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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았다, 그치 - 사랑이 끝난 후 비로소 시작된 이야기
이지은 지음, 이이영 그림 / 시드앤피드 / 2019년 8월
평점 :
2019-100 <참 좋았다, 그-치(이지은 지음/시드앤피드)>
사랑이 끝난 후 비로소 시작된 이야기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다닌 나는 학력고사가 끝난 후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그동안 못보았던 만화책을 빌펴보곤 했다.
가끔 여학생친구들이 놀러오면 순정만화를 빌려보곤 했는데 ‘돈 주고 빌려보기에 아깝다....’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 배운 점은 ‘여자들에겐 남자들과는 다른 감정선이 있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50이 넘어서 보게 된 이 책은 마치 더벅머리 고3학생이 순정만화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고3때의 나는 앞으로 올지도 모른 연애를 꿈꿔보았다면, 50이 넘은 아저씨인 나는 지난 사랑의 추억이 살짝 떠올랐다는 것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실연의 기억이고, 과거의 아픈 기억이고, 이제는 허허하고 넘어가던 기억이다.
사랑의 끝은 이별인가 아니면 잊혀짐인가?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을 절절히 그려낸 작자의 이야기.
후회와 상처와 미련이 남는 사랑이지만, 인간을 성장시키기도 하는 게 또 사랑인 것 같다.
한 해 한 해 나이테를 그리는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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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그 강을 건널 용기가 더는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이렇게 헤어질 줄 알았더라면
어제는 사랑을 말할걸 그랬다.
바쁘고 피로한 일상에, 어차피 차가울 마음에,
더 지칠 기운이 없어 오늘로 미뤘던 건데.
사랑이어도 괜찮았던 어제,
한 번만 더
사랑을 말할걸 그랬다.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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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직하고 살아낼 용기도 없으면서, 잊고 싶지도 않았다. 하루는 잊게 해달라 빌고, 다음 날에는 기억들이 희미해질까 곱씹었다.
신조차 도와줄 수 없는 변덕,
이별을 앓았다.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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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그렇게 사랑했고
너는 그 사랑을 잃었다.
그것이 네가 받은 충분한 벌이다.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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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 믿었던 지난 시간들을
지킬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지란, 이별뿐이었는데
여지가 없던 선택의 끝에는
나를 미워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너를 그만 미워하게 된 대가로.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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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믿고 있어.
지난간 시간들, 그때 그 순간만큼은
너도 사랑이었다고.
둘이서 즐겁게 술잔을 기울였던 밤,
‘우리’를 기억하자고 적어놓았던 문장이
너와의 모든 시간을 회고할 문장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참 좋았다, 그치.’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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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게 사라진 도시
잠겨버린 섬이다.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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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고 나서 쉼 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이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적어도 누군가를 마주하고 있을 때만큼은 상실감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이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이였는지, 그에게 어떤 이야기를 어디까지 했었는지 헷갈리기 시작할 무렵,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빠지려고 바둥거리고 있다는 것을. 나를 지켜내기는커녕 아무 데나 내팽개치고 있었다.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목적지를 잊은 것이었다. 외로움을 상쇄시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외로워도 좋으니 사랑이 하고 싶었던 건데.
어리석은 날들이 잔뜩 쌓였다.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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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어지럽히는 일 앞에 조금 더 담대해지기를
무너질 것 같은 바람 앞에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하루 어린 내가, 하루 더 어른이 될 나에게 바랍니다.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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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것은
내가 살아 있는 한 무한한 현재진행형이어서
어떤 영광을 얻더라도 그 뒤에 남은 것은
그 영광을 손에 쥐기 전과 마찬가지 였다.
‘그래서 이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사랑도 같지 않을까.
누군가를 향했던 사랑의 한 계절은 끝이 났어도
내 삶이 진행형인 동안만큼은
사랑, 그 본질적인 것에
매듭이 지어질 리 없다.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를 잃었을 뿐
사랑을 잃은 것이 아니다.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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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건
아이처럼 시작하되
어른의 마음으로 지켜내야 하는 것.
둘 중의 하나가 아니라 함께 행복해져야 하는 것,
때로는 혼자일 줄도 알아야 하는 것,
이별도 사랑의 종착역 중 하나로 받아들일 줄 아는 것.
또 다시 울게 되더라도 그뿐
다시 사랑하는 일에는 겁낼 이유가 하나도 없단 것. -p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