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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 기시미 이치로의 사랑과 망설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2019-026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기시미 이치로 지음/책읽는수요일)>
기시미 이치로의 사랑과 망설임의 철학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가 말하는 사랑과 연애와 결혼의 진실은 바로 “사랑이란 서로 도와 행복해지는 것!”
우리 인생의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해야 마땅한 사랑에 대한 잔잔하고 진실되지만 묵직한 이야기.
우리의 사랑과 연애는 우리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회피하거나 무시했던 사랑하는 관계에 대해 우리의 결심을 요구한다.
연애와 사랑은 결코 진부한 스토리가 아니다. 우리가 진부한 관계를 맺을 뿐이다. 우리의 노력으로 항상 피어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음을 배웠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길 원합니다. 사랑으로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사랑할지보다 어떻게 사랑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나는 사랑은 ‘기술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감정은 연애의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연애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만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여기서 용기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용기를 말합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머물러야 비로소 살아갈 기쁨도 행복도 느낄 수 있습니다.
“사귀고 싶은데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어요.” 과거의 경험에 원인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도, 만남이 없다는 사람도 모두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가정의 세계에서 살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은 ‘능력’의 문제이고 나아가서는 ‘기술’이라고 에리히 프롬은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술이라면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고 ‘쌓아올리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일 때문에 지금 자신이 사랑받지 않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자신이 그렇게 의심으로 똘똘 뭉쳐 있기 때문에 과거의 이런 경험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즉 만약 이 사람이 지금 더 이상 의심이나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되면, 이 회상은 까맣게 잊힐 것입니다.
사랑받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상대를 지치게 하지 마십시오.
상대를 몰아붙이지 마십시오.
공격하지 마십시오.
모두가 굴절된 인정 욕구에 불과합니다.
“만약 어떤 여성이 꽃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녀가 꽃에 물 주기를 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우리는 꽃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대상의 생명과 성장을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일이다. 적극적인 배려가 없는 곳에 사랑은 없다.” -프롬, <사랑한다는 것>에서
명심하세요. 연애가 한쪽 끈만 잡아당기면 언제든 풀어지는 나비매듭이라면, 결혼한 두 사람은 평생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을 굳게 결심하고 풀기 힘든 매듭을 함께 묶은 사이라는 것을요.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 부부의 협력은 꼭 필요하지만, 가정이 자녀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로 인한 문제가 일어납니다.
사랑엔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사랑엔 이해타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지 여부로 사랑을 선택하는 일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람은 내게 있어서 유용한 사람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응석받이로 자란 사람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결심이 전부입니다.
당신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지만(impersonal) 당신을 다른 누구보다 사랑한다(personal)는 것이 사랑의 원래 모습입니다. 비인칭적인 사랑이 개인적인 사랑의 기초가 되어야만 합니다. 개인적인 사랑이란 비인칭적인 사랑을 알고 난 뒤에 비로소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내가 유일무이한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싫지만 당신은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당신은 유일무이한 당신이 아닙니다.
사랑이 경험(삶)인 이상 사랑에는 갱신해나가는 노력이 불가결해집니다. 그러나 그 노력은 상대와 좋은 관계를 쌓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고통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기쁨으로서의 노력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활동이며 과정이기 때문에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되면, 사랑받으려는 노력도 사랑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게 됩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하는 것을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나는 혼자서도 살 수 있다. 하지만 혼자보다는 둘이 경험을 공유하는 기쁨에 의미를 더 크게 둘 수 있다’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서로가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면 두 사람은 의존관계가 아닌 이상적인 사랑의 관계를 쌓을 수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상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가 사랑해주기 때문에 비로소 자기가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상대의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확고한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파트너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것임을 배워야 한다.” -아들러
“각각의 파트너는 자신보다 상대에게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사랑과 결혼의 성공을 위한 유일한 기초다. 서로가 자신보다 상대에게 더 관심을 갖는다면 두 사람은 대등한 관계가 틀림없다.” -아들러
‘상대의 관심에 관심을 갖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꼭 기억해두길 바랍니다.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의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타인에게로 향하는 이러한 관심이 아들러가 말하는 ‘공동체 감각’입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인정하는 만큼, 바로 그 폭만큼 우리는 대화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이렇게 다르구나, 알아간다고 생각하면서 대화하는 것이 비결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의 언동에 상처를 입고 화가 났다면 “지금 당신이 한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면 됩니다. 그 감정을 전하기 위해 분노의 감정을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화는 상대와 나를 멀어지게 하고 관계를 악화시킵니다.
화는 나를 사람들에게서 떼어 놓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됩니다. 늦게 갈 수도 있고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주저앉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손잡고 있을 테니까요. 그런 사람들은 마주보고 눈 맞추고 곧 다시 일어섭니다. 그리고 다시 걷습니다.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