄 촘스키가 동일한 방식으로 말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예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 관계와 얽혀 있는 문제임을 시사한다.
책은 또한 언어를 패션이나 디자인에 비유하며,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특정한 언어적 선택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dude’라는 표현이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동지애와 친밀감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거나, CEO조차도 격식을 덜어내고자 사적 자리에서 특정한 방언적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 등이 그 예다. 결국, 언어는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면서도, 그들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언어 변화는 필연적이다. 과거에도 그러했으며, 현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언어 변화에 대해 반감을 갖는다. 새로운 단어나 표현이 등장하면 기성세대는 이를 ‘언어 파괴’로 간주하며 거부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는 과거에도 반복되어 온 현상이다. 책은 이러한 태도가 결국 변화의 주체인 젊은 세대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한다. 우리가 특정한 언어적 특징을 평가할 때, 그것이 단순히 언어의 문제인지, 아니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개입된 것인지 성찰해야 한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논바이너리(non-binary) 정체성을 인정하는 흐름 속에서 영어권에서는 단수형 ‘they’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언어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포용성을 넓히는 과정의 일부다. 기업들도 변화하는 언어 감수성을 반영하여 직원들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언어의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다.

프리들랜드는 언어 변화에 대한 유연한 태도를 가질 것을 제안한다. 언어는 살아 있으며, 시대와 사회적 조건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다. 문법적 규범과 올바른 언어 사용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언어가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책은 언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의 가치와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걷어내면, 인간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언어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결국, 언어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자, 변화를 이끄는 힘이다. 변화하는 언어를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일깨워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우리가이렇게말하는데는이유가있어 #발레리프리들랜드 #김영사 #언어학 #사회언어학 #언어적다양성 #올바른말이란없다 #책읽는샘 #함께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