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항미원조 - 중국인들의 한국전쟁
백지운 지음 / 창비 / 2023년 4월
평점 :

2023-41 《항미원조(백지운 지음/창비)》
중국인들의 한국전쟁
1950년 6·25사변 또는 한국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어 UN군의 참전으로 전황을 역전하고 통일을 앞두고 있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끝내지 못하고 휴전에 이른 전쟁으로 기억된다. 동시에 우리 민족 간의 최대의 비극이고 분단으로 인한 피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해전술, 1·4 후퇴 등 단편적으로만 기억되는 중공군(중국인민지원군)의 활동이 한국전쟁 대부분을 차지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1950년 10월 25일부터 2년 9개월 동안, 한반도에 들어온 중국인민지원군의 수는 연인원 240만을 넘었고, 최대 규모가 주둔했던 1953년 5월경에는 135만에 달했다. 한국전쟁 대부분이 사실상 중공군과의 싸움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자 전쟁 이후 독재자들의 단골 구호였던 반공·멸공 논리의 배경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흐릿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이 바라보는 한국전쟁의 모습은 어떨까?
항미원조.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도운 전쟁. 중국인들이 부르는 한국전쟁의 명칭이다.
중국인들의 항미원조전쟁 속의 한국 역시 극히 희미하다. 중국 현대사에서 항미원조전쟁은 여러 이유로 억눌려왔다. 그러다 최근 미·중 대결 국면을 계기로 중국 내 항미원조전쟁에 대한 금기가 일거에 걷히면서 대대적으로 소환되고 있다.
70년 가까이 지속된 미·중의 적대적 공조 체제와 1950년대 말에 시작된 중소 갈등, 이 두 요소가 중국에서 항미원조전쟁이 정치적 금기가 되는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이다.
이 두 요소가 인민공사, 대약진, 문화대혁명, 그리고 개혁개방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굴곡과 뒤얽히면서, 항미원조전쟁은 오랫동안 중국 대중들로부터 기억의 유배상태였다.

저자는 2장에서 오랜 금기와 망각의 상태에 방치되었던 항미원조전쟁이 2000년대 들어 귀환하는 과정을 2000~2010년대 작품들을 통해 살펴본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영화를 통해 항미원조전쟁이 중국 대중에게 귀환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그 작품들은 국가의 일방적인 이데올로기 주입에 의한 회고가 아니고, 오랫동안 이 전쟁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애도할 길이 막혀있던 기층의 목소리와 시선이 묻어있는 이야기들이다.
상감령은 한국전쟁에서 1952년 10월 14일부터 11월 25일까지, 북한의 김화군 오성상 남쪽의 537 및 598고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격전의 현장이다. 불과 3.7제곱킬로미터의 작은 산지에서 43일간 피아 10만 명이 싸워 3~4만 명의 희생을 초래한 혈투였다. 이를 바탕으로 한 소설 『상감령』이 1953년 쓰였고, 1956년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영화 「상감령」은 1964년에 나온 영화 「영웅아녀」와 더불어 항미원조전쟁을 그린 양대 정전(正傳)으로 기억된다.
바야흐로 중국에서 항미원조 서사는 건국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미중 대결 기류를 타고 국가주의와 애국주의가 고양되는 악성 환경은 오랫동안 냉궁에 유폐되었던 항미원조전쟁의 기억이 가정과 극장, 인터넷 스트리밍 등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지난 세기 국민국가의 역사의 불편한 퍼즐 조각이었던 항미원조는 이제 국가의 기초를 놓은 ‘입국지전(立國之戰)’으로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제3장 ‘승리한 전쟁’의 안과 밖> 중에서
개혁·개방 시대에도 숨죽인 외교를 펼쳐야 했던 1980년대에는 덩샤오핑이 제창한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춰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면서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가 외교정책의 기조가 되었다.
1990년대 중국 외교가에선 ‘책임대국론(責任大國論)’이 제기됐다. 97년 장쩌민 국가주석은 “대국으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겠다”고 선언했다. 덩샤오핑의 오랜 도광양회 기조에서 벗어나 ‘필요한 역할은 한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로의 변신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시진핑 이후 더욱 팽창한다. 시 주석은 공산당 총서기 3연임을 선언하며, 공동부유, 인류 운명공동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다룰 것을 주창하였다. 시 주석의 외교정책을 전량외교라 칭하는데, 전랑 외교는 성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무력과 보복 등 공세적인 외교를 지향하는 중국의 외교 방식을 가리킨다. 이는 중국의 인기 영화 제목인 '전랑(戰狼·늑대 전사라는 뜻)'에 빗대 늑대처럼 힘을 과시하는 중국의 외교 전략을 지칭한다.

항미원조의 귀환은 1970년대 이후 미중 데탕트를 계기로 형성된 미중 공조 체제의 역사적 시한이 다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정부의 무역 갈등에서 시작하여 바이든 정부에서 전면화된 미중 대결의 정치 공간으로, 사라졌던 항미원조의 기억이 대대적으로 소환되고 있다.
한국전쟁을 복수의 당사자들이 함께 반추하는 것, 각자의 현재에서 자기고발을 각오하는 것, 각자의 어둠을 집요하게 추궁하는 작업을 통해 비로소 과거의 (어쩌면 현재도 그러한) ‘적’과 대화할 길이 열릴 것이며, 진정으로 종전을 논할 정동적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이미 역사화되었다고 생각했던 냉전이 부단히 현재로 살아 돌아오는 지금, 지연시켜온 냉전의 극복을 진정으로 재사유하는 길이기도 하다. -<제3장 03 스포트라이트가 밝힌 것과 덮은 것> 중에서
국제 협력을 통한 평화와 인권의 확대는 영원한 과제로만 남을 운명인가. 세계는 다시 새로운 냉전의 시대로 빠져들고 있다. 힘 빠진 미국과 힘을 키운 중국의 갈등은 결국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현실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여파로 전 세계는 혼돈과 충격에 빠지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가장 큰 충격과 피해를 보는 국가는 바로 한국이다. 중국의 강경하고 급격한 변화와 그 대응이 필요한 지금, 그 원인과 배경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연구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항미원조 #백지운 #창비 #한국전쟁 #함께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