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 1888~1897
제임스 S. 게일 지음, 최재형 옮김 / 책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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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은 이방인에게 비친 조선의 모습이다. 그러나 21세기 현재 우리가 보아도 이해하기 힘든 여러 모습들이 소개된다. 우리가 그들의 후손이 맞나? 그들은 왜 그렇게 살았는가? 계속되는 의문이 책의 앞머리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저자인 제임스 S. 게일은 1888년 선교를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입국하였다.

조선은 1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자신이 가진 최대의 용기와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었다. 같은 기간 일본에서는 기독교인 열 명을 만드는 데 그쳤고, 중국에서는 그 열 명을 만드는 데 거의 40년이 걸렸지만, 지금 조선에는 천 명이 넘는 기독교인이 있다. 이렇듯 용기 있는 사람들이 목숨을 바친 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조선도 응답하여 보여준 것이다. /338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선교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 낯선 이 땅과 그 위의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온 역사와 문화를 사랑했다. 이 책은 저자가 우리에 대해 관찰하고 기록하여 출간한 최초의 저서이다. /‘이 책을 소개하며중에서. 옮긴이 최재형

비록 이들은 우상 숭배를 하는 이교도이지만 나는 조선 사람들의 조용하고 소박한 삶을 보며, 특히 이들의 마을 공동체에서 감동을 느꼈다. 손님에 대한 환대는 이들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며, 외국인 거주지를 제외하고는 거지도 없다. 배고픈 여행자는 그냥 양반 댁 사랑채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면 아무 대가 없이 먹여주고 보살펴 준다. 혐의를 받고 있는 도망자가 아니 한, 여행자는 돈 한 푼 없이도 반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지나치게 될 모든 고개마다 자신을 맞아줄 곳이 있다는 확신 속에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이렇게 간명하고 가부장적인 삶의 방식은 서양의 복잡한 세계보다 정직하고 고결한 방향으로 나아가기가 훨씬 쉽다. /319

 

저자에 대해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 대다수보다 더욱 이 땅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해박했던 사람이라고 옮긴이 최재형은 소개한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을 언더우드 박사와 함께 만들었고,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 문학을 번역 출간하였고, 세계 최초로 우리 문학을 서양에 번역 출간하였다.

또한 선교사이자 최초의 한영사전을 만든, 누구보다 뛰어난 한국학자로서 그는 성경 번역에 깊이 관여하였다. 여호와 혹은 신에 해당하는 호칭에 대해 천주, 상제를 주장하는 다른 선교사에 맞서 우리말이면서도 기독교와 관계없이도, 이미 온 우주를 관장하는 신의 개념으로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있던 하나님을 주장하였고, 관철하였습니다.

 

우리도 모르고 있던 우리 선조들의 생생한 모습들이 사진들과 함께 소개되어 있어서 읽는 기쁨을 크게 한다. 저자는 조선의 부산에서 만주까지 종횡무진 다니며 선교와 여행과 탐사를 겸하였다. 무려 12번이나!

저자는 조선인의 어진 품성을 줄곧 칭찬하면서도 서양인의 신경 시스템에 엄청난 충격을 가하는 일들이 벌어질 때도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서술하고 있다.

 

하루 이틀 뒤, 우리 두 사람은 이번에는 말을 타고 서울 동쪽 대로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말이 갑자기 놀라서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곧 길바닥에 뒹구는 머리통과 목 잘린 시체 세 구를 보았다. 당장 토할 것처럼 미식거리는 속으로 집에 돌아온 나는 온 사방에 시체가 널린,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드는 이 나라를 당장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었을까? 나는 점차 다른 측면을 보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풍습은 그들이 숭배하는 유교문화의 일부여서 어쩔 수 없는 것일 뿐, 이들도 나만큼이나 이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이끌어줄 진짜 빛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도. /23

위의 서술은 초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임종에서부터 입관과 출상까지 유교식으로 하되, 바로 땅에 매장하지 않고 관을 땅이나 돌축대, 또는 평상 위에 놓고 이엉으로 덮어서 1~3년 동안 그대로 둔다. 그러다가 살이 썩으면 뼈만 추려 다시 땅에 묻는다.

 

상놈(상민, 일반 백성) / 조선의 빛이자 전부, 최고의 보석

조선에 사는 외국인에게 상놈들보다 더 흥미로운 존재가 또 있을까? 그들만이 오랜 기간 유교 문화가 지워버린 한민족 고유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 세상 양같이 순하다는 그 어떤 족속보다도 점잖았다. 오랜 전통인 돌싸움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그들은 단연 평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비록 개인적으로 싸움이라도 붙을라치면 광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긴 했지만 말이다. /72

조선에는 짐수레같이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가축조차 짐을 지고 갈 수 없는 길이 많아서 결국 나라의 모든 힘쓰는 일은 상놈의 두 어깨가 담당했다. 가끔 엄청난 양의 짐을 지고 가는 상놈을 보면,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거인 아틀라스가 생각났다. /76

