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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하현 지음 / 비에이블 / 2021년 6월
평점 :

2021-62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하현 지음/비에이블)》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제목을 보는 순간 ‘아, 이 책이다!’ 싶었다.
사회생활이란 이름으로, 나의 의지가 아닌 상대에 대한 배려 아닌 배려 때문에 맺은 약속들로 마음 불편하게 지낸 시간들이 떠올랐다.
부담스럽지만 연결된 관계들. 그 관계 속에 소진되는 나의 모습과 그에 대한 소심한 저항.
작가의 마음과 연결된 듯한 느낌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작가는 무조건 홀로 생활하고자 하는 외톨이가 아니다. 세상과의 연결과 분리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이다. 강요된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싶은 마음은 나와 같았다.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자유롭게 연결하고 분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을 모듈형이라고 한다. 모듈형 장난감, 모듈형 서랍장, 모듈형 가방……. 나는 모듈형 인간이 되고 싶은 것 같다. 블록을 조립하듯 마음대로 세상과 연결되고 분리되는 사람. 외톨이가 아닌 채로 혼자일 수 있는 사람.
약속이 취소되면 나는 함께라는 가능성을 가진 채로 기쁘게 혼자가 된다. 조그만 고리를 숨기고 있는 장난감 자동차처럼. 친구도 피자도 노래방도 좋지만 그게 조금 더 좋을 때가 있다. 그 안전한 고립감이 너무 달콤해서 들키지 않게 조용히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창밖은 푸르고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어느 맑은 날에. -<외로운 건 솔직히 홀가분하거든요> 중에서

저자는 결혼 제도에 동의하지 못하는 비혼주의자라고 고백한다. 부유하고 명랑한 독거노인을 꿈꾸는 비혼주의자. 결혼에 대한 사회적 압력에 대한 자신의 저항을 ‘여우의 신포도’로 풀어내고 있다.
“숨지 않고 앞으로 나가 외치기로 한다. 인간이 여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이제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보다 스스로의 유일무이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 더 두렵다. 내 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든, 그들이 나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든 내가 되어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어떤 문제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사람이나 사랑으로 채울 수 없는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의 고독은 우리 각자가 너무도 확실하게 유일한 존재라서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나> 중에서
젊지만 돌아볼 수 있는 인생을 살아온 저자의 고백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자는 철학자의 이야기와 같다. 다른 사람의 평가와 기준에 휘둘리기 쉬운 우리에게 그 고백과 희망은 힘이 되고, 서로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된다.
10대에는 마음만 먹으면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20대에는 냉정한 현실을 깨달으며 끊임없이 좌절하고 나를 미워했다. 그렇다면 30대는 평범한 나로도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시간이지 않을까. 열등감이나 패배감에 잠식되지 않은 건강한 마음으로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사는 사람. 이제 나는 특별한 사람보다 그런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이건 나는 게 아니라 멋지게 추락하는 거야> 중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인생을 걸어가는 저자의 걸음에 힘이 실리는 것은 생각하는 힘이 바탕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성찰하고 기록하고 자신을 탐구하는 생활. 사회적 성취보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잃을 게 없는 사람보다 지킬 게 많은 사람이 더 강한 것 같다. 지킬 것이 많아 걱정할 일도 겁낼 일도 많겠지만 소중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이 결정적인 순간 그들의 용기가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서초구 용사 벡터맨> 중에서
자신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기록하는 것이 인생에 어떤 힘을 주는지 조금은 짐작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일에 정신 팔려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생활이 일상이다 보니 작가의 잔잔하고 담담한 기록들에서 옹골진 힘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행복과 용기는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끝날 걸 알면서도 찰나의 기쁨에 최선을 다할 용기, 계산 없이 기대하고 실망할 용기, 아플 용기, 다칠 용기, 외로울 용기, 의심 많은 겁쟁이는 결코 알지 못할 순수한 행복이 궁금해 그런 용기를 열심히 흉내 내 본다. 매번 실패하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연막탄> 중에서

세상의 힘 있는 말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그 말소리를 차분히 되새겨보는 생활. 그 속에 숨어있는 거짓을 걸러내고 참된 삶을 사는 생활. 권력과 부는 부족하더라도 맑은 정신과 도전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의 삶을 살고 싶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 나는 작은 것들로부터 얻는 소소한 행복을 사랑하지만, 오직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저녁에는 오늘의 소확행을 떠올리며 고마운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아침이 오면 더 큰 행복을 찾아 씩씩하게 집을 나설 수 있기를. 그것을 원한다고 당당히 말할 용기가 언제나 내게 있기를 바란다.
솜 포함 3만 5천 원짜리 이불보다 더 가지고 싶은 건 그 이불을 덮고 마음 편히 누울 수 있는 내 집이다. 그리고 그걸 기반으로 꿈꿀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는 미래,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만드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바로 그런 것들이다. 크고 멀고 불확실한 행복. -<크고 멀고 불확실한 행복> 중에서

‘돈은 짱도 아닌 개짱’ 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저자는 바로 ‘그 피 같은 돈을 써서라도 웃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돈거리며 사는 이유일 것이다.
씩씩하게 자신의 하루를 온전히 채우는 저자를 응원한다. 함께 힘을 내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청춘을 응원한다. 오늘도 성장을 꿈꾸는 나 자신도 응원한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결국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드는 건 아무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인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어떤 꿈을 꾸게 될지 모르는 채로 잠들 것이다. 잠에서 깨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는 채로 살아갈 것이다. 아무도 본 적 없고 누구도 알 수 없는 우연한 미래를 씩씩하게 걸어간다. 그 사실이 두렵다가도 기쁘게 다행이다. -<우연한 미래> 중에서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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