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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ㅣ 사이언스 클래식 24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8월
평점 :
2019-134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스티븐 핑커 지음/사이언스북스)>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1,406페이지의 거대한 분량의 책.
석 달에 걸쳐서 읽었다.
매일같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사건들. 인면수심의 잔인한 범죄와 테러.
그럼에도 저자는 오늘날이 과거보다 훨씬 안전하고 평화로운 시대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원시시대나 고대, 중세의 모습은 전원생활과 고요한 모습일지 모른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하는, 우리의 상식을 거스르는 수많은 자료와 주장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 책의 제목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설에서 가져온 구절이다. 링컨의 1861년 3월 대통령 취임 연설은 이렇게 맺는다.
우리는 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친구입니다. 우리는 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감정이 격앙되는 일은 있었을망정, 그 때문에 우리의 유대가 깨어져서는 안 됩니다. 신비로운 심금과도 같은 기억은 모든 전쟁터와 애국자의 무덤에서부터 이 드넓은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심장과 가정까지 뻗어 있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들이 다시금 손길을 뻗는다면,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만, 다시 한번 드높게 연방의 찬가를 울릴 것입니다. -p1323
책의 방대한 내용을 제대로 옮길 능력이 부족해서 ‘옮긴이 후기’를 발췌해서 올린다.
사실 이 책의 주제는 인간의 폭력성이다. 다만 그 폭력성이 역사적으로 차츰 줄어들었다는 것이 핑커의 주장이다.
핑커는 (1) 비국가 사회에서 국가 사회로 넘어온 평화화 과정 (2) 사회 규범의 발달에 따른 문명화 과정 (3) 계몽주의가 이끈 인도주의 혁명 (4) 국가 간 교역과 민주화를 통해 전쟁이 감소한 긴 평화의 시기 (5) 집단 살해나 테러와 같은 소규모 충돌도 꾸준히 감소한 새로운 평화의 시기 (6) 시민권, 여성권, 아동권, 동성애자 권리, 동물권 운동이 잇달아 전개된 권리 혁명들의 시기로 그 과정을 나눴다.
각 시기마다 국가 간 전쟁, 부족 간 혈수, 집단 간 충돌, 개인의 살인, 사형과 태형과 같은 잔혹한 처벌, 여자나 아이나 동성애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잔인하게 취급하던 관행 등등 인간이 저지르는 각양각색의 폭력이 크고 작은 모든 차원을 망라하여 일제히 감소세를 기록했음을 보여주는 통계를 100여 개의 그래프, 그림, 표로 제시했다.
그런 행복한 결과는 왜 생겨났을까? 인간 본성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은 아니다. 핑커가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인간 본성에는 끔찍한 폭력을 저지르게 하는 ‘내면의 악마’와 자비로운 행실을 추구하게 하는 ‘선한 천사’가 공존한다.
인류는 사회 경제 환경의 여러 계기를 통해서 ‘악마’보다 ‘천사’를 더 많이 발휘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스스로를 길들여 왔다.
핑커가 지목한 ‘내면의 악마’는 (1) 포식적, 도구적 폭력성 (2) 우세 경쟁 (3) 복수심 (4) 가학성 (5) 이데올로기의 다섯 가지이고,
‘선한 천사’는 (1) 감정 이입 (2) 자기 통제 (3) 도덕성과 터부 (4) 이성의 네 가지이다.
논증의 마지막 단계는 왜 인류가 내면의 악마보다 천사를 더 많이 발휘하게 되었는가 하는 외생적 요인을 밝히는 것이다. 핑커는 그 후보로 (1) 리바이어던(폭력의 정당한 사용을 독점함으로써 정의를 부과하는 국가) (2) 온화한 상업(상호 교환은 상대를 존중하게 만드는데, ‘자본주의 평화’ 이론으로도 불린다. (3) 여성화 (4) 감정 이입의 범위 확장 (5) 이성의 발달이라는 다섯 요인을 꼽았다.
물론 이것은 앞으로 제3차 세계 대전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거나, 잔인한 인종 청소가 자행되지 않을 것이라거나,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줄 것이라거나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인류는 앞으로도 내면의 악마에 휘둘려 얼마든지 폭력을 저지를 것이다. 다만 객관적 증거로 볼 때 까마득한 과거의 수렵 채집 사회, 중세 유럽 사회, 근세 초기 식민지 사회와 같은 과거의 세계보다는 현재의 세계가 상대적으로 더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이런 현상은 요행이 아니라 인류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실시해 온 모종의 행위가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이므로,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잘한’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여 그것을 더 많이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이런 희망적인 이야기를 여태껏 더 많이 듣지 못했는지 궁금해진다. 핑커는 그 이유로 인간의 또 다른 심리적 편향들(가령 가까운 과거를 먼 과거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하는 역사적 근시안)과 국가 간 전쟁이 아닌 소규모 분쟁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심했던 기존 역사학의 맹점(그래서 집단 살해나 테러에 관한 자료는 최근에서야 비로소 수집, 분석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과거를 낭만화하고 현재를 악마화하기 마련이지만, 주관성이 많이 개입되는 ‘내러티브’가 아니라 객관적인 ‘수치’에 기대어 역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그렇게 나쁘게만 볼 이유가 없더라는 것이 핑커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