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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 창비 / 2024년 7월
평점 :

노회찬 의원이 탔던 6411번 새벽 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던 이주민과 청소노동자, 돌봄 노동자 등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투명인간’들이 직접 나서서 들려주는 자신들의 이야기
학교에서 배우는 노동자는 쉽게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로 불리는 사무직 노동자와 생산직 노동자로 구분된다. 물론 이마저도 노동자가 아니라 근로자로 배운다.
생산 요소인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소득을 얻는 사람, 노동자를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 근로자로 부른다. 노동자로 부르든 근로자로 부르든 노동을 존중하고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면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을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된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노동 현장은 인간 소외의 현장이 되고 만다.
눈에 보이지 않고, 보여도 못 본 척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을 괴롭히는 말이 바로 ‘고객이 왕’이란 말이다. 자본주의의 발생지인 서구 유럽에서는 상상하지 못하는 그 말이 우리 사회에서는 진리처럼 여겨진다.
진상들의 단골 멘트가 된 지 오래다.
고용주는 위험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노동자를 내몰고 있다. 위험은 외주화하고, 을과 을의 대립으로 갑의 공고한 위치를 더욱 확실하게 지켜낸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쿠팡 노동조합이 설립됐다는 기사를 봤다. 노조 활동을 하던 센터 분회장이 해고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부당해고와 노동조건 개선을 걸고 싸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방 센터에서 일하는 나는 노조가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센터에 조합원도 없고, 노조가 설립됐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근로계약서에도 모든 것은 취업규칙을 따르고 아니면 기타 사규를 따른다는 조항이 많다. 단체협약을 맺어 직원들의 노동환경이나 조건을 개선하는 때가 오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노가다’ 없이 세상이 돌아가나요: 김경민(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중에서
학교에서 일하는 나에게 급식 노동자분들이나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학교 급식 노동자분들이 폐암으로 고통받는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글을 읽었다.
조리원 1인당 식수 담당 인원을 줄여 초단시간 고강도 노동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고, 학교 급식실 환기시설 개선 공사도 해야 한다. 아이들 밥 먹이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분들의 보람을 온전하게 지켜드리고 싶다.
불과 몇 년 전이네요. 구로에서 ‘과로’로 생을 달리한 동료 기사를 본 게요. 모두들 ‘어쩌다 이런 일이’가 아니라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반응이었어요. 그리고 어쩌면 나의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모두를 덮쳤죠. 그 뒤로 몇 번 더 비슷한 일이 있고는 ‘주 52시간제’가 시작되었어요. 심지어 몇 곳은 노조도 생기고 ‘포괄임금제’가 없어지면서 처음으로 ‘야근수당’이란 것도 받아봤고요.
이제 겨우 조금 숨통이 틔고 좋아지려는 찰나에 “노동시간이 부족하다, 유연화해야 한다”라는 장관님의 말씀은 우리 업계 노동자 모두를 화나게 했어요. 트라우마가 된 ‘과로사’ 공포도 떠올랐고요. 맞아요. 사실 우리는 동료를 또 잃을까 무서워요. -<재미를 위해서는 쉴 틈이 없다: 신명재(게임 엔지니어)> 중에서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이동이 가능한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승강장 사이의 겨우 10센티미터 틈이, 여차하면 한 사람의 삶을 집어삼키고 말 크레바스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우리 사회의 무심함을 느꼈고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직접 반영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동네 이야기처럼 들렸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도 깻잎 농사를 위해 와서 일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많다. 근처 농공단지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도 쉽게 눈에 띈다. 농촌의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고마운 분들에 대한 인식이나 제도적 미비의 문제 지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세계 최빈국에서 이제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도 다른 나라에 노동자로 진출해서 고생한 아픈 경험들이 많다. 그 역사와 경험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를 찾은 이주 노동자들을 우리의 좋은 이웃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주 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다. 노예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대우해서도 안 된다. 노동자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이주노동자에게도 있다. 이주 노동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해서 이주노동자에게 함부로 해도 되는가. 지난 24년 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차별적인 모습들을 계속 보고 느낀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이 발전했다고 느끼지만, 이주자 그리고 이주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내가 처음 왔을 때나 지금이나 별로 바뀌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차별 없는 사회를 계속 꿈꾼다. 이주 노동자가 평등하게 일하고, 존중받고,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조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영화 만드는 일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이주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다: 섹 알 마문(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 > 중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반대되는 사례가 외국인 투자기업에 나타난다. 우리나라 노동자에 대한 보호와 우리 법률에 대한 존중 없는 기업 청산과 대량 해고가 발생한 한국와이퍼 사례. 이 사례에서 국가의 온갖 혜택을 받았으면서, 노동자를 해고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회사에 대해 처벌이 어렵다는 관련 부처의 응답은 노동자의 분노를 일으킨다.
국가는 왜 존재하고 왜 필요한 것인가? 본질적인 질문이 드는 사례다.
노동의 가치, 인간의 가치를 지키는 연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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