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보의 푸른 책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27
마논 스테판 로스 지음, 강나은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2월
평점 :

핵폭발 이후의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진 웨일스의 작은 마을 네보에는 한 모자(母子)만이 남아 있다. "우리 집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 있다. 우리뿐이고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라는 덜란의 담담한 진술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파멸 이후의 세계를 그린 여느 디스토피아 소설과는 전혀 다른 결을 보여준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이야기가 엄마 로웨나와 아들 덜란의 일기를 통해 진행된다는 점이다. "종말은, 눈 깜짝하는 사이에 일어났다"고 기록하는 로웨나와,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하면서도 "짐승들은 죽을 때 꼭 나를 쳐다본다"며 여린 감성을 드러내는 열네 살 소년 덜란. 이들의 교차되는 시선은 황폐해진 세계 속 가족의 의미를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소설이 재난 이후의 처절한 생존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비뿐만 아니라 모든 날씨가 다 성난 것 같다"라며 자연의 감정을 읽어내는 로웨나의 섬세한 관찰이나, 기형적으로 태어난 토끼를 발견하고 구토하는 덜란의 모습처럼 일상의 순간들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재난 이후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오히려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과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꼬맹이 아들이 청소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엄마의 시선과 엄마에 대한 친밀감과 동시에 느끼는 거리감이라는 덜란의 양가적 감정은 매우 현실적이다. 더불어 아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생부의 이야기와 동생 모나의 탄생은 이 가족이 지닌 비밀과 상처,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이 단순한 생존기를 넘어서는 것은 두 돌배기 모나의 죽음이라는 전환점을 통해서다. 어린 생명의 상실은 가족에게 또 다른 '종말'과도 같은 것이었다. 특히 모나의 주검을 마당에 묻는 장면에서 벌어지는 로웨나와 덜란의 감정적 균열은, 상실의 아픔이 어떻게 남은 사람들의 관계마저 위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재난 이후의 생존이 단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님을, 정서적 회복과 관계의 치유 또한 중요한 과제임을 암시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회복력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명의 이기가 모두 사라진 세계에서 웨일스어로 일기를 쓰며 자신들의 존재를 기록하는 모자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인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성찰하게 한다. "작고 작은 생명이 감히 살아내겠다고 동그랗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눈물 흘리는 덜란의 모습처럼, 이들의 이야기는 절망 속에서도 피어나는 생명력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소설은 헬리콥터와 경찰차의 등장으로 마무리된다. 이는 외부 세계와의 재연결을 암시하지만, 진정한 결말은 그보다는 모나의 죽음을 겪으며 더욱 단단해진 모자의 유대에 있다. "작고 작은 생명이 감히 살아내겠다고 동그랗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눈물 흘리는 덜란의 모습처럼, 이들의 이야기는 상실과 절망 속에서도 피어나는 생명력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카네기메달 선정위원단이 "상상할 수 있기에 더 매력적이다"라고 평한 것처럼, 『네보의 푸른 책』은 핵재난이라는 극단적 설정을 통해 오히려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본질적 가치들을 되새기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생존 이상의 것, 즉 진정한 의미의 '살아감'이 무엇인지를 묻는 성장소설이자 가족 소설의 걸작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네보의푸른책 #마논스테판로스 #다산책방 #카네기메달 #책읽는샘 #함께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