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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너머의 통일 - 남북한에 전하는 동서독 통일 이야기
이대희.이재호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19년 10월
평점 :

2019-116 <환상 너머의 통일(이대희, 이재호 지음/숨쉬는책공장)> #사회
남북한에 전하는 동서독 통일 이야기
독일: 유럽연합을 이끄는 나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 차범근과 손흥민이 뛰었던 분데리스가 축구. 이히 리베 디히. 그리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통일.
이상이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이 아닐까?
<프레시안>의 기자인 저자들이 직접 독일에 방문하여 2018년 9월에 약 2주간 구 동독 지역을 둘러봤다. 분단 시절의 독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통일의 과정과 통일 이후의 독일,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기록하였다.
다큐멘타리같은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어떤 통일을 이루어내야 하는가?‘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기면서 점점 내가 생각하는 통일이 너무나 피상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독일의 통일을 부러워하며 학생들에게 지도한 내용,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하나로 통일됐다. 갑작스런 통일의 비용을 치르느라 고생한 독일은 엄청난 통일 비용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의 리더 국가로 재탄생하였다.”
거시적인 시각에서나 미시적인 시각에서나 너무나 일방적인 서독 중심의 통일 스토리를 팩트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정확한 정보로 교단에서 독일의 통일을 이야기했던 점에 대한 반성이 크게 밀려왔다.

흔히 한국에서는 동서독 통일을 ’독일 통일‘로 표기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잘못됐다. 독일에서 동서독 통일은 ’재통일(Wiedervereinigung)’로 표기한다. ‘독일 통일’은 프로이센 제국에 의한 1871년의 독일 제국(제2제국) 성립을 뜻한다. -p23 <제1장 세대별 통일 이야기> 중.
유럽내에서 국민국가의 수립이 늦었던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되면서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었다. 그 서독과 동독이 다시 합쳐진, 우리가 알고 있는 통일이 바로 ‘재통일’이다.
서독 위주의 흡수 통일은 특히 구 동독인에게 가혹했다. 작게는 신호등 체계에서부터 크게는 사고방식까지, 구 동독인은 삶의 모든 방법론을 하루아침에 서독식으로 바꿔야 했다. 자본주의적 생활이라는 전혀 새로운 삶의 방식을 그들은 강요당했다. 그들은 이제 서독 사람처럼 자신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경쟁력이 부족한 이는 곧바로 도태됐다. 당이 보장해 주던 주거, 직업 안전망은 사라졌다. 숱한 이가 길바닥에 나앉아 ‘오씨(Ossi, 게으른 동쪽 놈)’가 됐다. 어렵사리 일자리를 지켜 낸 이들은 서쪽에서 건너온 ’베씨(Wessi, 거만한 서독 놈)‘가 바로 어제까지 함께 일했던 ’나태한‘ 이웃인 기존 상상의 자리를 꿰차고, 성과와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달라진 업무 환경에서 버텨야만 했다. - <들어가며> 중.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전에 20년 동안이나 교류를 해왔던 동, 서독 간에도 급작스런 통일의 충격은 매우 컸으며 특히 동독 사람들에겐 기회보다는 재앙의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구 서독인과 구 동독인 간의 갈등은 상상 이상이었으나,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상투적인 문구로 포장되었다. 그저 ’동서독 간의 갈등은 완화되고 있다‘ 정도.

