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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한다는 것
윤슬 지음 / 담다 / 2021년 2월
평점 :

2023-76 《이해한다는 것(윤슬 지음/담다)》
괜찮다고 했지만 그리 괜찮지 않았던 날의 서사
본인을 ‘기록 디자이너’로 소개하는 에세이스트이자 도서출판 <담다>의 대표인 윤슬 작가의 단편 소설집. 윤슬 짧은 소설.
일상의 시간. 무미건조한 그 시간이 누구에겐 이렇게나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니.
드라마의 한 장면이나 노래 한가락처럼, 50 넘은 아저씨의 딱딱한 가슴이 무너지는 급소가 있다. 하지만 윤슬 작가의 짧은 소설은 급소를 노리는 한 방이 아니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처럼, 일상의 이야기를 툭툭 던지든 그 이야기들은 내 감정을 살살 문지르더니 결국 추억 너머의 감정이 빼꼼 고개를 쳐든다.
고개를 끄덕이며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다 보니 딱딱한 가슴이 말랑해져 있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얻은 통계로 예측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는 만큼 살아간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이 추구하는 방향은 ‘확장’이다. 함께 살아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생각,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감정과의 연결을 시도해보려 한다. 미처 알지 못했음을 인식하고,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서서히 시선을 옮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해한다는 것』에 숨겨진 메시지다. -<작가의 말> 중에서
27편의 단편을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로 나누어 실었다.

아빠와 함께 누웠다가 돌아가신 엄마의 이야기는 남겨진 가족의 미안한 이야기다. 아내의 죽음을 자신 때문이라고 여기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들의 미안함.
사직서를 내고 귀농을 한 지인을 통해서 본 은퇴 이야기. 나의 은퇴는 어떤 모습일까.
마음이 가는 ‘그녀’와의 데이트에서 만난 예기치 못한 자동차 고장. 그때의 그 기억, ‘<벚꽃엔딩>은커녕 ’어떻게 좀 해보세요‘만 기억나게 생겼다.’
친구들의 부러움을 흠뻑 받고 올라간 ‘신의 직장’, 친구의 추천으로 입사하게 된 그 ‘신의 직장’이 다단계…. 그 신은 어떤 신일까?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시어머니를 모시는 일. 그러나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걸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닌 것이 현실. 그 현실에서 발생하는 끝없는 전쟁.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게 된 것에는 같이 공부하는 친구 지후의 영향이 컸다. 지후 어머니께서 검진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였다. 시험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는 지후가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어머니, 검진만 받는 거니까 마음 편하게 먹으세요. 어머니. 사랑해요.」
지후의 생소한 모습이 낯설었지만, 그날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사랑한다’라는 표현을 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랑한다’라는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진 것이 혜택이라는 것을. 지후의 모습에 용기를 얻은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아주 짧은 문자를 넣었다.
「엄마, 사랑해요.」
낯간지러운 문자를 보내 놓고 혼자 괜한 짓을 한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을 때였다. 내 모든 걱정을 한꺼번에 날려준 문자가 도착했다.
「아들, 엄마도 아들 사랑해. 많이 사랑해.」 -<사랑한다. 사랑해> 중에서

30년 넘는 세월을 학생들과 바쁘게 지내오면서 경험한 아주 많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모두 하나의 소설이 될 듯하다. 초임 교사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듯, 그때의 학생들과 지금의 학생들이 다르고, 그들과의 관계도 달라져 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아름답고 행복한 동화일 수만은 없다. 하지만 요즘 들어 학교에서 일어나는 관계와 현상들은 동화나 일상의 에세이가 아닌 비극과 공포물로 등장한다.
나의 일상에도 나의 감정이 묻어 있겠지. 기쁨과 슬픔, 설렘과 후회, 분노와 환희 등의 감정을 언제 느꼈던가. 돌아보면 그 감정을 느끼지 않은 시간은 무의미하게 지나쳐버린 시간이었다. 긍정적 감정만이 아니라 부정적 감정이 들던 그 시간에 나는 살아있었다.

여행과 독서. 나의 시간과 공간을 넓혀주는 좋은 친구들이다.
휴가로 떠난 여행에서 만나면 좋을 만한 친구인 책이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시간과 공간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책.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이해한다는 것 #윤슬 #담다 #책읽는샘 #함께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