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멀 -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산다는 것
김현기 지음 / 포르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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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4 <휴머니멀(김현기 지음/포르체)>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산다는 것

2020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5부작의 내용을 책에 담았다.

인간에 의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희생당하는 동물들의 비극이 소개된다.

아시아코끼리와 아프리카코끼리, 트로피 헌터에 의해 희생당하는 북미의 동물과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들, 전통이란 이름으로 살육당하는 고래들.

그들의 고통에 힘겨워하면서 비극을 우리에게 전하는 박신혜, 유해진, 류승룡 배우.

그들과 함께 눈물을 훔쳐냈다.

 

이 책에 대한 감정은 미안함이다.

인간에 의해 생명을 빼앗기는 동물에 대한 미안함.

인간의 생명이 동물의 생명보다 우월하다는 내면의 의식에 대한 미안함.

동물의 생명을 거두는 방식의 야만성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그러한 야만성을 멈추는 힘이 내게 없음에 대한 미안함.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분노와 경멸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단순히 장식을 위해, 혹은 그냥 돈을 벌기 위해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동물들을 저렇게 잔인하게 죽인다니. 사람이 두려웠어요. 이 분노를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동물한테 너무 미안해서 자꾸만 눈물이 나왔던 것 같아요.” -배우 박신혜

  

동남아 여행을 가면 필수 옵션으로 들어가는 코끼리 트래킹.

야생동물인 코끼리가 어떻게 사람을 태우게 됐을까?

IQ50~70으로 3~5세 아이 정도인 코끼리를 사육하기 위해 자아와 야생성을 말살시키는 훈련 과정을 파잔(Phajaan)’이라고 한다.

트레이닝 클래스라고 부르는 작은 나무 우리에 가둔 뒤 반항하지 못하도록 꼬리와 귀, 다리 등을 꽁꽁 묶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24시간 내내 때리거나 송곳으로 찌르는 끔찍한 고통을 가한다.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를 그렇게 가둬둔 채 학대를 이어간다.

이 과정을 거친 코끼리들은 순순히 쇠사슬에 다리가 묶인 채 안장을 얹고 사람들을 태우게 된다.

 

아시아 코끼리와 인간의 관계를 학대라는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면, 아프리카 코끼리의 경우는 밀렵이다. 아시아 코끼리에게는 없는 커다란 상아가 있기 때문이다.

건기에는 코끼리들의 동선이 물줄기 주변으로 집중된다. 밀렵꾼들은 물가를 사전 탐색해 자신을 은폐하고 코끼리를 기다린다. 거대한 상아를 가진 수컷을 발견하면 일단 총을 쏴 부상을 입히고 차를 몰아 다른 무리를 잠시 쫓아낸다. 그리고는 총을 맞은 코끼리의 척추부터 전기톱으로 끊는다. 코끼리의 신경을 마비시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코끼리에게 덜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하는 자비 따위는 베풀지 않는다. 코끼리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전기톱으로 코끼리의 머리를 통째로 잘라내버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상아를 조금이라도 길게 뿌리까지 꺼내기 위해서. 능숙한 밀렵꾼들은 불과 반나절이면 이 일을 마치고 사라진다. -p57 <코끼리의 얼굴 없는 죽음> 중에서

    

식용이나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레저와 전시를 목적으로 동물을 사냥하는 행위를 트로피 헌팅(trophy hunting)’이라고 한다.

트로피는 벽에 걸어 놓기 위해 그 동물의 머리를 박제하여 만든 장식품을 가리킨다.

백수의 왕자사자의 이미지에 가장 잘 어울렸던 세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자로 통했던 세실도 트로피 헌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헌터들이 지불하는 비용의 대부분은 그들을 사파리에 데려다준 아웃피터(헌팅업체)의 주머니로 들어갑니다. 또 상당한 액수가 부패한 정부 관료에게 흘러 들어가는 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약간이라도 혜택을 보는 지역 커뮤니티가 있을 수 있지만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죠.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단 한 번도,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려는 모범적인 트로피 헌팅을 본 적이 없습니다.” -p133 영장류 연구가이자 UN 평화대사인 제인 구달

    

일본의 남쪽, 태평양과 맞닿은 작은 어촌 타이지(太地)의 별명은 돌고래 마을이다. 마을 곳곳에 돌고래 벽화와 귀여운 마스코트가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은 연중 포획량이 1,000마리를 훌쩍 넘기는 돌고래들의 지옥이다.

선주들은 자신의 배에 많게는 10여 명의 다이버를 태우고 출항한다. 그러다 이동 중인 돌고래 무리를 만나면, 배들이 연합해 돌고래를 연안으로 몰아간다. 겁을 먹고 도망치던 돌고래들이 협소한 만 안쪽에 갇히면 다이버들이 물속에 들어가 직접 포획에 나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쉬이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잔인한 도륙이 이루어지게 된다.

고래를 집단 살육하는 문화는 일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최소 16세기부터 지금까지 피의 전통을 이어온 또 다른 곳은 북유럽의 보석덴마크령 페로제도(Faeroe Is.).

타이지나 페로제도 사람들 모두 이러한 살육에 대해 하나같이 전승된 문화라서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물을 하나의 생명이 아닌 유희의 도구로 대하고,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태도는 문화로 인정받을 가치를 이미 상실했다는 주장들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 주장들이 더욱 커지기 전까지는 생명에 대한 도륙은 계속될 것이다.

    

지구상에 두 마리밖에 남지 않은 동물이 있다. 바로 북부흰코뿔소.

북부흰코뿔소 6,000마리가 두 마리로 줄어드는 데 걸린 시간은 단 50.

우리에게는 이들을 지켜낼 수백 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 모든 타이밍을 덧없이 흘려보내고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에야, 우리는 간신히 한 번의 연장전을 더 만들어냈다. 대체 왜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온 것일까. -p275

 

지구가 생겨나고 이제껏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지금은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다. 다섯 번의 대멸종마다 당시의 최상위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했는데, 지금의 최상위 포식자는 인류이다. 이것이 규칙이라면 인류는 여섯 번째 대멸종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다.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분노와 슬픔으로 책장을 넘겼다.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 그리고 참혹할 만큼 잔인한 대척점.

우리는 이 거대한 스펙트럼의 어느 부분쯤을 선택할 것이다.

부디 그 선택이 생명의 방향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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