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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책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2019-115 <꿈의 책(니나 게오르게 지음/쌤앤파커스)>
도톰한 두께의 소설책 한 권.
표지에는 바다에서 살짝 날아오르는 듯한 남자의 검은 뒷모습.
니나 게오르게. 생소한 이름의 작가.
그리고 ‘1일’로 시작하는 첫 장.
그 전 페이지를 다시 열어본다.
‘아마 우리 모두는 지금 읽히는 이야기들일지 모른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사건의 시작.
죽음을 모르는 사나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나이 헨리.
그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아들 샘.
헨리를 사랑했던 그리고 사랑하는 에디.
세 명의 46일의 기록.

사고(事故) [사ː고] [명사] 1.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 2. 사람에게 해를 입혔거나 말썽을 일으킨 나쁜 짓. 3. 어떤 일이 일어난 까닭.
주인공 헨리에게 벌어진 그 ‘사고’로 모두의 인생이 변한다.
인간의 계획과 기대의 무력함.
인생의 가장 빛나던 순간과 가장 암울한 순간이 교차하는 아이러니.
우리의 세계와 저 너머의 세계 그리고 헨리가 머무르는 세계.
헨리를 부르는 샘과 에디의 목소리 그리고 아버지의 목소리.
헨리는 자신이 살았을 인생들을 기억해내고 선택했던 인생을 돌아본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아빠의 종군기자 활동을 모두 살펴본 아들 샘.
아빠와 함께 소년의 사랑이 되어버린 매디.
46일 동안 그들은 한마디 말도 나누지 못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한다.
손가락을 누를 수는 없어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지만 서로의 선택을 존중해준다.
소설을 읽으며 항상 하게 되는 상상.
내가 ‘그’라면?
내가 헨리라면? 샘이라면? 에디라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한순간 한순간이 내 인생을 완성해준다.
내 인생은 나와 그의 교차로 구성된다.
재미와 흥미가 아니라 나의 의식과 감정과 선택을 읽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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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사울이 종이 한 장을 꺼내 동그라미를 여러 개 그린다.
그는 ‘깨어 있음’을 나타내는 한가운데 지점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그 점을 중심으로 안에서 바깥쪽으로 원들이 포진해 있다. 혼미, 잠과 꿈, 의식 불명, 코마 – 그리고 죽음. 먼저 닥터 사울은 의식 불명을 나타내는 부위에 십자 표시를 한다. - “스키너 씨는 여기에 있어요.” - 그에 이어 죽음의 영역에 십자 표시를 한다. - “그리고 여기에도 있어요.” 닥터 사울은 마지막으로 ‘코마’에 십자 표시를 한다. 나는 그것이 가장자리에 너무 바짝 붙어 있다고 느낀다. 죽음에 너무 지나치게 바짝 붙어 있다. 정확히 죽음의 한 귀퉁이에 있다.
“저건 장소들이에요. 상태들이 아니라.” 샘이 속삭인다. -p97 에디
그날 나는 샘을 드디어 완전히 이해하기 시작한다. 내 아들은 감각 수용체를 다른 사람들보다 몇 개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인상들이 샘을 덮친다. 샘은 공감각을 소유하고 있다. 나는 마리프랑스에게 가능한 한 침착하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재능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샘은 많은 용기와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세상의 ‘더 많은 것’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p178 헨리
나는 눈을 감고 새로이 정신을 집중한다.
용기.
애정.
샘처럼 되기.
듣기. 보기. 감지하기. 빌어먹을, 의심하지 않기!
의심하지 않기는 어렵다.
의식 불명 31일.
전신 마취 15일, 그런 다음 임상사(臨床死). 한없이 길었던 8분. 그런 다음 코마 16일.
흐르는 시간은 헨리를 희망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떼어 내어, 내가 증오하게 된 통계 가까이 데려간다. 코마 상태에 오래 있을수록 그 사람이 예전의 모습과 비슷해질 가능성은 더 적어진다. -p225 에디
“왜?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니?” 엄마가 기운 없이 묻는다.
“셋은 한 가족이니까요.” 나는 솔직하게 대답한다. “엄마, 맬컴, 스티브. 셋은 한 가족이잖아요.”
엄마가 눈물을 쏟는다. 엄마는 손으로 입을 가린다.
“네가 그렇게 느끼는지 몰랐구나.” 엄마는 말한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린다. 이리 오렴! 엄마의 빈 품 안이 간청한다. 그리고 거기, 아주 조심스럽게, 우리 둘은 서 있다. 나는 엄마를, 엄마는 나를 팔로 안는다. 내가 언제 그렇게 컸는지 알아채지 못했지만, 이제 나는 엄마와 키가 비슷하다.
그렇게 우리 둘은 거기 서 있다. 이제는 모든 게 이전과 다를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은 어떤 순간이건 결정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 어느 것도 그냥 단순히 ‘일어나지’ 않는다.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거짓말을 할 것인지. 진실을 말할 것인지. 비열한 인간일지. 또는 아닐지.
내 변성기는 지나갔다. 나는 내 말소리가 내 안에서 울리는 걸 느낀다. 깊숙이. 조용히.
그리고 내 말소리는 초록색이다.
짙은 초록색. -p374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