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위상학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김영사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97 <폭력의 위상학(한병철 지음/김영사)>

스페인 최대 일간지인 <엘 파이스>는 저자를 이렇게 소개한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살아 있는 독일 철학자는 한국인, 한병철이다.”

제목에서 제시된 대로 이 책의 주제는 폭력이다.

철학자가 마음먹고 쓴 어려운 글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씹어가며 차근차근 읽었다.

 

폭력에 관하여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통해 인류의 발전과정을 통해 폭력이 감소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스티븐 핑커의 주장과 완전히 반대되는 주장을 펼친다. 또한 스티븐 핑커만이 아닌 많은 철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주장들에 대한 반론을 제시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이전까지의 폭력을 부정성의 폭력으로 명하고, 폭력의 형태가 이전의 부정성의 폭력에서 긍정성의 폭력으로 변했음을 지적한다.

부정성의 폭력이란 타자에게서 가해져 오는 폭력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육체적, 물리적 힘에 의한 폭력은 당연히 부정적 폭력으로 분류된다.

    

군주와 같은 절대적 주권자가 통치하는 주권사회의 국가적 폭력은 정당한 것이며, 주권자의 권력이 가지는 힘과 정당성을 알리는 소통의 매체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폭력은 정당성을 상실하고 국가의 폭력도 가능한 한 감추어야 할 것이 된다.

 

주권사회는 규율사회로 변모하는데, 그것은 폭력의 내부화로 이해할 수 있다.

규율사회는 복종주체를 낳으며, 복종주체는 훈육을 통해 사회 시스템의 강제를 내면화하게 된다. 그것은 복종주체에게 정신적, 신체적 변형을 가져온다.

폭력적 갈등은 지배 권력의 피지배자에 대한 물리적 가해가 아니라, 피지배자의 내부에 심어진 강제, 내면화된 강제와 그 강제에 저항하는 본래의 자아 사이에서 일어난다.

저자는 폭력이 공적인 장소에서 비-장소 Ab-Ort로 옮겨지고 내부화되는 이러한 위상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근대적인 주권사회와 근대적 규율사회 모두 부정성의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규정한다.

 

삶의 많은 영역에서 파괴적인 초과 성장이 진행되고 있는 현금의 상황은 죽음 본능에 대한 프로이트의 테제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언뜻 보기에 진보와 생명의 기운을 발산하는 듯이 보이는 많은 경향들이, 이를테면 후기근대의 성과사회의 과잉 활동이 이 테제에 의하면 죽음 본능에서 나온 파괴적 충동이며, 그것은 종국에 가서 치명적인 붕괴, 시스템 전체의 소진을 초래할 것이다. -p150 <3. 긍정성의 폭력> 중에서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주장하는 핵심은, 성과사회라고 부르는 오늘의 사회에 이르러서 폭력은 비로소 긍정성의 폭력으로 전화한다는 것이다.

긍정성의 폭력이란 타자에게서 오는 폭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오는 폭력, 자신이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저자는 성과주체가 착취자이자 피착취자이며 가해자이자 피해자라고 말한다.

성과사회는 시스템의 요구를 주체의 내면에 심는 데 그치지 않고, 주체 내부의 의지 자체를 완전히 장악하여 자신의 요구에 자발적으로 따르게 만든다.

시스템이 강제하는 바를 스스로 하고 싶도록 원하게 만드는 데 성과사회의 지배 기술의 본질이 있다. 이 방식은 전혀 폭력적이지도 강제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다만 유혹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긍정성의 폭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유혹이 결국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성과주체는 결국 소진증후군이나 우울증 같은 심리적 질병에 빠짐으로써 시스템의 요구를 자신의 요구로 삼은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성과주체는 최대의 성과를 향한 자유로운 강박에 몸을 내맡긴다. 자기 착취는 자유의 환상을 동반하는 까닭에 타자 착취보다 더 효과적이다. 착취자가 동시에 피착취자다. 여기서 착취는 지배 없이 이루어진다. 자기 착취가 효과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가속화를 위해 타자 착취에서 자기 착취로, ‘해야 한다에서 할 수 있다로 전환한다. 성과주체는 역설적 자유 속에서 가해자이자 희생자이며, 주인이자 노예가 된다. 이때 자유와 폭력은 구별되지 않는다. -p196 <8. 호모 리베르> 중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우리를 망가뜨리라는 시스템의 요구를 충실히 자발적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과사회의 시스템적 폭력은 성과주체의 무의식적 자기파괴 활동 속에서 관철되어간다.

 

이제 남겨진 과제 두 가지.

첫째, 나 스스로 나에게 긍정적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둘째, 이제 긍정적 폭력의 시스템에서 탈출하는 것.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발적 착취 시스템에 갇혀버린 자신을 인식하자.

일단 나의 위치와 상태를 파악했으니 이제 탈출구를 찾자.

저자가 큰 방향을 제시하였으나,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방법은 스스로 슬기롭게 찾아야 하나?

 

#폭력의위상학 #한병철 #부정성의폭력 #긍정성의폭력 #주권사회 #규율사회 #성과사회 #시스템적폭력 #성과주체 #소진증후군 #우울증 #탈출방법은 #피로사회 #김영사 #함께성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