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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ㅣ 돈의 역사 1
홍춘욱 지음 / 로크미디어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2019-059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홍춘욱 지음/로크미디어)>
The History of Money
책 제목이 상당히 도발적이다. ‘돈의 역사’
그러나 이 책은 돈을 버는 방법이 아니라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애널리스트인 홍춘욱 박사가 인류사에 큰 사건들을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금융의 역할을 설명한 책이다.
책 제목의 ‘돈’은 ‘금융’이었다. 돈의 흐름과 역할이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한 책이다.
경제학 교과서에만 등장하는 지루한 경제 이론들이 살아 움직이며 세계사의 큰 사건마다 영향을 끼친 내용들이 설명된다.
세계사 시간에 연표로만 공부하던 분절된 사건들이 아니라 돈의 흐름에 따라 역사의 물꼬가 역동적으로 바뀌는 장면들을 저자의 깔끔한 문체로 설명된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친 영국의 해군의 배경에는 영국의 낮은 국채금리가 중요한 요인이었던 점을 공부했다. 아무래도 돈이 많은 나라가 전쟁에 유리하겠지만 이 과정들을 경제학적으로 꼼꼼하게 증명해내는 저자의 논리에 감탄을 했다.
유럽의 작은 국가에 불과한 네덜란드가 금융업을 발전시켜 당대의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로 경영하던 스페인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배경 역시 금융업의 발달이었다.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가 탄생한다.
또한 암스테르담 은행을 설립하게 되는데, 나라가 세운 은행의 존재는 상거래의 편리함을 극도로 높였다. 자신의 계좌가 ‘망하지 않는’ 국책 은행에 있고, 이를 이용해 자유롭게 상거래를 하고, 다양한 통화를 믿을 수 있는 조건에 환전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경쟁 국가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제공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세계사 전체의 최고 노다지인 아메리카대륙을 차지한 스페인은 아메리카에서 유입된 금과 은으로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에 빠진다. 이에 대한 대처가 불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가 중앙은행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최강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호전적인 외교정책도 원인이었지만 용병을 고용하여 치르는 전쟁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았다.
‘영원한 도전자’이자 ‘영원한 2인자’인 프랑스는 열 차례 이상이나 채무 불이행을 해서 신용도가 바닥이었다. 그러다보니 채무이자율이 올라가게 되었고, 부채를 메우기 위해 세금을 더 거두게 되고, 특권 계급은 세금을 내지 않고 제3신분의 민중들만 세금을 부담하게 되고, 이것이 대혁명의 주요 원인이 된다.
프랑스정부도 영란은행처럼 정부에게 돈을 빌려주는 중앙은행을 설립하고자 했으나 스코틀랜드 출신 사기꾼, 존 로에게 당하게 된다. ‘미시시피 회사’를 통해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하고 ‘주식 작전’을 펴고 그 결과는 정부에 대한 불신의 고조와 국민들의 경제적 손실만 남게 된다.
중국 명나라 만력제 집권 초기에 명재상 장거정이 단행한 일조편법이란 게 있다. 장거정이 추진한 이 개혁의 핵심은 각종 세금을 토지세 하나로 단순화하는 한편, 세금을 모두 은으로 받는 것이었다.
중국이 일조편법이라는 역사적인 개혁을 단행한 후 ‘은화 부족’ 사태를 겪고 있을 때, 스페인이 멕시코와 페루에서 노다지를 발견하고 중국과 교역을 하게 된다.
일조편법 시행과 연이은 ‘귀금속 공급 확대’ 덕분에 명나라 때까지는 서양보다 잘 살았다.
16세기까지만 해도 부강했던 명나라가 17세기 접어들어 청나라에게 힘없이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이자성 등이 주도한 농민 반란이라고 봐야 한다. 극심한 가뭄 등 기상 이변에 대응할 만한 재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역참제마저 붕괴되면서 명나라는 무너지게 된다.
노동력이 비싸고 자본이 싼 곳에서는 기계를 사용하는 게 이익인데, 영국이 이에 해당되었고 산업혁명으로 이러지게 된다. 19세기 초 중국과 일본은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근면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근면혁명은 값싼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해 경제의 외형을 키우는 전략이다.
18세기 초반까지 세계의 양대 강국은 영국과 중국.
중국의 가장 강력한 장점은 무한에 가까운 인력이었다. 중국은 쌀농사 덕분에 4억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인구를 가지고 있었고, 1인당 소득이 서양에 비해 낮을지는 몰라도 워낙 인구가 많아 거대한 시장과 군대를 가질 수 있었다. 반면, 영국은 중국에 비해 인구는 훨씬 적었지만 1인당 생산성이 매우 높았고 특히 해군이 무척 강했다. 물론 먼 중국까지 군대를 파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인도와 싱가포르 등 중국으로 가는 중간 기착지에 식량과 보급 물품을 충분히 쌓아둘 수 있었다. 영국은 무역 희망을 거부당하자 아편 전쟁으로 맞서서 정치가와 기업들의 목표를 대부분 달성하였다.
19세기 초반,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데다, 중국과의 교역에서 발생하던 무역역조를 ‘아편 판매’로 해결함으로써 산업혁명을 추진할 자본력까지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경제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공황’. 1929년 뉴욕 연방은행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이 주식시장의 붕괴를 유발하였다. ‘금본위제’의 근본적인 한계와 더불어 주식시장의 호황에 편승한 레버리지 투자(빚을 내서 투자 자금을 불려 나가는 일)도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또한 정부의 청산주의적 태도 역시 핵심 원인이 되었다.
대공황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바로 통화 공급의 급격한 감소였다.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금과 달러의 교환을 정지함으로써 새로운 금융질서를 수립한다.
금본위제의 족쇄에서 풀려난 중앙은행은 예전보다 훨씬 더 과감하게 정책을 취할 여력이 생겼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으로 경기순환이 점점 길어지고 안정적으로 변했다.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이 급락하고 ‘엔고 불황’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일본중앙은행은 정책 금리를 2.5%까지 인하했지만, 자산시장의 버블을 유발하고 말았다.
이후 공격적인 금리 인상과 공급 과잉의 영향으로 1990년부터 일본 자산 시장이 무너졌다. 특히 자산 가격 붕괴가 심화된 1991년부터는 경제성장률마저 떨어지는 등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1945년 이후 독립한 국가들 중 1인당 국민소득 ‘1만 4천 달러의 장벽’을 돌파한 나라는 (일부 산유국과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와 타이완 두 나라에 불과하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재정수지가 대부분 흑자를 기록했다. 재정수지 흑자는 정부가 세금으로 걷은 것을 다 쓰지 않는다는 뜻이니, 일종의 긴축적인 재정정책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만성적인 경상수지 흑자에서 확인되듯, 가계 저축이 과다하고 기업 투자가 부진한 상황에서 정부마저 긴축적인 재정정책을 펼치는 게 타당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1부로부터 얻은 교훈
금리가 높은 나라는 투자처로 적합하지 않을 때가 많다
2부로부터 얻은 교훈
화폐 공급이 줄 때 경기가 나빠진다!
3부로부터 얻은 교훈
생산성 증가가 빠른 혁신 국가에 투자하라!
4부로부터 얻은 교훈
불황이 시작될 때에는 단호하게 행동하라!
5부로부터 얻은 교훈
중앙은행에 맞서지 마라!
6부로부터 얻은 교훈
버블이 붕괴될 때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돈을 풀어야 한다!
7부로부터 얻은 교훈
건전 재정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