서양 세계에선 넓은 국토에 집이 한 채 한 채 그렇게 서 있듯 개인도 자신의 책임 하에 홀로 살아가는 반면, 동방의 사람들은 함께 일하고 집도 마을을 이루면서 반드시 함께 들어선다. 또한 서양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확장과 분화 작용을 통해 안에서 밖으로 뻗어가는 큰 힘인데 반해, 동양에선 삶을 한정하고 응축하면서 그 중심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그 과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상놈들이 차지했다. 사실 이들 상놈들의 능력 또한 너무나 쪼그라들어 있어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절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친한 사람 하나 더 붙여주지 않는 한 아무리 간단한 걸 시켜도 절망한 채 넋 놓고 있을 뿐이었다. /83

 

조선 조랑말 / 무엇보다 나를 성장시켜 준 가장 친밀한 스승이자 친구

조선 말은 나머지 모두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 안으로부터 끄어내주었으며, 이놈들과 함께하는 동안 내 안에 억눌린 악마가 얼마나 많은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그가 가장 위험스런 절벽을 따라 나를 안전하게 태워주었기에, 그 악마가 천사로 바뀔 수 있었고 내가 그의 고통을 져줄 수도 있게 되었다. /155

고집스럽다는 건 조선 말의 가장 흔한 특징이었다. 조선의 상놈이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것처럼 이 말에게도 확실히 자기만의 방식이 있었다. 어떤 생각이 이놈을 사로잡을라치면, 목은 놋쇠처럼 뻣뻣해지고 좀체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161

 

조선 방방곡곡 / 그 누구도 경험해본 적 없는 미지의 탐험

지난 8년 동안 내가 조선 반도를 열두 번이나, 그것도 매번 다른 계절에 다른 경로로 종횡무진했던 것은 사실 고난이었다. 하지만 어떤 미국인이나 유럽인도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나와 같은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했으므로 바로 이 주제를 쓰기로 했다. /168

 

조선 보이(The Korean Boy) /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만능 해결사

보이boy’란 보통 열다섯에서 쉰다섯 살 사이이며, 서양인이 개인적으로 부리는 종이다. 보이는 햇볕 쨍쨍한 날 뿐만 아니라 구름 낀 날에도 항상 우리 곁을 지키는 그림자이며, 극동 지방에 사는 모든 서양인의 삶에서 항상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역사의 산증인이다. 보이 없이 생활하는 외국인을 찾는다는 것은 마치 신이 없는 신전, 혹은 수도가 없는 나라를 찾는 것과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188

 

조선 사람의 사고방식 / 설명서가 필요해

극동 지역에서 일을 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심각한 문제는 바로 동양식 사고방식이었다. 사람들로부터 애정을 얻고 존경 받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본바탕을 이루는 기묘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완전히 혼란스럽기도 했다. 사고 체계란 어떤 일을 하든 그 근본이 되는 것 아닌가. 이 세상이 실제로 그렇지만, 이들의 생각은 삶의 많은 부분에서 서양인들과 완전히 반대로 뒤집혀 있었다. /227

 

조선말로 노동을 뜻하는 말은 il인데, 이 단어는 손실, 손상, 나쁜, 불길한 등의 뜻을 함축하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표현하는데 쓴다. 게다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가 의심의 여지없이 고대로부터 귀한 신분이라는 것의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231

 

조선 양반 / 외계에서 온 사람들일까? 인간 진화의 갈라파고스

조선 양반이 뿜어내는 침착하고 평온한 기운은 풀리지 않는 동방의 신비였다. 수천 냥의 빚에, 틈만 나면 초가집을 노리는 굶주린 늑대의 위협 속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이 평온했던 양반의 삶. 다른 모든 특성의 바탕을 이루는 평온함이라는 특질에 있어 양반은 가히 달인이었다. 양반은 공바로부터 모든 본능적 욕구를 다스리는 법과 매사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법을 배웠다. 마치 잘못된 표정이나 몸짓 한 번에 모든 것을 망쳐버릴 수도 있는, 사상 최고의 작품을 연기 중인 배우라도 되는 듯 말이다. /235

 

저자는 저물어가는 조선의 국운에도 깊은 슬픔을 표현하였다. 청일전쟁의 배경과 실제 상황에 대한 서술, 을미사변 당시 고종의 상황, 아관파천의 과정 등 근대사의 중대한 사건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 심경들이 절절히 표현되고 있다.

청일전쟁 이후 조선은 이제 확실히 일본의 손아귀 안으로 들어갔다. 고종은 하는 수 없이 조선의 독립을 천명했다. 고종을 포함해서, 중국을 아주 높이 받들어온 선대 모든 왕들의 그 조선 문명을 들여다보면 사실 왕은 독립할 생각이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게게 중국이란 대국혹은 중국으로, 위대한 중심이 되는 왕국이었다. 반면 일본은 난쟁이들이 사는 허접한 땅, 왜국이었다. /268

유관순 열사가 입었던 한복, 우리에게 친숙한 당시 검은 치마의 이면엔, 검은 염료와 옷감의 수출, 그리고 백의민족인 우리에게 치욕을 주려는 일본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269

 

우리 땅과 우리 사람과 우리 문화를 사랑했던 서양인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와는 너무 다르고 너무 생생한 이야기.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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