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상경보기 - 절실하게, 진지하게, 통쾌하게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6년 3월
평점 :
2020-21 <비상경보기(강신주 지음/동녘)>
철학이란 단어의 어원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그러다 보니 철학자들은 세상의 복잡한 현실과 동떨어져 진리만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에 저자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원효와 니체, 신채호의 의지를 닮고자 노력하고, 어지러운 세상의 탁한 빛이 제거되기를 꿈꾸는 철학자 강신주 선생의 진짜 구별법.
사이비(似而非)를 의심함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경향신문에 2년 동안 게재한 칼럼을 모아서 만든 책이다.
칼럼이 쓰인 시기가 책이 발간된 2016년 초의 이전 2년이다 보니 보수 정권이 ‘보수’라는 가치에서 어긋나 있던 때였다.
개인적으로 암울하고 답답하던 시절이었다.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닌 듯 철학자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최근 사회지도층들의 후안무치와 안하무인은 그 유래가 오래된 것이다. 그들은 주인의 생각을 충실히 따르면서 개밥을 챙겨왔던 사람들, 타인들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각의 의무와 의지를 저버린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들을 이렇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과거 유신 시절로 상징되는 권위주의적 사회 분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유신 시절을 거쳤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그들처럼 개가 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그렇다.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정당한지 그들은 전혀 반성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 누구 탓도 할 일이 아니다. 생각의 의무와 의지를 저버렸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들 선택이었으니까. 아니, 더 정직히 말해 반성해야만 했을 것을 반성하지 않아서, 생각해야만 했을 것을 생각하지 않아서 그들은 지금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 <개보다 못한 개들의 세상> 중에서
착하다! 자본주의에 개밥에 도토리처럼 치여도 자신이 뽑은 대표자들의 보호도 못 받고 죽는 우리 이웃들이여! 10만 명당 자그마치 29.1명이 죽어 나가고 있다. 29.1명이라니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자. 1년에 1만 5,000명이 자살하는 셈이다. 자살률 11연패에도 이제 심드렁한 것 같다. 대한민국은 2015년 기준 OECD 국가 중 11년 연속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어쩌면 자본가나 보수 정권이 원하는 대로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삶의 척박함을 사회 구조적 문제라기보다는 개인 탓으로 돌려야 한다는 보수주의 논리가 우리 이웃들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으니 말이다. 백 명의 고용이 보장된 사회구조가 열 명의 고용이 보장된 구조로, 혹은 한 명의 고용이 보장된 구조로 바뀌었다. 그런데 자본가와 정부는 어쨌든 열심히 하면 열 명 중의 한 명이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니 취업이 안 되거나 정리해고되거나 명예퇴직 되어도, 그것은 모두 우리가 노력을 하지 않는 탓이다. OECD 국가들 가운데 자살률 1위를 달성한 비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만 탓한다. 그러니 자신만 죽으면 된다. 경쟁에서 진 낙오자니까. 한마디로 자신에게 분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분노를 내면이 아니라, 외면으로 돌리자. 타살을 자살로 왜곡하는 논리에 걸쭉한 침을 뱉자. 그리고 탐욕스러운 자본가나 그를 방조하는 정부에 화끈하게 분노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엿을 먹이자. - <세계 11연패에 도전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중에서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박근혜 정권은 우리 이웃들을 유혹하던 화장을 깨끗이 지우고 마침내 자본 편을 들고 싶었던 자신의 도도한 민낯을 드러냈다.
보수 정권의 행복한 선택, 아니 솔직한 선택은 우리 이웃들에게는 거대한 불행의 서막이 될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커녕 약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칸막이마저 제거할 테니 말이다. 감언이설에 속지 말고, 이제 제발 돌아보라. 지금 박근혜 정권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자유주의’ 정책을 실행하고 있는지를. 더 가증스러운 것은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한다는 미명하에, 마치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주기라도 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정권은 사자와 사슴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철책을 깨끗하게 제거하려는 동물원 당국자와 얼마나 다른가! 이제 야생의 피 냄새가 진동하게 될 동물원 아닌 동물원이 탄생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중에서
친자본주의적 정권들이 지속적으로 집권하자 좁게는 무상급식과 관련된 논쟁, 더 넓게는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경제의 위축, 그리고 취업과 고용의 불안은 항상 정의를 요구하는 논쟁을 낳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성장에 집중하다가 분배라는 사회적 정의의 핵심을 소홀히 했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 누구도 복지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견을 달지 않는다. 더군다나 집권을 노리는 세력들이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복지 정책의 수혜 대상자들이 대다수 유권자들이니 말이다. 사실 핵심은 복지 정책 강화가 선심성 공약일 뿐인지 아니면 현실적 의지인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지금 복지 정책을 실시하자는 입장이라면, 그는 복지에 대한 현실적 의지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그렇지 않고 시기상조를 주장하는 입장이라면, 그에게 복지 정책이란 그저 선심성 구호였을 따름인 것이다. - <사랑, 그건 본능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 중에서
보수 정권의 마무리가 아름답지 못했다. 이후 집권한 진보 정권에 대한 평가는 나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유권자 각자의 의사가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반영되기를 바란다.
부자는 부자를 지지하는 정당,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가짜뉴스에 현혹되거나 부화뇌동하는 선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그 다음 선택의 순간까지 잘 기억하고 있기를 바란다.
선택한 이후 유권자를 배신하는 정당이 있다면 꼭 기억해두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