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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품 이야기 - 재난 수습 전문가가 목격한 삶의 마지막 기록
로버트 젠슨 지음, 김성훈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12월
평점 :

2023-4 《유류품 이야기 (로버트 젠슨 지음/한빛비즈)》
재난 수습 전문가가 목격한 삶의 마지막 기록
우리가 뉴스로 접한 참사 사고만 해도 무수히 많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참사,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 세월호 침몰사고 그리고 10·29 참사까지.
우리의 가슴을 후벼파는 희생자의 사연들이 무수하다. 전 국민이 트라우마에 걸릴 정도의 참사가 왜 그렇게 자꾸 발생하는지,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고 있으니…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이루어져 할 일은 바로 남은 사람들에게 위로하는 일이다.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희생자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세월호 사고 당시 희생자가 수습되어 팽목항으로 들어오면 실종자의 가족들이 그렇게 부러워했다고 한다. 가족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빠진 실종자 가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애통해했던 장면이 또렷이 기억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재난 수습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대량 사망 사고에 대한 대응을 정삼각형의 형태를 유지하며 일하는 것이라 비유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상황에서 모든 각도가 같은 완벽한 정삼각형을 유지해야 한다. 즉, 항상 염두에 두면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각도는 죽은 자다. 이들도 품위와 존엄, 정체성을 지킬 권리가 있다. 두 번째 각도는 산 자다. 사고의 생존자, 유족, 그리고 학생을 잃은 학교나 많은 거주민을 잃은 마을 같은 공동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 각도는 사고 조사다. 범죄의 경우 생존자와 유족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를 원한다. 사고의 경우 똑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막기 위한 변화가 이루어질지 알고 싶어 한다. 때로는 이 세 가지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는 바람에 균형을 이루기 어렵다. -<10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법> 중에서
저자는 사람의 유해를 찾아내 본국으로 송환하고, 그 사람의 소유물을 가족에게 돌려주고, 정부와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돕는 활동을 이끌어왔다. 그의 활동은 산 사람을 돕는 것이다. 저자의 활동이 희생자의 가족과 친구들의 슬픔과 고통을 끝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회복 과정을 감당할 수 있게 돕고, 그들이 과거의 일상을 내려놓고 새롭게 찾아온 일상으로 전환하는 최고의 기회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다.

대량 사망 사고에서 저자가 하는 일의 이면에는 유족지원센터에서 죽은 자의 가족을 대하는 일, 그들과 함께 사망자의 시신을 확인하는 일, 그들의 소유물과 유해를 돌려주는 일 등도 포함되어 있다. 비행기 실종 혹은 추락, 폭탄 폭발, 자연재해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일 먼저 진행되어야 할 일로 저자는 콜센터나 데이터센터를 열어서 사망자의 유족이나 친구로부터 전화나 이메일로 요구사항을 접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얼마 전 벌어진 10·29 참사에서 사고를 수습하는 정부의 역할에서 가장 아쉽고 화가 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었다. 돌아가신 분의 존엄을 지켜주지 못했고, 살아남은 가족과 친구들을 제대로 위로하지 못했다.
대량 사망 사고는 참 힘들다. 초기 공지가 이루어지고 완전한 신원확인이 이루어질 때까지의 기간이 몇 달, 때로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하고, 아예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이 기간 동안에는 불확실한 상황이 이어지고 시신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 사랑하는 가족의 벽장을 정리하는 등 개인적인 행동을 하기를 망설이게 된다. 만약 당국이 틀려서 사랑하는 가족이 되돌아온다면, 벽장을 정리해놓은 것을 보고 내가 자기를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일반적인 죽음의 경우 시스템에서 장례식 준비, 서류 처리 같은 결정을 강요한다. 이런 일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과거의 정상에서 새로운 정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일부이고, 상실의 현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능동적인 단계다. 대량 사망 사고의 경우에는 정반대일 때가 많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했다는 말을 들어도 그 정보를 바탕으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없고, 상실에 대한 대응을 시작할 수도 없다. 어떤 지원도 없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이 일을 헤쳐 나갈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 이런 상황에 갇혀 있으면 정말 끔찍하다. -<7 오래된 정상에서 새로운 정상으로> 중에서
미 육군 장교를 역임하고 세계 최고의 재난수습기업인 캐니언 인터내셔널의 회장인 저자가 활동했던 현장은 전 세계를 뒤덮는다. 2001년 9·11 테러, 허리케인 카트리나, 2004년 남아시아 쓰나미, 22만 5천 명이 사망한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보스니아와 이라크 대학살,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 폭탄 테러, 2018년 영국 런던 그렌펠타워 화재 참사, 수많은 항공기 추락사고 등등

유류품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유류품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그 사람과 자신을 묶어주는 실체를 가진 존재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이 여전히 행방불명이거나 신원확인이 안 되고 있거나, 수습은 되었지만 자기가 알던 사람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시신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외신뉴스를 통해 알려진 전 세계의 재난과 사고 현상에 출동하여 희생자의 시신과 유류품을 수습했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참혹한 현장에서 한 점의 유류품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고생하는 모습에서 희생당하신 분들을 제대로 모시고 수습하는 것이 살아남은 가족에 대한 가장 큰 위로이자 배려임을 알게 되었다.
죽은 자를 대하는 태도에는 산 자를 대하는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죽은 자와 그들의 물건을 매립지에 파묻는 쓰레기처럼 취급한다면 죽음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운명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사회란 결국 공동체, 유족, 혈통 등 우리가 인간으로서 서 있는 자리의 문제다. 어깨를 으쓱하며 우리를 독수리에게 뜯겨 먹히도록 놔두어도 상관없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말해버리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능하는 데 중요한 무언가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21 나의 기록> 중에서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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