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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아이들 ㅣ 꿈꾸는돌 39
정수윤 지음 / 돌베개 / 2024년 6월
평점 :
이 소설을 ‘설, 광민, 여름. 세 명의 청소년 성장 소설’이라고 소개하면 너무 드라이할까?
청춘의 여정이라기엔 너무나 혹독한, 그리고 목숨을 걸고서야 고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청소년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출발한 장소? 출발하게 된 배경과 목적? 탈출의 과정과 고난? 그 고난의 결과?
자기 앞에 주어진 운명과 환경의 압박과 압력은 단지 소설 속 주인공만이 느끼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성장하는 청소년이나 어른들에게도 맞닥뜨리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환경의 압박 중에서 자신을 선택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작가가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동정심을 뛰어넘는 감동을 얻게 된다.
지금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지 어떤지조차 알 수 없는 땅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 땅에서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고, 무엇이든 먹고 마시고 입을 수 있다. 무엇보다 그 땅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살 수 있다. 태어난 모습 그대로.
“나는 간다. 죽지 않고 살면 또 보자.” -p9
각 챕터의 숫자 앞에는 세 주인공을 상징하는 심볼이 그려져 있다. 눈 결정체 모양은 겨울에 태어난 ‘설’이고, 반짝이는 태양 모양은 ‘여름’이고, 축구공 심볼은 손흥민을 추앙하는 ‘광민’이다. 이 세 주인공의 이야기가 교차하다가 마지막에 하나로 결합한다.
달리는 호송 트럭에서 길바닥으로 몸을 던지며 긴장감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설’은 두 번의 탈북 실패 후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두만강을 건너지만 인신매매로 위험에 처했다가 가까스로 탈출한다. 북한 고위층 자녀로 부족함 없이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며 손흥민처럼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지닌 ‘광민’은 어머니의 브로커 활동이 발각되며 하루아침에 위기에 내몰린다. 마지막 주인공 ‘여름’은 북한을 벗어나서도 중국에서 위태로운 나날을 이어 가는 중이다.
우리는 어느덧 바다를 떠나보내고 꽁꽁 언 국경의 강 앞에 섰다. 그래, 이번에 국경을 넘으면 바다로 가자. 세상 끝 어딘가에 넘실대고 있을 바다를 보러 가자. 그 바다에 발을 담그고 이 세상 온갖 것들과 마주하자. 그 바다는 이 강과 이어져 있으리라. 세상 모든 물은 …… 이어져 있으니까……. -p56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동화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대요.’로 마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고생하고 고생한 끝에 탈북에 성공해서 남한에 잘 정착하여 행복한 제2의 인생을 그리는 것으로 마치지 않는다. 오직 자기 자신으로, “태어난 모습 그대로” 자유롭게 살기를 꿈꾸던 세 사람은 고비 끝에 마침내 생애 처음으로 푸른 바다에 다다른다.
‘북쪽’과 ‘남쪽’ 어느 한 편에 서기보다 ‘바다’를 자신들의 나라로 선언하는 주인공들의 주체적인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나라로 정한 ‘바다’가 직접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작가는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환상일지도 모를 그 ‘바다’에 도착한 주인공들의 깨달음. 자유와 결합한 바다라는 실체.
너와 나, 물과 물고기, 달과 바다. 그 모든 것이 다 이어졌음을 깨달은 주인공들은 이 바다에 살기로 선택한다.
작가는 13년 동안 100여 명에 달하는 탈북청소년들을 인터뷰하며 디아스포라 서사를 그려냈다. 이주민의 삶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탈북청소년에 대해 깊이 있게 조명한 작품이 아직 드물다는 점 또한 우리가 이 소설을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다.
그러나 소설을 읽은 후 이 이야기를 단지 탈북민 또는 탈북청소년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건 작품을 통해 그리고 싶어 했던 작가의 의도와 열정을 무시하는, 작가의 자존심을 가장 심하게 긁는 평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결정하지 않은 세상 따위 원하지 않아. 여기가 바로, 우리의 나라야!” -p212
이 작품의 ‘열린 결말’은 비단 수사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고, 세 인물의 여정에 동행한 독자들이 책장을 덮은 후 자기 삶에서 ‘열린 내일’로 나아가기를 희망하는 역동적인 요청이다. “온몸으로 답하는 바다의 소리를” 들으며, “모든 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작가는 작품 안의 ‘경계 넘기’를 통해 작품 밖 현실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도 우리를 둘러싼 공고한 경계를 용기 내어 함께 넘어가자고 손 내민다. 『파도의 아이들』을 읽으며 독자들은 바깥을 사유하고, 세계를 확장하는 문학 경험에 이를 수 있다. 생 전부를 걸고 우리 앞에 도착한 세 청춘에, 이제 우리가 바다처럼 눈부신 환대로 답할 차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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