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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 문장의 왕국 조선을 풍미한 명문장을 찾아서
백승종 지음 / 김영사 / 2020년 9월
평점 :
2020-157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백승종 지음/김영사)>
문장의 왕국 조선을 풍미한 명문장을 찾아서
일찍이 ‘소중화’로 불릴 정도로 유학 사상이 깊었던 조선.
그 조선의 사상과 문화는 여러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성리학을 중시했던 조선의 역사는 영화와 굴욕이 함께 어우러진 말 그대로 역사이다. 저자는 “조선의 역사는 붓끝에서 피어나 문장과 더불어 쇠락했다.”라고 정리했다.
영광의 사실만 존재하는 역사는 없으며 동시에 굴종의 역사만 존재하는 역사도 없다.
문장의 역사에서 목은牧隱 이색 李穡(1328~1396)의 위치는 독보적이었다. 그는 14세기 후반의 최고 지식인이요, 시문의 대가였다. 성리학에도 정통하여 공민왕의 개혁 정치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았고,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포은圃隱 정몽주 鄭夢周(1337~1392)와 삼봉三峰 정도전 鄭道傳(1342~1398), 양촌陽村 권근 權近(1352~1409) 등 그의 제자들이 고려와 조선, 두 왕조의 운명을 좌우하였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난세가 적신 문장가의 붓끝> 중에서
저자는 시공을 초월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문장에서 역사의 이정표가 된 문장까지 다양하게 소개한다. 아울러 문장가들의 생애와 그들의 사상을 전달한다. 우리는 당시의 문장들을 통해 이러한 역사의 깊은 곳에 흐르고 있던 문장가들의 정신과 사상의 흐름을 살필 수 있다. 조선의 문장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 전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문장 강국을 일으키고자 한 왕이 있었다. 그의 문장입국文章立國은 집현전을 중심으로 실현되었다. 이 기관은 고려 때도 잠시 설치되었고 과거 중국에도 존재한 적이 있었으나, 그때는 왕립 도서관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세종의 집현전은 달랐다. 왕은 이곳에서 인재를 길러 국가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했다. 연구와 개발로 국책 사업을 추진한 비밀 병기, 그것이 집현전이었다.
15세기의 문화 비평가 성현은 그때 가장 많은 문장가가 양성되었다고 평가했다. 나는 많고도 많은 문장가 중에서도 권채 權採(1399~1438)와 취금헌醉琴軒 박팽년 朴彭年(1417~1456)에 주목하였다. 그들이야말로 세종이 추구한 실용적 글쓰기의 대가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박팽년은 다양한 문장 장르를 넘나들며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였다. 오늘날에는 거의 망각된 역사적 사실이다. -<세종대왕이 기른 실용적 문장가> 중에서
영욕이 함께 했던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기에는 한자 해독 능력이 너무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사용하는 단어의 80%가 한자어임에도 교육 현장에서의 한자 교육은 사실 많이 부족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길이 막혀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저자와 같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저자는 우리나라 역사학계에 미시사 연구방법론을 본격 도입한 선구자이다.
독일 유수의 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였고, 국내외 여러 대학교와 연구기관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종교, 문화 등을 강의하고 있다.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조선 사회에는 새로운 경향의 문장가들이 속출하였다. 바로 실학자들이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반계 유형원을 비롯하여 덕촌 양득중, 성호 이익, 농암 유수원, 순암 안정복, 존재 위백규, 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 청장관 이덕무, 초정 박제가,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및 오주 이규경 등이 있었다.
그들은 개인의 경험과 사물의 구체적 작동 원리를 강조함으로써 막연한 추상성과 보편성 또는 선험적 진리에 얽매여 있던 성리철학과 작별하였다. 나는 그들의 이러한 사상적 취향이 ‘유교적 근대’를 여는 힘찬 발걸음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안타까운 일은, 그들이 시작한 조선의 근대화가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이라는 복병을 만나 좌초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19세기 후반에 벌어진 또 다른 역사의 흐름이다. -<실학 시대의 문장가> 중에서
이메일과 카톡 그리고 각종 SNS를 통해 문장을 사용하는 시대에, 해독하기조차 어려운 한자로 쓰인 문장들을 살펴보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의 생각과 주장을 표현하는 강력한 수단으로써의 문장의 생명력은 문장이 한자로 쓰였건 디지털 기기로 쓰였건 동일하다.
4차 산업혁명기의 문장이건 고전 시대의 문장이건 인간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면 이른바 명문장으로 인정받는 점 또한 동일하다.
저자는 고전 시대든 현대 시대든 명문장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법고창신’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고 法古’(옛 문물을 본받음) 해야 한다고 옛글을 모방하고 본뜨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창신 刱新’(새로 만듦) 해야 한다고 세상에는 괴상하고 허황한 문장을 지으면서도 두려운 줄 모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 연암 박지원
혜강 최한기는 이를 이어 “오래된 것이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고 새것이라야 꼭 좋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형이상학적 도덕이나 외부에서 주입되기 일쑤인 선입견을 몽땅 배제하고, 사물을 억측으로 재단하지 않는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끝까지 유지한 성호 이익
문장가는 글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석주 권필은 세상을 풍자하는 시를 즐겨 쓰다가 젊은 나이에 매를 맞고 숨졌다. 그 하나만 그런 액운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예다. 피어린 상소문에 얽힌 사연을 더듬어가며, 나는 문장가로서 난세를 헤쳐나간다는 것이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역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차라리 붓을 꺾을 수는 없었을까. 한 가닥 양심 때문에 문장가는 뜻을 굽히지 못한 채 고난을 자초하였던가. -<송곳처럼 날카롭고 추상처럼 매서운 문장가> 중에서
이 책은 “좋은 문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문장이 이끈 시대, 시대가 이끈 문장을 좇아 조선 최고의 문장을 엄선하고 명문장가들이 전하는 지혜와 통찰을 조명했다. 우리가 여전히 옛 문장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문장 본연의 가치를 되새기는 책이다.
그리고 통찰과 지혜가 빛나는 영롱한 문장이 세상을 정의롭고 평화롭게 바꾸기를 희망하는 저자의 마음을 고이 담긴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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