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기본소득 - 자유로운 사회, 합리적인 경제를 향한 거대한 전환
필리프 판 파레이스.야니크 판데르보흐트 지음, 홍기빈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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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7 <21세기 기본소득(필리프 판 파레이스·야니크 판데르보호트 지음/흐름출판)>

자유로운 사회, 합리적인 경제를 향한 거대한 전환

 

기본소득이란 한 사회의 모든 성원 개개인들에게 다른 소득 원천이 있든 없든 아무 조건도 내걸지 않고 현금의 형태로 정규적으로 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벨기에 출신의 정치철학자인 저자는 기본소득의 주창자이자 기본소득 유럽네트워크의 창립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현재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국제자문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기본소득은 일, 노동, 여가, 소득, 가족, 사회, 국가 등등에 대해서 지난 몇 천 년간 인류가 생각하고 믿어왔던 거의 모든 윤리적·과학적 통념에 기본적으로 모순된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말과 글에 오르내리고 있다. 우리가 격고 있는 극심한 불평등과 급격한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말이다.

 

기본소득 개념에서 기본 전제가 되는 것 중 하나는 현금 지급이다. 즉 기본소득은 식료품, 주거, 의복, 여타 소비재의 형태로 지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금을 줄 경우 무책임하게 써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걱정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다.

그러나 지급결제가 대부분 전산망으로 이루어지는 오늘날, 식료품과 주거를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분배하기보다 현금을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쪽이 훨씬 수월하며 공공기관의 업무 부담도 크게 줄일 수 있다.

현금을 지급하게 되면 여러 후견주의적 압력, 모든 유형의 로비, 자원을 잘못 배분하여 벌어지는 낭비 등도 줄어든다. 더 나아가, 식료품이 아니라 현금을 분배하면 이 돈이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의 구매력을 창출해 지역 경제를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된다.

 

조건부 형태의 최저소득 제도가 대부분 그렇듯 기본소득 또한 현금으로 지급된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엄격히 개인에게 해당된다는 의미로 무조건적이라는 점에서 여타의 최저소득 제도와 차이가 난다. ‘엄격히 개인에게 해당된다는 말은 두 가지 뜻을 갖는데, 이 둘은 논리적으로 서로 독립적인 것이다. 첫째는 각 개개인에게 지급 된다는 뜻이고, 둘째는 지급되는 액수가 그 개인의 가정경제 상황과 무관하다는 뜻이다.

 

기본소득은 재산 조사가 필요 없다는 의미에서 보편적이다. 부자들도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이 수급권이 있다.

기본소득은 아무 의무도 부과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또 노동할 의사가 있는지 조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서 무조건적이다.

이러한 두 가지 무조건성이 결합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전자는 사람들을 실업의 함정에서 건져내며, 후자는 고용의 함정에서 건져낸다. 전자는 여러 가능성을 만들어주며, 후자는 여러 의무를 덜어줌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전자가 없이 후자만 있다면 이는 배제를 조장할 위험이 아주 크다. 반대로 후자가 없이 전자만 있다면 이는 착취를 조장할 위험이 아주 크다. 따라서 이 두 가지 특징을 함께 작동시킬 때 비로소 기본소득은 최고의 자유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아무 의무도 부과되지 않는 것이기에, 사람들이 일자리를 받아들이는 기준이 돈보다 그 일자리가 충분히 매력적인가의 여부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 설령 임금이 아주 낮더라도 그 일 자체가 매력이 있거나 유용한 훈련의 기회가 되거나 좋은 네트워크를 갖게 되거나 승진 전망이 밝거나 하는 조건이 충족되면 쉽게 그 일자리를 수락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경제는 정신의 건전성도 되찾아야만 한다. 건전한 정신의 경제는 사람들이 병들지 않도록 경제를 조직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일반화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아낼 것을 요구한다.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바로 그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기본소득은 주당 노동시간이나 직장생활에 더 많은 제약을 강제하여 노동자들을 비자발적인 여가로 몰아넣지 않는다. 그 대신 여가시간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여가를 선택할 수 있게 해준다. 이를 통해 일을 덜 하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늘려서 그 빈 일자리가 더 많이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여러 나라의 다양한 공공부조의 목적은 노동, 저축, 사회보험 등에서 얻는 소득이 충분하지 못한 가정에 조건부로 최저소득을 보장-빈곤선 이하의 수준으로 지급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함으로써 안전망을 창출해주는 것으로, 모두 동일하다.

공공부조는 빈곤에 처한 이들에게 최종적인 안전망으로 작동하지만, 여기에는 재산조사가 뒤따르며, 노동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는 일할 의사를 요건으로 내건다. 또한 개인이 아닌 가정 전체의 수준에서 작동하는 성격을 갖는다. 사회보험 시스템이 잘 발달해 인구 대다수를 포괄할 수 있게 된 나라들에서는 이러한 최저소득 제도들이 비교적 주변적 역할로 머물게 된다.

 

기본소득에 대한 반대 논리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첫 번째는 완벽주의버전으로 그 근간의 원칙은 노동이란 좋은 삶의 일부이며 따라서 일정한 노동을 요구하지 않고 소득을 주는 것은 게으름이란 악덕에 상을 주는 일이 된다는 논리다. 두 번째는 자유주의버전으로, 그 근간의 원칙은 미덕이 아니라 공정성을 문제 삼는다.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널리 받아들여지는 정의의 관념에 반하는 것으로서, 노동 능력이 있는 이들이 남들의 노동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아무 의무도 부과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현금 결합을 약화시키고, 노동력을 탈상품화하고, 사회적으로 유용하지만 돈으로 지불받지 못하는 여러 활동들을 활성화하고, 파괴적인 세계화와 강요된 이동성에 맞서서 우리의 삶을 지키고, 시장의 횡포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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