학교에 갔는데 서독 친구들은 동독을 잘 알지 못했어요. 심지어 동독이 무엇인지 들어 본 적이 없는 친구도 있었어요. 동독 출신인 우리에게 재통일은 모든 것이 바뀌는 경험이었지만, 서독 친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달았죠. 서독 친구들은 TV를 통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을 뿐, 이게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아무런 전환점도 아니었어요. 동독 출신과 너무 달랐던 거죠. 이렇다 보니 서독 친구들이 저의 말을 이해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학교 내에서 소외감도 들었어요. -p61. 10~20대에 베를린 장벽 붕괴와 재통일을 겪은 이른바 동독의 ’제3세대‘가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대변하는 ’세제곱관점‘이라는 사회문화단체의 창입 멤버 유디트 앤더스(1976년생) 인터뷰 중
오스탈기(독일어: Ostalgie)는 과거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 시절에 대한 향수(鄕愁)를 뜻하는 용어이다. 독일어로 "동쪽"을 뜻하는 단어인 '오스트(Ost)'와 "향수(鄕愁)"를 뜻하는 단어인 '노스탈기(Nostalgie)'의 합성어이다.
이 용어는 종종 동유럽의 옛 공산주의 국가의 사회주의 체제하의 생활에 대한 향수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훗날 연구를 통해 밝혀졌듯, 분단 당시 동독은 가족 간 결속, 친족 간 결속력이 유럽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다. 이탈리아보다 가족 간 친밀도가 높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서구‘ 이미지보다 오히려 우리의 문화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동독은 개인주의가 안착한 서독과 전혀 다른 문화의 나라였다. 재통일로 인한 경제력 붕괴는 동독의 가족 해체로 이어졌다. 기존 가치관이 붕괴한 자리를 마약과 같은 어두운 가치가 파고들었다. 오랜 기간 구 동독인의 열패감을 반엉한 단어로 거론된 오스탈기 현상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p107 <제2장 통일은 여전히 진행 중> 중.
통독 이후의 사회적 갈등과 동독 지역의 공동체 붕괴는 서독 위주의 흡수 통일이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통일을 준비할 때 주의할 점들이 구체적으로 지적된다. 우리의 상황에서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
독재 정권은 필연적으로 경찰국가 체제를 완성한다. 공권력이 시민을 위협함으로써 독재 체제는 민주주의의 적이 된다. 민주화 전 한국이 그랬다. 현재 북한도 그렇다. 과거 동독이 그랬다.
슈타지가 동독 일당 독재 체제를 떠받쳤다. ’당의 방패와 검‘이라는 구호로 1950년 2월 출범한 방첩기관 슈타지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직후인 1989년 12월 14일 해체되기 전까지 동독 인민 1,450여만 명을 철저히 감시했다. 1950년 2,700여 명이었던 슈타지 공식 요원은 1989년 8만 8,897명까지 늘었다. -p130 <제2장 통일은 여전히 진행 중> 중.
북한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요. 통일 여건이 조성되면 남한에 기대하는 게 클 텐데, 그건 절대로 충족되지 않아요. 이게 충족되지 않음을 알게 되면, 크게 상처받을 수 있어요.
남한의 젊은 세대도 제가 보기엔 통일의 변수가 될 것 같아요. 그들은 분단과 직접적 상관이 없잖아요? 그런데 통일 상황이 조성되면, 그들은 그 모든 변화가 자신의 부담이라고 생각하게 될 거예요. 북한에서 온 사람을 향한 반발심이 강하게 일어날 수 있겠죠. 좋은 통일을 이루려면 그들을 잘 달래야 해요.
통일 이후 대도시와 소도시의 격차, 빈부 격차로 인한 문제에도 주의해야 해요. 남한에서 대도시와 소도시 사람 간의 삶의 질이 차이가 나지 않아요? 그런데 통일이 되면 북쪽 사람이 많이 내려올 거 아니예요. 그러면 원래 가진 것 없던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을 더 미워하게 될 거 예요.
이런 일을 우리가 다 경험했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을‘들의 싸움, 즉 약자가 다른 약자를 혐오하는 사회 현상이 일어났어요. 아마 남북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p142. 구 동독 독재 정부와의 싸움을 해왔던 카를 하인츠 리히터 씨(1946년생)의 인터뷰 중
통일을 명분으로 주장하는 세대는 이제 물러가고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새로운 세대에게 통일은 어떤 의미인가? 그들은 통일의 책임을 감당할 것인가?
20세기의 과제를 21세기에는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가?
그에 대한 모범답안은 아니지만 충분히 도움이 되는 훌륭한 가이드가 되는 책이다.
독일 사회에서 서독출신의 엘리트 계층 독점 현상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베를린사회과학연구소가 2012년 발표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독일 엘리트층의 95%가 서독 출신이며, 동독 출신은 2.8%에 불과하다. 이 같은 현상은 시간이 더 지나야, 즉 독일 재통일 후 태어난 젊은 세대가 사회에 진입하고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야만 완화될 것이다. -p147 <제2장 통일은 여전히 진행 중> 중.
필자들은 나름의 동독 공부를 마친 상태임을 자부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망상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결정적인 대목이 통일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대부분 동독 사람은 통일이 아니라 평화로운 혁명을 원했다”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독일 재통일은 갑자기 일어나 버린 사건에 가까웠다. 당초 통일은 서독이 주도한 프로젝트였고, 이 계획이 우연한 사건들과 맞물려 실제로 일어난 이벤트였다. 통일 과정에 동독이 주도적으로 기여한 바가 없었다. -p185 <제3장 미래> 중.
한국이 과연 통일을 원하는가. 특히 한국의 젊은 세대는 통일에 부정적이다. 냉전적 사고에 기반한 보수 교회와 보수 언론, 보수 정권과 분단에 아무 책임이 없는 젊은 세대의 사고가 일치하는 지점이 이곳이다. ’통일‘을 정언 명령처럼 받아들인 기성세대가 발 디딘 과거와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이 상황에서 통일 준비가 얼마나 강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지는 미지수다. 동서 독일과 달리 군사적 긴장 구조가 일상화된 한반도에서 민간 여론이 대북 적대감을 극복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p189 <제3장 미래> 중.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