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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게임
오음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7월
평점 :

2021-73 《외계인 게임(오음 지음/팩토리나인)》
낯선 여행지 훈자에 모인 다섯 청춘이 펼치는 외계인 게임 속 현실
익숙한 나의 공간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찾는 것을 여행이라 한다.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경험한다는 것은 내 생활의 활력이 되기도 하고 기쁨이 되기도 한다.
멋진 자연과 아니면 즐거운 쇼핑에 빠지는 여행의 기쁨을 다룬 여행 서적은 아니다.
나의 뿌리가 되었던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여행도 있지만 소설 속 다섯 청춘의 경우는 이도 아니다.
화려한 도시와 청춘의 햇살만이 가득할 것 같던 그들의 그늘. 여행을 떠나온 후 과거가 된 그들의 현실에 대한 결심과 대응이 소설의 내용이 된다.

중학교 국어 교사인 28살 여성 김설
방학마다 떠나는 여행이지만 이번 여행은 그녀의 연인을 잊기 위한 여행이 되고야 말았다.
멀리 왔지만 지금도 이별이라는 굴곡 없는 평행선에 서 있는 나라는 것을 안다. 세상의 반대편에 섰다고 해서 고통의 반대편에 당도하는 건 아니었다. 왜일까? 이별이 가져오는 것들은 왜 이별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일까? 이별은 그저 익숙한 몇 개의 표정을 지우는 일일 뿐이라 짐작했었다. 김이 서린 욕실의 거울을 닦아내듯 단숨에 지워내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간단히 빗나갔다. 손길과 내음이 그립더니, 부재에 걸려 넘어진 나를 멍하니 발견하곤 했다. 홀로 남겨질 나를 두고 볼 수 없어 먼 곳까지 떠나왔지만, 기억마다 그가 걸려 재채기가 나왔다. -21p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외계인 게임’은 소설 속에서 제안되어 등장인물들이 참여하는 간단한 게임이지만, 이 게임 속에서 등장인물의 성격과 그들의 역사가 배어 나온다. 규칙은 어렵지 않다. 현실에선 절대 일어날 리 없을 법한 사건 하나를 던져서, 두 개의 답 중에 하나를 정하는 게임. 다섯 명의 선택을 확인하고 소수 의견을 낸 사람이 외계인이 되고 외계인은 벌주를 마신다.

영상 번역가인 32살 여성 남하나
스물이 시작될 때의 키워드가 기대라면, 서른의 키워드는 불안이라는 영상 번역가 겸 키스방 도우미.
경력 단절을 염려하며 힘겹게 번역 일을 이어나가고, 쉬운 일을 하며 쓸쓸히 돈을 버는 일상. 이제는 적당히 나를 놓아 버린, 하지만 아직 깊은 곳 어딘가 남아 있을 진짜 나를 위한 선물. 욕구뿐인 나를 그곳에 내버려 둔 채, 작은 나를 건져 이렇게 멀고 아득한 곳에 내려놓으면 작게나마 다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103p
키스방에서 자신의 연기에 속아 넘어간 남자들의 동영상. 한 명당 채 오 분이 넘지 않는 영상들은 주인공인 남자의 명함이나 SNS를 비추며 마무리된다. 이제 몇 번의 클릭만으로 내일이면 한국의 곳곳에선 모니터와 휴대폰을 통해 영상이 전송될 것이다.
소설가 40살 남성 최낙현
서른에 입상을 통해 등단한 성공, 그 이후 10년의 시간은 그의 소설가 인생에 남긴 것 하나 없이 흘러만 갔다. 소설가라는 이름마저 잃어가고 그리고 아내를 잃었다.
화면에 띄워놓은 원고의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이야기를 사랑하고 믿느냐가 자신의 세상을 결정한다.’
“하핫. 하하핫.”
실성한 듯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를 막을 수 없었다. 몸이 떨리며 등에 땀이 뻐적뻐적 맺혔다.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뜨겁고 시큰한 것이 볼을 타고 쏟아졌다. 새어 나오는 쇳소리를 틀어막으려 손목에 더욱 힘을 주었다. 내게서 와락 이야기가 흘러나가는 것 같았다. 너라는 첫 문장을 게워내자 속이 텅 비어 두둥실 떠오를 것만 같았다. -199p

대학생인 22살 여성 전나은
손목에 남긴 수십 번의 자해 흔적과 섹스로도 인생의 해방구를 찾지 못한 채 새로운 기대를 품는 일을 멈춰버렸다. 친구의 죽음을 경험한 후 죽음과 여행을 계획한다.
여행을 계획했다.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다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마지막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떠나고 싶었다. 구체적인 방법이나 수단을 결정하지 못했을 뿐, 죽음을 선택하는 일은 고통스럽지 않았다. 내가 떠나도 세상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죽음 이후 찾아올지 모르는 영원한 평화를 그렸다. 설령 그게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무감한 현실도 마음 나눌 이 하나 없으니 오지나 다름없었다. 닮은 사람 하나 없으니 다른 행성이었다. -224p
29살의 남자 여행자 오후
자유로운 영혼, 카사노바 같은 남자 오후.
그의 이름부터 신비롭다. 그에게 ‘오후’라는 이름이 생긴 내력이 바로 그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 이름을 버리지 못하고 더욱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해 그는 여행을 선택한다.
“후……, 후…….”
보라의 목소리였다. 나의 이름.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이었다. 후라고 불린 이후, 새로 빚어진 사람처럼 모든 게 변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지라도 이미 새로워진 나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눈을 뜨면 사라져 버릴까 눈을 감은 채 음성을 더듬었다. 나를 찾는 소리가 메아리칠 때마다 델 듯한 찬결이 가슴팍에 몰아쳤다.
제자리에 쓰인, 그녀가 지어준 이름 때문이었다. -292p

다섯의 청춘은 서로의 여행의 추억을 깊게 하려고 ‘파수’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다섯 청춘은 그들의 계획대로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찰깍. 찰깍.
약속했던 우리의 단체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우리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한 다리 위에 서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우리의 얼굴은 위태롭지 않았다. 모두의 표정이 닮아 있었다. 아슬하게 서 있는 서로가 서로를 붙잡아 단단히 이어져 있어서였다. 홀로 걸어 빈손으로 도착한 훈자였지만, 사진 속엔 모두의 손이 가득 차 있었다. -300p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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