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러닝
이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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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75 나이트 러닝(이지 소설집 / 한겨레출판)

나는 그 어떤 밤, 끝도 없이 달리며 생의 내력에 대해 생각했다.”

2015년 등단한 소설가 이지님의 단편 8편이 실려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공간은 퇴근길이나 산책길에 흔히 만나는 곳이 아니다. 먼 외국이거나 어딘가 낯선 생소한 공간이다. 소설의 주인공 중에 내 주위에서 만날만한 사람은 별로 없다.

결론적으로 나와 시간적 공간적으로 가깝지 않은 상황이 전개된다. 즐거운 호기심을 끌어내기보다 경계하고 움츠리는 마음이 들었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긴장하며 읽은 책이다.

나는 로맨틱 코미디가 좋다. 주인공이 죽는 영화는 보지 않는다. 소설도 유쾌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지만 책장을 계속 넘기며 주인공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는 <나이트 러닝>에서 작가가 주목하는 감정은 슬픔이다.

슬픔은 우리를 발가벗기고 초라하게 만든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일에도 웃고, 달리고, 노래한다. 그래야 슬픔의 힘에 눌리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지금 방송국 야간 경비를 서고 있다. 그것도 대리 경비원이다.

경제적으로 곤궁한 이민자가 느끼는 불안과 슬픔.

그 앞에 등장하는 기상 캐스터 합격자의 생떼. 고집불통인 그녀를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는 사이 발생한 산불.

모든 것이 느닷없이 등장하고 대처 방법이라고는 찾을 수 없고. 그 가운데 뜬금없이 발견되는 두 개의 팔. 맞다, 팔이다. 사람의 팔. 이 소란에 합류하는 사진기자까지.

불의 근원지를 향한 야밤의 러닝, 나이트 러닝이 시작된다.

새롭게 등장하는 두 팔, 잘려진 팔의 주인공인 잔느.

팔을 잘라서라도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커지고 커져서 잘린 팔들이 쌓이고 쌓였고, 그 팔을 태우다가 산불이 나고.....

 

올드타운의 낡은 삼일실 여성용 도미토리에서 한 사람은 기도를 하고, 한 사람은 누에고치처럼 잠들어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슈슈. 밤의 숨소리를 생각했다. 컴컴한 가운데 슈슈, 푹 잠든 소리, 슈슈, 혹은 휴휴, 퓨퓨. 나는 올드타운을 걸을 때 밤의 그 소리를 생각했다. -<슈슈> 중에서

 

헤어진 지 10년이 지난 이복 언니와의 만남을 담은 이야기 <슈슈>에도 슬픔은 짙다.

 

너는, 모든 걸 슬픔으로, 네 고통과 슬픔으로 퉁칠 수 있어서 좋겠다.” 술은 순간 다 깨버렸다.

슬픔은, 슬픔이라는 이유로 쉽게 발설하지. 미움, 질투, 분노 이런 것들을 사람들은 주로 슬픔으로 위장해.” -<슈슈> 중에서

 

좋아하는, 사랑하는, 끌렸던, 의지했던 사람의 죽음에 대한 채무감과 괴로움. 고통과 불안과 슬픔이 묻어있는 이야기 <우리가 소멸하는 법>.

속죄를 위해 무덤 가장자리를 둥글게 걷는 두 사람. 규모가 제법 되는 왕릉을 걸으면 죄가 사라질까?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 빛으로 고통을 겪는 만큼 죄가 사라질까? 슬픔도 사라질까?

주인공이 살던 소도시에 와서 폴렌타란 클럽을 열었던 교호. 교포로 알려진 유구. 그들의 비밀 같은 이야기와 이별.

 

교호의 없는 몸과 유구의 거짓말과 나의 딸꾹질이 한데 모여서 옥수수 수프처럼 끓는 한낮의 여름. 매미 소리는 여전히 울창했고 나는 계속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곧 무덤 입구에는 영업 마감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지겠지만 돌아올 사람은 돌아올 것이다. 해를 잔뜩 머금은 꽃무늬 양산이 홀로 모두를 애도하고 있었다. -<우리가 소멸하는 법> 중에서

 

안구 뒤에 있는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안구를 적출해야 했던 주인공.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수술 후 진짜 같은 가짜 눈알을 갖게 됐다. 그 감정을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텅 비었던 자리를 꽉 찬 눈알이 대신했다.” 이야기한다.

동생의 결혼식에서 자리하기 불편해하며 떠난 뉴욕 여행. 그 여행의 경험이 줄거리가 된다.

 

지금도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흐른다. 하지만 허공에 떠 있는 눈알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잠들던 때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현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 태도가 바뀌어갔다. 그건 무서운 적응력인 동시에 본능적 체념이다. 처음에는 의안을 두세 시간만 끼고 있어도 몹시 괴로웠다. 하지만 이제는 원래가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이것을 원래갖고 태어난 것 같다. 이물감은 여전하지만 그 이물감 자체가 익숙해진 것이다. -<모두에게 다른 중력> 중에서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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