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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소방관 심바 씨 이야기
최규영 지음 / 김영사 / 2023년 4월
평점 :

2023-36 《시골 소방관 심바 씨 이야기(최규영 지음/김영사)》
글 쓰는 소방관이 써내려간 삶과 죽음 사이, 우리들의 이야기
어릴 적 슈퍼맨을 꿈꾸었던 아이들이 회사원이 되고 공무원이 되는 게 세상살이라고들 한다.
‘내 월급 올라가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냐?’라고 말하는 사람을 속물이라고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나 역시 다르지 않음을 안다. 그럼에도 온갖 세상 때가 다 묻은 나와는 달리 우리를 지켜주는 정의의 용사나 히어로에 대한 기대가 있다.
어벤져스 같은 영웅을 찾기 힘든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시는 숨은 영웅에 대한 찬사는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일지도 모른다.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희생을 감내하시는 분들에 대해 미안함이나 고마움을 느끼는 게다. 그렇게 등장하는 숨은 영웅의 대표주자가 바로 소방관이 아닐까?
소방학과나 관련 학과를 지원해서 소방관으로 임용되어 근무하고 있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제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교사가 수업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소방관이 불만 끄는 직업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소방과 구조 등 주요 업무 외에 부딪히는 그 무수한 잡다한 업무들이 우리 영웅들의 에너지와 시간을 갉아먹는다.
소방관으로 근무하던 친척 동생의 부고를 받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동생을 괴롭히던 심한 우울증의 원인은 구해내지 못한 희생자에 대한 자책과 극단적 선택을 한 분을 마주해야만 하는 상황 등이었다. 버텨내기 힘든 환경에 몰리던 동생의 안타까운 선택에 눈물만 흘렸다.
삶과 죽음은 때론 종이 한 장 차이로 엇갈리곤 한다.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슬픈 기억들을 모아놓은 상자에 그 사람의 이름표를 넣어 보관하고 있다. - <1 웃음도 슬픔도 보통날이었다> 중에서

초임 소방관으로 활동하면 경험한 생생한 경험담들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생과 사가 오가는 심각한 다큐멘터리보다는 <다큐멘터리 3일>이나 <유 퀴즈 온 더 블록>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현실을 바라보는 저자의 긍정적인 태도 때문일까? 아니면 고통을 주는 현실을 넘어서려는 저자의 자세 때문일까? 인생을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던데, 저자는 살짝 멀리서 보고 있는 걸까?
세계 4대 사막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1년 안에 완주한 최초의 한국인이자 36살에 늦깎이 소방관이 된 저자. 특전사 출신의 체력과 종교적 영향을 받은 따뜻한 심성으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자기 일을 글로 써 내려가고 있다.
‘소방관을 영웅으로 미화시키는 글을 쓰지 말아라.’
저자에게 당부하는 소방대 대장님의 말이자 저자의 원칙이다. 우리에겐 영웅으로 보이지만 소방관의 일은 영웅과 거리가 먼일이 훨씬 더 많다. 개를 잡아 달라. 돼지가 집을 나갔다. 소대가리가 축사 문틈에 끼었다. 벌집을 없애달라. 아파트 문이 고장났다. 등등
일상생활을 하는 보통 사람들의 고민을 똑같이 갖고 있으면서 잡다한 일까지 출동을 하지만 죽음과 가까운 곳에 가 있는 사람을 살려내는 일을 해야만 어려움과 고통을 감당해야만 하는 소방관의 이야기.

폭우가 지나고 얼마 뒤 길거리에 돼지가 돌아다닌다고 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비가 자박자박 내리는 날씨에 무려 2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흑돼지는 이미 뛸 준비를 마치고 도로 위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마취총은 어림도 없고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보아도 해결되지 않으니 팀장님이 나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최반장, 그냥 막 휘둘러 잡아!”
그날 나는 돼지 잡는 사람이었다.
내일 출근하면 어떤 사람으로 살게 될까. 길가에 쓰러진 나무를 자르는 목수가 될 수도 있고, 어깨에 들것을 메고 산을 타는 산악인이 될 수도 있다. 그 모습을 결정짓는 것은 내가 아니다. 국민들의 요구가 곧 나의 모습이 된다. 덕분에 땀 냄새는 기본이고 열심히 빨아도 옷엔 항상 검댕이가 묻어 있다. 그 더러움(?)이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오늘은 돼지 잡는 소방관으로> 중에서
공기통에 공기가 없는 건 숨 참고 넘어가도, 사무실에 컵라면이 없는 건 참지 못한다는 저자.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로 갔다가 고생한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돕고자 하는 저자. 아프리카 우간다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여러 번의 인생의 굴곡을 겪은 저자가 느끼는 제일의 감사 제목은 바로 사람이다.

여러 현장들을 겪으면서 무뎌지는 것뿐이지 죽음을 직면하는 일은 심적으로 큰 스트레스다. 작업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와서 함께 땀 흘린 동료와 먹는 컵라면 한 끼는 그 순간 보약 한 첩보다 더 약이 된다. 지금은 내 옆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코를 파고 있지만 어느 현장에서건 별일도 별일 아닌 듯 옆을 지켜주는 동료가 있어서 위로가 된다.
우리는 살면서 너무 당연한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살아간다. 가족들, 친구들, 일터에 있는 동료들. 매일 마주하기에 ‘함께 있어줌’에 대한 가치를 잘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다. 두 살배기 조카도 우리 누나를 하도 빈번하게 마주치니까 소중한 줄 모르고 가끔씩 보는 나를 만나면 언제나 내 옆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 봐야 네가 얻을 건 장난감뿐이다. 부디 밥과 집을 선택하길 바란다 조카야. 네 엄마 열받았더라.’ -<망고나무 아래서> 중에서
삶과 죽음의 어딘가에서 사람들을 삶 쪽으로 끌어당기느라 오늘도 고생하시는 소방관 아저씨들. 우리의 보통날을 지켜주는 친구이자 형님이자 아저씨 같은 든든한 분들의 이야기를 응원하며 읽었다.
분명 언젠가 내게도 보통날처럼 찾아올 것이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날이.
그래서 오늘 하루도 의미 한 스푼, 추억 한 스푼 넣고 휘저으며 살아간다.
그게 나의 답니다. -<3 오늘이 마지막 하루라면>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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