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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 털보 과학관장이 들려주는 세상물정의 과학 ㅣ 저도 어렵습니다만 1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8년 1월
평점 :
2019-063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이정모 지음/바틀비)>
털보 과학관장이 들려주는 세상물정의 과학
중학교부터였는지 고등학교부터였는지 과학은 나에게 다른 나라이야기였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과학자들이 뚝딱뚝딱 기술을 발휘해서 만들어내면 나는 감사하게 사용해야지 하면서 살아왔다. 과학 무지랭이인 내게 친구가 추천해준 책이 바로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인 저자의 재미있는 과학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생활과 현실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거창한 과학 이론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과학이야기들이다. 친구의 안목에 감사를 보낸다. 과학의 ‘ㄱ’도 모르는 나도 읽을 수 있는 과학책.
심지어 재미까지 있다.
미소가 지어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얼핏 기억에서 가물거리는 내용들이 있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아물거리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왜 이렇게 배우지 못했을까? 아니면 왜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현실에 적용시켜보지 못했을까? 이래저래 과학에 대해 오랜만에 생각해보는 흥미로운 시간들이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흐려놓는다.’는 속담. 미꾸라지가 더러운 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미꾸라지도 깨끗한 물을 좋아한다. 더러운 물에서도 살아주는 것이다. 미꾸라지가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으면 웅덩이 바닥은 아예 썩어서 곧 아무것도 살지 못하게 된다. 미꾸라지가 흙탕물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나마 웅덩이에서 무언가가 살 수 있다.
높은 산에만 올라가면 방귀가 잦아지는 이유가 있다. 높이 올라갈수록 기압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기압이 낮아지는 현상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질소로 충전된 과자 봉지를 높은 산에 가져가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봉지 내부에 있는 질소 분자 수는 일정하지만 외부 기압이 낮아져서 바깥으로 미는 힘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부풀어 오르는 것은 과자 봉지만이 아니다. 우리의 대장(大腸)도 그렇게 된다. 대기압이 평지보다 낮기 때문에 대장에서 같은 개수의 가스 분자가 발생하더라도 그 부피는 휠씬 커진다. 대장이 보관할 수 있는 기체의 양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자주 방귀가 나오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원자가 빛을 내는 것이나 세상에서 가장 큰 별이 빛을 내는 것이나 원리는 똑같다. 에너지를 버릴 때 빛난다. 자기의 것을 버리고 작아질 때 빛난다. 빛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이 말은 버리고 작아지는 것들이 아름답다는 말과 같다. 더 낮아지고 더 많이 버리시길.
매일 정신 사나운 기사가 쏟아져서 그렇지 요즘 우리 마음에는 희망이 가득하다. 작년(2017년) 10월만 해도 우리 사회에 새로운 희망이 움틀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는가? 우리는 지금 사회의 환부에 항생제를 투약하고 있다. 증상이 사라졌다고 해서 투약을 중단하면 금방 망한다. 뿌리를 뽑을 때까지 항생제를 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내성균이 생기지 않는다. 끝까지 악랄하게 먹자.
천동설주의자들은 가족, 직장, 공동체, 그리고 나라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자기 일정과 맞지 않으면 그 어떤 모임도 열려서는 안 된다. 권력과 이익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갖든지 내가 나눠줘야 한다.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 사람은 제거한다. 그래야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천동설주의자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우리나라의 첫 여성 대통령)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만들어준 이미지에 속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논어』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믿음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남을 해롭게 한다.”
천동설은 비록 틀렸지만 아주 좋은 과학이다. 하지만 천동설주의자는 사회의 폐단일 뿐이다.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인 아툴 가완디는 나이 들어 병드는 과정에 적어도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다. 이때 우리는 두려움과 희망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판단해야 한다. 끝까지 질병과 승산 없는 싸움을 벌이며 연명치료에 매달리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생명 있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을지 알게 된다. 그것은 삶에 대한 희망이다.
“과학자에게는 자유로운 과학 연구를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적극 나설 의무가 있습니다. (…) 과학자는 (…) 어렵게 얻은 정치적, 경제적 신념을 똑똑히 밝힐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에이브러햄 링컨 탄생 130주년에 한 말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동물 가운데 유년기가 가장 길다. 부모는 자식들을 오랫동안 돌봐야 하며 자식들은 성장하기 전까지 한참을 놀았다. 이에 반해, 네안데르탈인은 가능한 한 빨리 자라서 연장자의 자리를 채워야 했다. 그들은 유년기가 훨씬 짧았다. 유년기는 놀면서 배우고 사회성과 창의력을 개발하는 시기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21세기의 현대인은 성인으로 독립하기까지 지난 세기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년기는 극히 짧아지고 있다. 놀면서 스스로 터득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인류세가 언제 시작되든 우리 인류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목격하고 있다. 지난 다섯 번의 대멸종과 견주어보자. 대기 산성도는 오히려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산소 농도도 21퍼센트로 일정하다. 문제는 기온이다. 현재 지구 온도는 이미 산업혁명 이전보다 1도 정도 올라간 상태다. 5~6도까지는 아직 먼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기온은 2도까지는 완만하게 오르지만 2도에 도달하면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기온 상승을 2도에서 막지 못하면 여섯 번째 대멸종은 금방 오고 말 것이다. 대멸종이 500년 뒤일지 1만 년 뒤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몇 퍼센트의 생명이 사라질지도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지난 다섯 번의 대멸종을 돌이켜보면 최고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지금 인류세의 최고 포식자는 누구인가? 우리 인류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인간을 지루하고 힘든 노동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다.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들이 1년 내내 24시간 쉬지 않고 일할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노동조합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렇다면 자본가들의 세상이 될까. 천만에. 이대로 가면 자본주의는 붕괴한다. 구매력이 없는 시장이 자본주의에 어떤 득이 되겠는가. 진지하게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을 고민할 때다. 재원확보 방안이나 직업윤리를 따질 때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붕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아직까지는 기본소득이 자본주의를 구원할 유일한 수단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