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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
메이슨 커리 지음, 강주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4년 1월
평점 :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혼자만의 의식
우리는 예술인들은 모두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규율을 깨뜨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자유와 낭만, 현실과 일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161명의 음악가, 미술가, 작가, 철학자들은 세부적인 활동들은 모두 달랐지만, 큰 틀에서는 모두 자신의 규범 안에서 철저하게 생활하였다.
의미가 있는 삶이 지속가능한 삶이다. - 김정운(문화심리학자)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추얼’을 통해서다. 리추얼은 일상의 반복적인 행동패턴을 말한다. 사소하고 단조로운 반복으로 보이지만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로 확인되는 것이다. 그 삶의 사소함에서만큼은 내가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주체로서의 삶을 일상의 리추얼에서 확실하게 경험된다.
일상의 사소한 반복을 가치 있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거대한 세리모니나 이벤트를 이어가며 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진정한 삶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사소하게 진행되는 ‘과정’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다. 그 일상을 가치 있게 만들 줄 알아야 한다. 리추얼은 바로 무의미한 듯 반복되는 일상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술이다.
스키너가 1974년 하버드 교수직에서 은퇴할 무렵, 밤 시간은 그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그즈음, 동틀 녘의 두 시간에 야간 작을 위한 한 시간이 더해지면서 그의 타이머는 하루에 네 번 울렸다. 자정, 새벽 1시, 아침 5시, 아침 7시였다. 스키너는 이런 습관을 휴일까지 포함해 하루도 빠짐없이, 1990년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 기계처럼 충실하게 따랐다.
정오에 정확히 작업을 멈추고 점심 식사를 했다. 차이콥스키는 음식에 까다롭지 않은 데다 모든 음식이 정성스레 준비된 것이라 여겨 주방장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점심 식사 후에는 날씨에 상관없이 오랜 산책을 나갔다. 동생인 모데스트의 기록에 따르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두 시간의 산책이 필요하다는 글을 어디선가 보았는지, 형님은 오후의 산책을 미신처럼 받아들이며 엄격하게 지켰다. 5분이라도 일찍 끝내면 병에 걸리고,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운이 닥칠 것처럼 정확히 두 시간 동안 산책했다.”
진정한 통찰의 순간들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절제해야 합니다. 절제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헨리 밀러
“조지 리벤터는 학생 때부터 유용한 습관을 몸에 익혔다. 오후에 네 시간을 자면 이른 새벽까지 민활한 정신과 육체를 유지할 수 있었고, 새벽에 다시 네 시간을 자고 일어나 남은 하루에 대비했다.” 폴란드계 미국 작가 코진스키가 1977년에 발표한 소설 ≪블라인드 데이트≫의 첫 구절이다. 코진스키가 주인공을 내세워 썼던 습관은 실제로 자기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언젠가 사르트르는 “굳이 오랫동안 일하지 않아도 성과를 낼 수 있다”며 “아침에 세 시간, 저녁에 세 시간, 이것이 내가 따르는 유일한 규칙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사르트르의 삶이 느긋했으리라 생각한다면 커다란 착각이다. 사르트르는 거의 평생 동안 광적인 창조력을 발휘하며 살았던 철학자답게, 하루 여섯 시간의 작업을 꼬박꼬박 지키면서도 푸짐한 식사와 엄청난 음주와 흡연 및 약물로 채워진 사회적 삶을 살았다.
아인슈타인은 1933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1945년 은퇴할 때까지 프린스턴 대학교의 교수를 지냈다. 그 시절, 아인슈타인의 일상은 매우 단순했다. 9시부터 10시까지 아침 식사를 하며 일간지들을 정독했고, 10시 30분에는 집을 나와 연구실로 향했다. 날씨가 좋을 때는 걸어 다녔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대학교에서 그의 집까지 스테이션왜건을 보냈다. 아인슈타인은 오후 1시까지 연구에 몰두했고, 1시 30분에는 집으로 돌아가 점심 식사를 하고 낮잠을 즐겼다. 그 후에도 오후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연구를 했고, 방문객을 만났으며, 아침 일찍 비서가 선별한 편지들을 처리했다. 6시 30분에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도 집에서 연구를 하며 편지들을 처리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아침나절에야 눈을 뜨고 11시 남짓까지 침대에서 뒹굴며 사색하고 글을 끄적거리는 걸 좋아했다. 1629년부터 생을 마치기 수개월 전까지 살았던 네덜란드에서 보낸 편지에서 데카르트는 “이곳에서 나는 누국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매일 열 시간씩 잠을 잔다네. 꿈속에서 내 정신과 숲과 정원과 마법의 궁전을 헤매고 다니며,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즐거움을 맛본 후에 잠을 깨면 밤의 몽상과 낮의 몽상이 뒤섞이기 시작한다네”라고 썼다. 데카르트는 정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빈둥거리는 습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야 한다. 성공적인 작품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의 습관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한창 집필하던 1860년대 중반 가끔 쓰던 일기에서 이렇게 적었다.